메뉴 건너뛰기

close

시인 마경덕이 지난 2005년 첫 시집 <신발론>을 펴낸 뒤 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글러브 중독자>(애지)를 펴냈다.
▲ 시인 마경덕 시인 마경덕이 지난 2005년 첫 시집 <신발론>을 펴낸 뒤 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글러브 중독자>(애지)를 펴냈다.
ⓒ 마경덕

관련사진보기

"최동원 선동열을 벽에 걸었다 / 무쇠팔, 무등산 폭격기를 바라보며 커브와 슬라이더에 집중했다 / 그는 속도 개발자 / 한쪽 발을 들고 속도를 섬겼지만 각도는 직설적이었다 / 변화구에 밀려 방어율이 낮은 청춘은 갔다 / 데드볼에 도루 같은 인생이었다 // 글러브를 싣고 달려온 남자 / 지난봄 타율이 높은 길목에 터를 잡았지만 / 타석에서 물러난 사람이 휘두른 방망이에 중상을 입었다 / 수십 년 바닥에서 굴러도 여전히 직구였다 / 어디에도 마운드는 없었다 //

홈런만을 요구하는 세상에게 주먹감자를 날려볼까 / 야유를 퍼붓는 관중석으로 강속구를 던져볼까 / 글러브를 움켜쥐고 부르르 떠는 / 그는 글러브 중독자 // 뭉개진 글러브를 찢어 먹고 / 까맣게 변한 글러브도 먹는다 // 글러브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 // 야구장 앞 / 트럭에 쌓인 바나나, 속수무책 까뭇까뭇 익어간다"(시 <글러브 중독자>)

'성실한 관찰자'라는 말이 늘 따라붙는 시인 마경덕이 지난 2005년 첫 시집 <신발론>을 펴낸 뒤 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글러브 중독자>(애지)를 펴냈다. 그는 지난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늦깎이'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그가 쓰는 시는 겉과 속이 다른 사물, 기쁨과 슬픔 그 사이를 빈틈없이 읽어낸다.

이 시집은 모두 4부에 시 65편이 이 세상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여러 가지 실루엣을 샅샅이 훑으며 하찮은 삶들이 보여주는 슬픈 아름다움, 살을 에는 아픔이 툭툭 내던지는 깊은 상처를 깁고 있다. <뒤끝> <바람의 性別(성별)> <몸에게 빚지다> <가위를 주세요> <모래척추> <그녀의 외로움은 B형> <미나리는 목이 많다> <하나님의 공작시간> <향기 보관소> <노루의 품삯> <계란 프라이> <나무들의 사춘기> <시간의 방목장> <잘 죽은 나무> 등이 그 시편들.

시인 마경덕은 '시인의 말'에서 "통증이 심했다 / 그때마다 시를 복용했다 / 그 힘으로 이 바닥에서 십년을 잘 굴렀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여기서 말하는 '통증'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삼라만상이 겪는 '통증'이다. 그는 그 지독한 '통증'이 올 때마다 시를 썼던 모양이다. 시가 시인 곁에 있었기에 그 '통증'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 

시로 모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시의'(詩醫)가 되고 싶은 그는 스스로 "나는 시 중독자"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런 까닭에 "가능한, 치명적으로 시를 퍼트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 만능과 '빨리빨리'로 '너야 죽든 말든 나만 살면 된다'는 자기 중심주의로 제멋대로 굴러가는 21세기란 이 세상 곳곳에는 "상처 깊은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양배추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 시집은 모두 4부에 시 65편이 이 세상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여러 가지 실루엣을 샅샅이 훑으며 하찮은 삶들이 보여주는 슬픈 아름다움, 살을 에는 아픔이 툭툭 내던지는 깊은 상처를 깁고 있다.
▲ 마경덕 두 번째 시집 <글러브 중독자> 이 시집은 모두 4부에 시 65편이 이 세상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여러 가지 실루엣을 샅샅이 훑으며 하찮은 삶들이 보여주는 슬픈 아름다움, 살을 에는 아픔이 툭툭 내던지는 깊은 상처를 깁고 있다.
ⓒ 애지

관련사진보기

낱장인, 나를 주장할 수 없었어요
여러 겹이 되기 위해
하얗고 캄캄한 세상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합류하지 못한 몇 장의 바깥은 밭고랑에 버려진다고 했어요

앞과 뒤가 겹쳐 하나로 뭉쳐지고
온전한 이름을 얻었어요
누군가 굴러갈 수 있을 때까지 참으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동그라미는 제가 골몰한 인생이에요

- <양배추> 몇 토막, 시집 14쪽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마경덕 시인에게 비치면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 그대로 시가 된다. 아주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양배추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양배추는 제 몸을 동그랗게 말기 위해 "침묵의 크기만큼 어둠도 둥글게" 말고, "어둠이 찢어지지 않도록 곡선을 만드는 기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잘 알고 있"다.

양배추는 시인이 지은 시가 돼 사람들에게 가만가만 이렇게 속삭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에 칼날을 들이대지만 않는다면 / 희고 맑은 엉덩이를 / 한 장, 한 장 보여 드릴게요"라고. 시인은 사람들 밥상에 자주 오르는 양배추를 통해 이 세상이 지닌 모순을 엿본다. 그 모순덩어리를 양배추처럼 한 겹 한 겹 벗겨 내며 새로운 세상을 끌어당긴다.

시인이 삼라만상을 통해 사람들 뒤통수를 툭툭 치는 시는 이 시집 곳곳에 '모래 척추'처럼 납작 엎드려 있다. "한 톨 한 톨 밥알을 채색하고 상추 한 잎의 싱싱한 숨소리와 / 섬세한 잎맥을 복사한다"(<음식모형>)라거나 "쥐똥냄새 나는 이름이 싫다고 / 말도 못하는 쥐똥나무"(<쥐똥나무>), "온몸이 입이다"(<꽃병>), "평생 누워 있는 사막, / 바람이 불때마다 와르르 척추가 흘러내린다"(<모래척추>), "허허, 죽은 돼지가 웃는다"(<돼지머리>), "지나가던 봄햇살이 미나리 귀를 살짝 잡아당긴다"(<미나리는 목이 많다>), "구름의 손바닥을 펴보면 번개에 감전된 흔적이 있다"(<구름의 취향>), "지루한 생이다. 뿌리를 버리고 다시 몸통만으로 일어서다니"(<나무말뚝>),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면 병아리고 누군가 껍질을 깨주면 프라이야"(<계란 프라이>) 등이 그러하다.

한 입 깨물면
찍, 물똥을 갈기는 토마토
토마토는 입이 없다 둥글고 살찐
엉덩이만 있다 그래서 고인
말이 줄줄 흘러내린다
- <토마토가 말하다> 몇 토막, 시집 116쪽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세상

이게 전부요? 이력서가 되물었다. 쓰윽, 가윗날이 스쳤다. 가방끈이 짧구먼, 입이 큰 쓰레기통이 말했다. 창밖에... 비가 오고, 빗줄기가 꽃모가지를 치고 피다만 꽃이 발에 밟혔다. 소식 끊긴 애인이 대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꼭 와 줄 거지? 애인이 보낸 청첩장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 <가위를 주세요> 몇 토막, 시집 40쪽

마경덕 시인은 슬하에 딸이 셋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시란 가위를 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오르기만 하는 물가에, 아차! 하는 순간에 남에게 뒤처지고 마는 '빨리빨리' 세상에, 아무리 열심히 여기 저기 기웃거려도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취업난 등에 시달리는 청춘들이 겪는 모진 삶을 싹둑싹둑 자른다.

새파란 청춘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도 선물을 줄 수 없다. 생일을 스스로 축하하기 위해 한 돈짜리나 반 돈짜리 금반지를 사고 싶어도 돈이 모자라 살 수가 없다. "실반지는 얼마죠?"라고 물으면 "금은방은 대꾸도" 하지 않는다. 백화점에 가서 코웃음 치는 가격표를 살피며 옷을 고르고 있으면 백화점이 "손님, 사실 거예요?" 아니꼬운 듯 묻는다.

미용실도 마찬가지다. "다리를 꼬고 앉은 사모님에게 동네 미용실이 달려가 허리를 굽"히지만 가진 게 별로 없어 꾀죄죄하게 보이는 청춘들에게는 "그만 일어나요"라고 보챈다. "애인이 결혼하는 그 시간, 머리카락을 털"고 있으면 팁도 나를 비웃는다. 청춘들은 할 수 없이 "오래된 애인을 싹둑 자르고 일어" 설 수밖에 없다.

<가위를 주세요>처럼 물질범벅이 된 우리 사회를 꼬집는 시편들도 이 시집 곳곳에 오래 묵은 통증처럼 욱신거린다. "내내 덜컹거렸다 버스는 뒷자리에 / 속마음을 숨겨두었다"(<뒤끝>), "저녁에게는 누가 밥을 지어주나"(<슬픈 저녁>), "하루치 밥을 벌고 돌아가는 길, 멀리서 옛 부엉이가 날아온다"(<환영>), "안경을 가장 잘 아는 눈"(<몸에게 빚지다>), "죽은 꽃이 죽은 자를 조문하러 달려간다"(<화환>), "산모롱이 그 빈 집 / 소리로 주린 배를 채우고 있었다"(<외딴 집 풍경>) 등이 그러한 시편들이다.

모든 것들이 홀딱 벗은 세상으로 거듭난다

나무의 소원은 잘 죽는 것. 천수를 누리고 고사목이 되느니 잘 죽어 다시 태어나는 것, 부활은 모든 나무의 꿈이다.

죽은 나무들이 두려워하는 건 못 박힌 목수의 손. 흰 속살을 꺼내 반죽하듯 나무를 빚는 목수는 톱과 망치로 죽은 나무의 미래를 결정한다. 전직이 목수인 마구간의 사내도 손에 깊은 못자국을 남겼다. 평생 못을 치다 죽은 아버지의 손에도 못이 박혀 있었다.
- <잘 죽은 나무> 몇 토막, 시집 132~133쪽

마경덕 시인은 시를 따라가지 않고 시를 불러내 이 얄궂은 세상 구석구석에 심는다. 시인은 말라 죽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고사목"이 아닌 "부활"을 떠올린다. 죽은 나무가 목수 손에서 거듭나는 모습에서 "못 박힌 목수의 손"과 "마구간 사내" 손에 박힌 못자국, "평생 못을 치다 죽은 아버지의 손"에 박혀 있었던 그 못자국을 떠올린다. 그 못자국은 곧 죽은 나무를 부활시키는 밑거름이다.

시인 마경덕 두 번째 시집 <글러브 중독자>는 무쇠 팔을 자랑하던 최동원이나 '무등산 폭격기'로 불리던 선동열도 변화구에 밀려나 설 자리가 사라진 것처럼 "홈런만을 요구하는 세상", 그 속내를 시로 가만가만 더듬고 있다. 까닭에 시인이 바라보는 이 세상 모든 것들, 흘러간 것들이든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든 모두 홀딱 벗은 세상으로 거듭난다.    

시인 김경민(한국시문화회관 대표)은 "마경덕의 시들은 내가 놓아 보낸 저 시간, 그 하수구 끝에서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의미들을 끄집어낸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그의 시들은 주인의 천성처럼 성실하며 빈틈이 없다"며 "무엇이든 붙잡고 부딪히고 씨름하고 상처 입은 저만이 감이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미경처럼 꼼꼼하고 메스처럼 날카롭지만 관대하다"고 평했다. 그는 "이것이 마경덕 시의 미덕이요 독자의 마음을 얽어매는 사슬"이라고 적었다.

누리꾼 'hyangja****'은 "시로 태어나는 언어는 선택된 언어다, 어느 것이든 시인 곁에 머무는 단어는 시로 다시 탄생된다"며 "'모래척추' 모래에도 척추가 있다는 시인만의 상상력이 모래척추라는 시인의 언어를 만든 것이다, 시인의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시어가 되고 살아있는 언어가 돼 감동을 주고 있다"고 적었다.

누리꾼 'choiseono****'은 "마경덕 시인의 시는 젊다, 젊다는 것은 신선하다는 말과 통한다, 신선하다는 것은 기존의 평범함을 벗어남이며 그것을 거부함이다"라며 "시인은 작은 것, 사소한 것에서 시를 발견하되 자신의 일상생활의 과정에서 발견한 인식이나 감정 혹은 사상 등을 기반으로 시적세계를 펼친다, 그렇기에 시적 표현은 본질을 왜곡하거나 비틀기보다는 솔직하고 당당하다"고 평가했다.

시인 마경덕은 1954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신발론>이 있으며 현재 시마을문예대학, 한국시문화회관 부설 문예창작학교 강사, MBC롯데, AK문화아카데미 시 창작 강사로 활동 중이다.

덧붙이는 글 | <글러브 중독자> (마경덕 씀 | 애지 | 2012.09. | 9000원)
이 기사는 [문학in]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 해 중복 송고를 허용합니다.



글러브 중독자

마경덕 지음, 애지(2012)


태그:#시인 마경덕, #애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