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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제9회 상허 이태준 문학제’가 11월 3일(토) 낮 11시부터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두루미평화관에서 열린
▲ 상허 이태준 문학비 ‘2002 제9회 상허 이태준 문학제’가 11월 3일(토) 낮 11시부터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두루미평화관에서 열린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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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날아온 새들이
갈대밭에 내려앉아 지친 몸을 쉬고,
이슬에 젖은 연분홍 꽃잎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입을 오무린다.

생각해 보아라
얼마나 모진 세월을 살아왔는지,
이제 너에게 남겨진 일은
그 거칠고 사나운 역사 속에서
말없이 떠난 이들을 추념하는 일이다.

아,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이야
끝까지 올곧고 아름다웠던 젊은이들,
시월 상달 이 눈부신
서릿발 치는 푸른 날빛 속에서
어디로 가야 만나볼 수 있단 말이야. - 시인 민 영, 헌시 '이 가을에' 모두

8·15 해방을 맞이한 뒤 친일파들이 애국지사로 뒤바뀐 채 마구 설치는 남한이 꼴보기 싫어 어쩔 수 없이 떠나 북한으로 발길을 돌리는 상허 이태준 선생.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불리는 선생은 북한에 가서도 '부르주아 근성이 남아있는 반동분자'로 내몰려 지금까지도 그 행방을 찾을 수가 없어 더욱 안타깝다. 

장현준 증언(한겨레신문, 1991. 12. 19)에 따르면 "년도 미상이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상호 '내가 치른 북한 숙청'(중앙일보, 1993. 6. 7)에 따르면 "일설에는, 1953년(50세) 남로당파의 숙청이 끝난 가을 자강도 산간 협동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19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글쓴이가 상허 이태준 선생을 만난 것은 20대 때 <문장강화>라는 책으로부터다. 글쓴이는 그때 그 책을 읽으면서 참된 글쓰기를 공부했다. 글을 쓰다가 문장이 이리저리 엇갈리거나 뒤틀리면 얼른 그 책을 펼쳐놓고 서로 비교하면서 고치곤 했다. 그랬으니, 상허 이태준 선생은 글쓴이가 한 번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큰 스승 아니겠는가.

<문장강화>라는 책으로 글쓴이에게 글을 가르친 그 큰 스승을 기리는 '2012 제9회 상허 이태준 문학제'가 한국전쟁이 남긴 멍에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철원에서 열린다고 하니 어찌 달려가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문학제에 가서 '상허 이태준 문학비' 앞에 막걸리 한 사발 올려놓고 큰절 두 번 올린 뒤 추모시 한 편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학비 앞에 서 있는 분이 철원 출신인 시인 민영 선생이다.
▲ 지난 해 열린 상허 이태준 문학제 문학비 앞에 서 있는 분이 철원 출신인 시인 민영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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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풍경은 시가 되고 수필이 되고 소설이 된다

불경스럽게 우익 아들인 내가
좌익 문인 생가 터를 보러 간다

거역할 수 없는 도로 흐름을 따라
좌회전 우회전을 하면서
용담으로 달려간다

잡초 뿐인 생가 터에
풀과 나무 가지들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자라고
내가 들고 간 상허 소설책에서는
막시즘은 없고
아름다운 문장만 반짝인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다시 좌우 회전을 반복해야 한다 - 정춘근, '용담 가는 길-상허 이태준 생가 터' 모두

(사)한국예총 철원지회가 이끌고, (사)한국문인협회 철원지부(지부장 이용주)가 손을 맞잡은 '2002 제9회 상허 이태준 문학제'가 3일(토) 낮 11시부터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두루미평화관에서 열린다. 돕는 곳은 강원도 철원군 강원문화예술위원회와 강원문화재단, 문학in, 창작21, 강원민예총, 철원신문, 문학동인 모을동비, 철원문학회, 철원신문사.

(사)한국문인협회 철원지부 이용주 지부장은 2일(금) "수채화 같던 봄도 매미가 온산을 뒤흔드는 여름도 숲 속을 초대하고 싶은 가을도 솜사탕처럼 함박눈 내리는 겨울도 우리 문학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축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상허 이태준 문학제가 올해로 아홉 번째로 문을 연다"고 밝혔다.

이용주 지부장은 "철원풍경은 시가 되고 수필이 되고 소설이 되고 동시가 되고 동화가 되고 동요가 되고 멜로디가 되고 문학인들의 마음 속에 은하수가 되어 날마다 반짝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누구나 한 번쯤은 문학이란 아름다운 이름에 반해서 낙엽이 지고 바람이 불어도 머릿속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을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문학제가 더욱 더 빛나게 됨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문학제는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다. 현미숙 사회로 열리는 제1부는 추모제례를 시작으로 살풀이(국립무용단 단원), 축문낭독(이소리 시인), 초헌관(서필환 철원문학회회장), 아헌관(황효창 강원민예총회장), 종헌관(문창길 창작21), 헌화 및 헌주(참여단체장 및 회원), 추모묵념 등으로 이어진다.

시인 정춘근 사회로 열리는 제2부는 개회사(민영 시인), 모시는 말씀(이용주 문협철원지부장), 인사말(오필례 철원예총회장), 축사(황효창 강원민예총회장, 이상문 춘천민예총회장)에 이어 백령브아스밴드가 나와 이번 문학제를 고운 선율로 수놓는다. 추모시 낭송에는 김동환 시인, 강원민예총(조성림 시인, 김홍규 시인), 창작21(김성호 시인, 변삼학 시인, 윤선길 시인)이 나온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동화구연은 강신옥 '엄마는 몰라쟁이'다.

추모시 낭송 2번째는 문학in(이소리 시인), 시그마(김수연 학생), 철원문인협회(신긍옥 시인)가 나온다. 시낭송이 끝나면 강석규, 신호승이 나와 '철원의 노래' 공연이 이어진 뒤 참석자들 모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합창한다. 이날 낮 2시에는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가 아로새겨진 백마고지와 노동당사, 두루미평화박물관, 금강산 가는 길 등을 답사한다.

3부는 오후 2시와 4시 문화복지센터에서 펼쳐지는 극단태후 연극 이태준 원작 '~엄마~'다. 그밖에 철원도서관에서는 '이태준 도서전'도 함께 열린다. 이날 참석자에게는 이태준 선생에게 바치는 민영 시인 헌시와 이태준 연보, 작품, 여러 시인들이 쓴 추모시가 실려 있는 제9호 <상허 이태준 문학제 시첩>도 나눠준다. 

서울에서 이번 상허 이태준 문학제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3일(토) 아침 8시 충무로역 1번 출구 대한극장 앞에 있는 대절버스를 타면 된다. 참가비는 없다.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두루미평화관 곳곳에 걸려 나부끼고 있는 걸개시화들
▲ 걸개시화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두루미평화관 곳곳에 걸려 나부끼고 있는 걸개시화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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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즐거운 고향이여! 슬픈 고향이여!

다음은 상허 이태준 선생이 1932년 9월에 <신동아>에 발표한 단편소설 '용담 이야기' 모두다.

내 고향 용담(龍潭)은 산 많은 강원도에 있다. 철원 땅이지만 세상에서 알려진 금강산 전철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고요히 정거장도 없는 경원선 한 모퉁이에 산을 지고 산을 바라보고 그리고 사라지는 연기만 남기고 지나다니는 기차들이나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았는 조그만 산촌이다.

서울서 차를 타고 나면 세 시간이 다 못 되어 이 동네 앞을 지난다. 차가 지날 때마다 마밭 머리에서 장독대에서 사람들이 내어다본다. "내다 오오" 하고 소리는 못 질러도 수건을 내어 흔들며 모두 알아보고 형님뻘 되는 사람, 동생뻘 되는 사람들, 흔히 십리나 되는 정거장 길에 마중 나온다.

용담은 아름다운 촌이다. 금강산과는 먼 곳이지만 그와 한 계통인 듯하게 수려한 산수는 처처에 승경(勝景)을 이루어 잇다. 뒤에는 나지막한 두매봉재가 조석으로 오르기 좋은 조그만 잔디밭 길을 가지고 잇으며 앞에는 언제든지 구름을 인 금학산에 창공에 우뚝하니 솟아있다.

손을 씻으려면 윗골과 백학골에서 흘러나오는 옥수천(玉水川)이 있고 수욕(水浴)이나 천렵이나 낚시질이 하고 싶으면 선비소, 한내다리, 쇠치망, 진소, 칠송정 모두 일취일경(一趣一景)이 있는 곳이다.

나는 여름마다 용담에 간다. 용담 가면 흔히 한내다리 아래에 가서 긴 여름날을 지운다. 딸기를 따먹고 참외를 사먹고 낚시질을 하고 하늘에 뜬 청산(靑山)을 바라보며 다시 물속에 잠긴 청산 위를 헤엄치며 뻐꾸기 소리, 매미, 쓰르라미 소리를 들으며 나도 콧소리로 (학도야)를 부르며….

그리고 이따금 우르르하고 기차가 도시 풍경을 가득가득 담은 차창들을 끌고 지나갈 때 나는 꽃이면 꽃을 들고 고기꾸럼지면 고기꾸럼지를 들고 놓히 휘둘러 원산 금강산으로 가는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일빈(一嚬)을 낚어 보는 것도 한내다리에서나 할 수 있는 낚시질이다. 올 여름에도 어서 용담에를 가야 한다. 어서 참외가 났으면….

그러나 용담은 슬픈 곳이다. 내 옛집에 없고 내 부모가 안 계셔서만 슬픈 것은 아니다. / 어려서 이만 글자라도 나에게 가르쳐준 봉명학교는 망해 없어지고 천진스럽게 장난할 궁리밖에 모르던 모든 죽마들은 대개는 생업을 찾아 동으로 서로 흩어졌다.

몇 사람 남아있는 친구도 있지마는 황폐해 가는 동네를 지킬 길이 없어 팔아먹은 조상의 무덤이나 바라보고 한숨짓는 그네뿐이다. / 오오 즐거운 고향이여! / 그리고 슬픈 고향이여! - 1932년 9월 <신동아>

상허 이태준 선생은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아버지(장기 이 씨) 창하(昌夏)와 어머니 순흥 안씨 사이 1남 2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1925년 <시대일보>에 단편 '오몽녀(五夢女)'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33년 박태원, 이효석 등과 '구인회'를 만들었다. 선생은 '가마귀', '달밤', '복덕방' 등 단편소설 60여 편을 비롯해 중, 장편 18편 등을 발표해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추앙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태그:#상허 이태준 문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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