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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경은 마치 산 정상 위에 올라 우리나라를 한 눈에 내려다보듯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 한반도 지형을 닮은 월명공원 이 광경은 마치 산 정상 위에 올라 우리나라를 한 눈에 내려다보듯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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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입니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군산의 랜드 마크 월명공원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공원이며 우리 안방 휴게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를 만나고 나서 줄곧 듣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녹음을 한 것 마냥 '무한 반복'(?)되는 이 문장은 그가 얼마나 월명공원을 사랑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17일, 그는 35년 동안 한결같이 찾아던 군산 월명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군산 청소년수련관 맞은편 건물에는 '월명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아래 월사모)이라는 작은 명패가 보였다. 한눈에 이곳이 월명공원 민간홍보대사이자 자칭 '월명공원지킴이' 김대선(62)씨가 있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구김 없이 올곧은 사람일 것이라는 편견(?) 때문일까.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등산을 마친 후 느낄 수 있는 상쾌함처럼 경쾌했다. 그리고 그 상쾌함을 안고 만난 그, 내 예상은 적중했다. 유쾌한 웃음소리와 웃음의 결에 따라 잡힌 주름이 그의 밝은 성격을 가늠케 했다. 그 이면에는 작은 체구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35년 수련생활의 내공을 엿볼 수 있을 만큼 강렬했다. 그와 나눈 첫 대화는 역시 월명공원 칭찬이었다.

"병풍처럼 펼쳐진 월명공원의 산맥은 차가운 해풍(방풍)을 막아줍니다. 한국 제일의 공단에서 서풍을 타고 도심으로 넘어오는 공해와 도심에서 나오는 매연을 정화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죠. 이는 화폐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죠.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천연의 정화시설입니다. 

월명공원은 군산을 지켜주는 파수꾼이자 건강지킴이 역할을 합니다. 특히 건강한 사람은 더 건강하게,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을 되찾아주는 마법사와 같은 월명공원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친구이자 하늘이 내려준 보물입니다. 따라서 천혜의 보물인 아름다운 월명공원을 가꾸고, 보존해 후대에 영원히 물려주는데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합니다. 다 함께 월명공원 지킴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각상태서 외친 "월명공원 파이팅!"

무려 35년간 월명공원을 찾은 대선씨는 이제 걸어다니는 월명공원 백과사전이 됐다.
▲ 월명공원지킴이 김대선씨 무려 35년간 월명공원을 찾은 대선씨는 이제 걸어다니는 월명공원 백과사전이 됐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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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떼자마자 술술 흘러나오는 월명공원 자랑. 우스갯소리로 '월명공원과 결혼한 것 아니냐'는 말에 그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과 공원의 혼인? 다소 어색하지만 이를 증명해주는 일화가 있다.

지난 2007년, 월명공원에서 철봉을 하다 허리를 심하게 다친 그는 큰 수술을 하게 됐다. 수술을 마친 후 마취에서 깨어날 때 그의 외마디 외침이 의사를 당황케 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환각 상태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이름을 부른다는데, 그는 뜬금없이 "월명공원 파이팅"을 외쳤다고 한다. 천사표 아내가 서운했을 정도였다니 그의 월명공원 사랑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20대 후반 무렵부터 현재까지 월명공원과 동고동락한 대선씨. 무려 35년이라는 세월은 그를 '걸어 다니는 월명공원 백과사전'으로 만들었다. 월명공원의 6개 봉우리(점방산 138m·설림산 116m·장계산 110m·월명산 101m·석치산 98m·할매산 95m)의 위치는 그의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다. 1912년 6월 18일 착공돼 1915년 1월 4일 준공한 수원지(현 월명호수)에 대한 역사, 변화 기록까지 세세히 기억하고 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5년 동안 월명공원에 머물며 공원과 함께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가 이토록 월명공원을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그는 진솔하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실 저는 현재 밤업소에서 키보드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나름 음악인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때로는 색안경을 끼고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40년 동안 이 길을 걸어왔고,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업소 자랑 좀 하고 싶은데 그건 오버겠죠(웃음).

월명공원을 찾게 된 것은 직업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밤에만 일하니까 낮에는 한가하더라고요. 20대 중후반 무렵, 기계체조 운동에 빠져 월명공원을 찾아 운동도 하고, 산도 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낮에 운동하고, 저녁에 일하는 건 여전합니다. 단, 2007년 사고로 기계체조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지만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2007년 사고는 그에게 크나큰 시련이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판정도 받았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하루 2시간 이상 산행을 고집한다. 그는 말한다. "잃었던 건강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월명공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 고마움을 월명공원 환경보호 등의 봉사활동으로 대신하고 있단다. 그런 그는 월사모 창립자이자 현재 부회장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공원과 함께할 겁니다"

산비탈 쓰레기는 특수 제작한 장대 집게를 이용해 수거하고 있다
▲ 환경보호 활동 산비탈 쓰레기는 특수 제작한 장대 집게를 이용해 수거하고 있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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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첫째·셋째 주 일요일에는 월사모 회원들(약 40명)과 함께 환경보호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매주 토요일(4~11월)에는 숲 속 음악회를 열어 음악적 재능이 있는 봉사자들과 함께 월명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봉사는 남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제게는 더 큰 보람과 기쁨, 행복을 안겨줍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봉사자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게 돌아간다고 생각해요. 

저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월명공원 지킴이'로써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상생)을 위해 산을 지키고 보호할 것입니다. 그리고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할 것입니다. 그게 제 삶의 이유이자 행복이니까요."

월명공원을 좋아 하다못해 사랑하는 대선씨. 그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음악이 있다. 그가 작곡한 <월명공원의 노래>가 바로 그것. 마지막으로 그의 가사를 음미해보며 그가 사랑하는 월명공원이 만인이 사랑하는 월명공원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월명산 돌고 돌아 호수길 되고 / 점방산 산마루서 바라본 서해 / 시원한 이 가슴 솔바람부니 / 바라보라 월명공원 천혜의 쉼터 / 아~ 아~ 여기는 군산 월명의 하늘 / 산과 물 어우러진 보물이여 / 걷고 걸어도 사랑스런 길 사랑스런 길 / 가꾸고 키워서 간직하리라 / 풀 한 줌 돌 하나도 사랑하리 월명산 / 이 땅을 지키면서 보전하리 월명산."

그가 직접 작사한 <월명공원의 노래>. 월명공원 사랑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가사다.
 그가 직접 작사한 <월명공원의 노래>. 월명공원 사랑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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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서해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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