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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동성애자 연예인이 커밍아웃한 지 12년. 이제 커밍아웃은 다양한 관계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으로 커밍아웃을 주저하고 있는 성소수자나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수많은 이성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커밍아웃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를 직접 만나 그 이후 삶의 변화나 생각들을 들어보고, 왜 커밍아웃이 필요한지에 대해 얘기해본다. - 기자말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 홛동가 쥬리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 홛동가 쥬리
ⓒ 이종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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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만난 인터뷰이는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쥬리(18)님이다. 지난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 제정을 위해 벌였던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이라는 연대단체 내에서 2011년 9월부터 쥬리님과 함께 활동했다. 쥬리님을 만나기로 한 10일은 공교롭게도 서울시 인권특별위원회가 서울시 어린이 청소년 인권조례를 심의, 의결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성소수자 단체 활동가들이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 모였다.

이날 모인 이유는 지난해 학생인권조례 제정 때와 다르지 않았다. 어린이 청소년 학생인권조례 내 차별하지 말아야 할 사유에 성적지향과 임신 출산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주장에 위축되어 의회 의원들이 원안을 수정하려는 의견이 있어 단체 활동가들이 시의회 앞에 모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이날 인권특별위원회에서는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12일 본회의에서 조례안은 재석 59 찬성 54 반대 0 기권 5로 가결되었다. 시의회를 다녀오고 '친구사이'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면서 경험했던 커밍아웃 이야기를 들었다.

"이성애자 남성이 애인 손 잡고... 레즈비언에 대한 편견 존재"

- 쥬리님을 처음 본 것은 지난 2011년 9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공청회 때였다. 하지만 그전부터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했던 것으로 안다. 커밍아웃도 함께 진행되었던 것 같은데….
"울산에 살면서 정당에서 조금씩 활동하다가 지난해 3월 서울에 오면서 페미니즘 학교를 수강했다. 그때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 자긍심팀이나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를 기웃거렸다. 이 단체들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커밍아웃을 시작했던 것 같다. 공개적으로 하게 된 경우는 지난해 학생인권조례에 대응해 언론사 인터뷰를 하면서인 것 같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특별하게 부담은 없었다. 직장이 있거나 대학을 다녔다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 커밍아웃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있나?
"지난해 활동하던 한 정당 세미나모임이 끝나고 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당시 만나던 애인과 함께한 술자리였는데 이성애자 남성이 내 애인의 손을 잡고, 옆에 앉으라며 관심을 보이는 등 성추행으로 보이는 행동을 했다. 이성애자 남성들이 레즈비언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편견 중 하나가 남자를 아직 잘 몰라서 레즈비언일 거라는 생각이다. 이날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후 이를 당기위원회에서 논의했고 주위에 많은 지지자들이 있어 잘 버텨냈다. 커밍아웃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혐오나 편견은 존재하고 있었다. 교육이 필요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결국 커밍아웃 해야 드러나는 문제이다."

- 지난해 12월 많은 단체들의 연대의 힘으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되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사실 그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단체들의 힘으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주민발의에 성공했는데 성적지향, 임신 출산 등의 사유가 쟁점이 되면서 조례 통과가 힘들던 지점이 있었다. 청소년 인권운동 쪽은 두발 자율화나 체벌 규제 등의 문제가 더 중요했던 상황인데,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입장은 성적지향, 임신 출산 등의 차별 사유가 배제되면 안 되었고. 원안통과가 안 되면 무산시키고자 하는 입장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서로의 지향이 달랐고 각자의 절박함이 있었다. 지금에서 말하지만 그때 당시에 섭섭함이 없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경험을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도 주체적으로 성장한다고 본다."

-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면서 결국 성소수자 내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학생인권조례에 대응을 하면서 당시 긴급행동 내에서 청소년팀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단순히 당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무엇인가 더 주체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10대 섹슈얼리티 인권모임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 문제의식이 있을 텐데, 성소수자 단체 활동을 경험하면서 고민들이 많이 생겼다. 청소년이 담배 피는 문제에 대한 성인 활동가들의 다른 생각, 반말, 어느 정도의 꼰대스러움 등을 경험했지만 청소년이라 운동경험이 짧고 기반이 적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럴 때 내가 뭔가를 더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패배감도 느꼈다."

"청소년 시절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표현할 수 있어야"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 활동가 쥬리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 활동가 쥬리
ⓒ 이종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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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보면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청소년 운동과 섹슈얼리티가 결합된 지점이어서 논쟁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아직 사회는 청소년에게 성은 허용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보수 쪽에서 공격하는 것 중에 가장 잘 먹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순결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얘기해선 안 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거기에 동성애라니. 이 문제를 너무 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니 성소수자 커뮤니티 쪽에서도 이러한 부담이 있기 때문에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성문제가 제한이나 금지의 영역으로 가는 지점도 있다.

한편으로는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구제시스템, 상담프로그램 등에 대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자기의 성별이나 성정체성 젠더 표현을 어떻게 자유롭게 할 수 있나. 두발규제도 그렇고. 적극적인 권리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한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도 필요하고, 청소년 시절 또래 관계에서 자신을 점점 남성 또는 여성으로 정체화 할 때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성적으로 좀 더 자유로워야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 이제 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가?
"커밍아웃이 지금은 힘들지 않다. 남자 친구 있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요새는 많지 않아 굳이 말해야 하는 상황이 없었다. 가끔은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했을 때 스스로 이것이 무슨 의미지 할 때가 있다.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할 때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가. 내가 딱 정해지게 여자만을 좋아하는가. 지금 여자를 좋아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게 레즈비언과 이성애자를 가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동성애, 이성애에 대한 구분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체성을 드러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현실이 더 안타깝다."

- 가끔 보면 개인 생활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인터넷 쇼핑을 좋아한다. 옷을 살 때 보면 내가 자본을 좋아하고,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 같기도 한다. 일을 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활동으로 하기 때문에 집중이 되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면 결의가 안 보인다. 같이 사는 파트너는 내가 집에서는 활동가로 안 보인다고 할 정도다."

-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하고 있는 여성주의 단체 상근활동을 계속 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파트너랑 계속 같이 살고 싶고. 요즘은 가끔 늙어서 가난해지는 것에 대해 고민스럽기도 했다. 두려움이 있더라."

개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할 때 쥬리님은 욕심이 많지 않은 스스로를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활동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들만으로도 지금의 삶이 벅차겠다는 생각이 든다. 커밍아웃 역시 이제 그에게는 활동을 위해 필요한 요소이지만 커밍아웃이 필요한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또 다른 과제도 남아있다. 그가 인터뷰 중에 했던 말을 마지막으로 인용하며 이 인터뷰를 정리한다.

"이 사회에서는 성과 관련해서 시간이 지나면 성숙해지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성과 관련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 (청소년들이) 성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억압하고…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고민해야 하지 않나."


태그:#청소년, #커밍아웃 , #성소수자, #레즈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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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이종걸 입니다. 성소수자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 공간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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