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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기를 끊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이 길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와 관련해 지난 8일 23번째 사망자(당뇨합병증)가 발생한 가운데, 김정우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10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쌍용차 정리해고자의 죽음으로 더 이상 상복을 입을 수 없다는 결연한 다짐이었다.

김정우 지부장은 이날 오전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이 비극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죽음의 도가니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나"라며 "낡은 벽지 속 곰팡이처럼 죽음은 우리 주변을 소리 없이 찾아와 스며들고 있다. 계속되는 죽음을 이제는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 지부장은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20일 열린 국회 쌍용차 청문회에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근거가 된 회계장부가 조작됐음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김 지부장은 "대선후보인 박근혜 후보도 쌍용차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다"면서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 문제와 일자리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지부장은 "곡기를 끊고 해고자 복직과 쌍용차 문제 해결을 호소드린다"며 "오장육부가 녹아내려 먼저 간 동지를 생각하며 다시 호소한다. 또 다시 상복입고 살아가기가 너무나 버겁다"고 말했다.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 이후,  쌍용차 사태로 인한 사망자 수가 23명에 이르렀다. 이미 정리해고된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난 3월부터 서울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밥 킹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 쌍용차 분향소 방문

10일 오전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과 밥 킹 전미자동차 노조 지부장이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쌍용차 정리해고 국정조사 및 해고자 복직 촉구 국제 노동계 기자회견을 가졌다.
 10일 오전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과 밥 킹 전미자동차 노조 지부장이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쌍용차 정리해고 국정조사 및 해고자 복직 촉구 국제 노동계 기자회견을 가졌다.
ⓒ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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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에는 밥 킹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분향소에서 쌍용차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와 해고노동자 복직을 촉구했다.

킹 위원장은 분향소에서 김정우 지부장과 정의헌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면담하고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킹 위원장은 전미자동차 노조 1850명의 서명과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미국, 영국, 독일 등 81개국 노조의 서명을 김 지부장에게 전달했다.

킹 위원장은 "쌍용차 사태가 벌어진 이후 3년 동안 23명이 사망했는데도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고 정의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한국 정부는 개인과 노동자의 존엄성을 보장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진실규명과 정의를 위한 투쟁에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에 ▲ 쌍용자동차의 회계조작과 대량해고에 대한 전면적 국정조사 ▲ 파업 당시 국가폭력 사용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 희생자에 대한 사과와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했다.

단식 돌입 대국민 호소문
곡기를 끊어 생명을 살리겠습니다. 쌍용차 노동자는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만나지 말아야 할 숫자 23과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도 정리해고의 후폭풍 앞에서 맥없이 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비극의 끝은 도대체 어디입니까. 죽음의 도가니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습니까. 낡은 벽지 속 곰팡이처럼 죽음은 우리 주변을 소리 없이 찾아와 스며들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죽음을 이제는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슴이 저려오고 심장이 오그라든대도 이 죽음을 막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가시밭길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소리 나지 않는 이 죽음이 무섭습니다.
한 낮 미물인 나뭇가지도 부러질 땐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23번째까지 이어지는 이 죽음은 어떤 이유에선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너럭바위 같은 억울함의 돌덩이가 목을 막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울분이 기도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분노가 심장박동을 눌렀기 때문입니다. 쌍용차 출신이란 사회적 낙인은 숨쉬기조차 버거운 희박한 공기 관으로 해고자를 밀어 넣고 말았습니다. 고립과 단절은 두려움과 공포가 되어 시시각각 삶을 죄어오고 있습니다. 살아갈 희망의 다리는 끊긴 채 벼랑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습니다. 죽음이 유서가 된 23장의 유서가 우리 앞에 을씨년스럽게 너풀거립니다. 유서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2009년 5월이 비극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기획파산에 고의부도 여기에 강제적 정리해고와 공권력에 의한 살인진압이 이 죽음의 오롯한 실체입니다. 회계법인은 자본 입맛에 맞춰 2646명이란 죽음의 숫자를 제단했고, 국가공권력은 제단 된 숫자를 죽음의 제단 위로 기어코 밀어 올렸습니다. 폭력으로 그 존재를 드러냈던 국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고 정치는 행방불명 중입니다. 노동자들은 3년이 넘도록 길 위에서 복직을 요구하고 쌍용차사태 진상규명을 소리쳤지만 돌아온 건 또 다시 차가운 동료의 시신이었습니다. 겹겹이 쌓여 감당하기 어려운 주검의 산 아래로 통곡소리가 핏물처럼 흘러내립니다. 숱한 방법을 동원하고 갖가지 궁리를 해도 해고자 복직은커녕 자본과 정권의 비아냥 소리만 커갑니다.

청문회는 추악한 외투를 걸친 쌍용차 자본의 첫 단추만 벗겼을 뿐입니다.
청문회에서 여야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한 목 소리로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쌍용차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국회를 통해 확인되고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은 물론 해고자 복직 문제는 여전히 범죄를 저지른 쌍용차 자본의 손아귀에 놓여 있습니다. 청문회 이후 쌍용차 자본은 보란 듯이 국회 권위마저 조롱했고 해고자를 능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회계조작문제와 기획파산 그리고 공권력의 살인진압 문제는 여전히 공전되고 한 쪽 귀퉁이에 방치된 채 먼지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결국 해고자 복직 문제가 자본의 선택과 선심의 문제로 뒤바뀌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국정조사는 늦출 수 없는 문제입니다.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청문회가 증명했습니다. 조작된 정리해고와 기획된 부도를 밝혀내야 쌍용차 사태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청문회가 확인해 줬습니다. 그럼에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대선후보인 박근혜후보 또한 쌍용차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 놓고 있지 않습니다.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문제와 일자리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기에 불과합니다. 복지는 주검을 뒤져 찾아야 하는 겁니까. 사회안전망 타령은 도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입니까. 노동문제와 일자리 문제의 압축판인 쌍용차 문제야 말로 지금 정치가 필요한 곳이며 해결해야 할 정치 사안입니다.

해고자 복직은 쌍용차 문제 해결의 첫 출발이어야 합니다.
23번째 쌍용차 노동자 죽음의 의미를 직시해야 합니다. 불어나는 숫자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낱낱이 파괴되는 개인들의 삶에 주목해야 합니다. 개인의 삶의 붕괴가 가져오는 가족의 파탄과 인간관계의 소멸을 봐야 합니다. 사회구성의 최소 단위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아픔에 공명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고통을 외면하면 할수록 사회적 갈등과 고통지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만 볼 것이 아니라 아파하고 고통 받는 이 사회 모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가슴열고 들어야 합니다. 정리해고가 지역을 넘어 전국을 오염시키고 있고 비정규직 문제는 안방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해고자 복직으로 꼬여있는 쌍용차 문제에 새로운 전환점을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해고자는 공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곡기를 끊고 해고자 복직과 쌍용차 문제 해결을 호소 드립니다. 오장육부가 녹아내려 먼저 간 동지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호소 드립니다.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주십시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역할을 다해 쌍용차 문제를 이번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정치가 필요하면 정치를 투쟁이 필요하면 투쟁을 연대가 필요하면 연대를 만들어 주십시오. 쌍용차지부 지부장으로 동지를 지켜내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다시 한 번 호소 드립니다. 혈관 따라 죽음이 흐르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또 다시 상복입고 살아가기가 너무나 버겁습니다.

곡기를 끊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이 길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2012년 10월 10일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위한 단식에 돌입하며

쌍용자동차지부장 김정우



태그:#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 #밥 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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