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성SDI 해고노동자 이만신씨는 곧잘 삼성을 "우리회사"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회사 간판이 나오는 곳에서 찍자"며 삼성SDI 울산사업장 주차장 앞에 섰다. 하지만 '그의 회사'는 회사 땅이란 이유로 주차장에 그의 차가 들어와선 안 된다고 막았다.
 삼성SDI 해고노동자 이만신씨는 곧잘 삼성을 "우리회사"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회사 간판이 나오는 곳에서 찍자"며 삼성SDI 울산사업장 주차장 앞에 섰다. 하지만 '그의 회사'는 회사 땅이란 이유로 주차장에 그의 차가 들어와선 안 된다고 막았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중국 사람들은 내가 이건희 친척인줄 알았데요."

삼성SDI 해고노동자 이만신(49)씨는 중국 삼성 천진법인에서 11년 8개월을 일했다. 아니, 놀았다. 회사는 그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월급을 받았다.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데도 돈을 받는 그를 중국 현지 직원들이 의아하게 여겼다. 중국 현지인들은 가끔 그에게 "당신 혹시 이건희 친척이냐"고 묻곤 했다.

꿈같은 직장 생활이라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그는 지난 시간을 꿈도 꾸기 싫은 지옥이라 말한다. 그는 장장 16년 1개월을 말레이시아와 중국에서 머물렀다. 통상 5년을 넘지 않는 주재원 생활을 16년간 한 셈이다. 지난 13일 기자와 만난 그는 이 과정을 사실상의 '유배'라고 표현했다. 지친 그가 국내 복귀를 요구했지만 삼성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삼성이 마치 숨겨놓은 자식처럼 자신을 에워싼 배경에는 노동조합이라는 아킬레스건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노동조합 설립을 두고 그와 삼성이 벌여온 지루한 줄다리기는 1987년 시작됐다.

1987년 군대를 막 전역한 그는 4월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그의 인생의 줄기를 바꿔놓은 노사분규가 발생했다. 무노조 경영을 기치로 내건 삼성에서 20여 명이 삼성전관에 노조를 설립하겠다고 일어섰다. 하지만 삼성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회사의 힘에 민주노조 설립의 꿈은 날개도 펴보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1993년 회사는 그에게 말레이시아 근무를 지시했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해외생활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4년이 넘어 1998년 1년여간 잠시 한국으로 복귀했던 그는 1999년 3월 중국 천진법인으로 발령을 받는다. 그후 11년 8개월이 지난 2010년 10월에야 그는 국내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전에도 그 뒤에도 그에게는 항상 MJ(문제)사원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삼성SDI 상대로 해고 무효 소송 준비... "민주노조 깃발 꽂고 말겠다"

삼성SDI 해고노동자 이만신씨. 그는 매주 화·수·목요일 회사 앞을 찾는다. 퇴근 시간에 맞춰 1인시위를 시작하는 그는 직원들을 상대로 해고 무효와 노동조합 설립의 필요성을 알린다.
 삼성SDI 해고노동자 이만신씨. 그는 매주 화·수·목요일 회사 앞을 찾는다. 퇴근 시간에 맞춰 1인시위를 시작하는 그는 직원들을 상대로 해고 무효와 노동조합 설립의 필요성을 알린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국내 복귀 후 그는 다시 노조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그런 움직임이 진행되어가던 지난 6월 21일 회사는 그에게 징계위원회에 참석하라는 통지서를 보내왔다. 같은 달 27일 열린 징계위원회 자리에서 회사는 그를 해고했다. 그가 해고가 부당하다며 낸 재심청구도 기각했다. 그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삼성은 그가 회사를 상대로 지속적인 협박 및 금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또 상사에 대한 폭언과 정당한 지시명령 불복, 회사 명예도 징계의 사유로 들었다. 반면 그는 노조를 만들고자 했다는 이유로 회사가 구실을 끼워맞춰 자신을 해고했다고 믿는다.

실직자가 됐음에도 그는 매주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해고 무효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친다. 그럼 마치 판문점에서 남·북 군인들이 대치하듯 회사 측 경비직원들이 나와 그를 지켜본다.

회사에서 보낸 차도 그가 떠날 때까지 그의 주변을 맴돈다. 회사는 회사 앞 나무에 플래카드를 거는 것도 회사 소유의 나무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런 회사를 지켜보면서 그는 "나 하나 때문에 저렇게까지 하는 거 보면 대단하지 않나"며 쓴웃음을 짓곤 했다.

지금 그는 혼자서 감당해내기엔 너무나 큰 삼성에 맞서 마지막으로 법에 호소하려 한다. 그는 삼성SDI를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든든한 지원군도 생겼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변호인으로 유명세를 탄 박훈 변호사가 그와 함께하기로 했다.

문득 그가 그토록 싸웠던 회사에 이토록 기를 쓰고 들어가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삼성에서는 노조가 없으니 회사가 부당한 짓을 해도 노동자들이 어디가서 하소연을 못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삼성SDI에도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고 말겁니다, 그게 내가 할 일이거든요"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태그:#삼성, #이만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