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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건돌리기를 하며 약간의 긴장을 나누는 아이들, 근데 누가 라오친구일까요?
 수건돌리기를 하며 약간의 긴장을 나누는 아이들, 근데 누가 라오친구일까요?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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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라오스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방비엥의 중등학교 청소년들 10여 명이 '미스터 리'의 치킨하우스 앞으로 나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1~2학년들이다. 남자 녀석들 중에는 흰색 남방에 목걸이를 살짝 늘어뜨린 아이도 있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하늘 위로 멋지게 띄운 녀석도 있다.

여자 아이들의 머리스타일이나 옷 매무새도 나름 세련돼 보이는 것이 사실 좀 의외였다. 방비엥을 라오스의 시골마을로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들려준 수경이나 서희의 말을 빌리자면 좀 '노는' 아이들처럼 껄렁해 보여 그 이들은 긴장됐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함께 온 두 명의 교사는 전형적인 시골뜨기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한 분은 영어, 다른 한 분은 컴퓨터를 가르친단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예정보다 2~3일 늦게 방비엥에 도착하는 바람에 이곳 아이들이 많이 기다렸던 모양. 오지랖 넓은 우리 '미스터 리'가 그곳 교장 선생님을 직접 만나 두 나라 청소년들의 만남을 미리 주선해줬던 것이다.

다른 환경, 긴 세월 뛰어넘는 아이들의 소통

   함께 걷고 웃으며 얘기하다보면 어느새 우린, 친구..
 함께 걷고 웃으며 얘기하다보면 어느새 우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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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어 선생님은 내일이 시험 날인데도 아이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줬다. 그만큼 이곳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과의 만남을 기다려왔다는 뜻일 게다. 아내와 내가 라오스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서로에 대해 탐색만 하고 있다. 내가 나서서 서로의 이름을 소개하게 하고 오늘 소풍의 목적지인 땀짱 동굴을 향해 출발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은 참 신기한 존재다. 쭈뼛거릴 때는 언제고, 서로 영어가 서툰 처지인데도 동굴로 걸어가는 1시간 남짓의 시간 사이에 어느새 끼리끼리 친해진다. 동갑내기를 찾아내고,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확인하고, 두 나라 학교의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교환한다. 그렇게 두 나라의 아이들은 전혀 다른 자연환경이나 교육환경에서 살아온 짧지 않은 세월을 잠깐의 시간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훌쩍 뛰어넘어 소통한다.
 
동굴 탐험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위해 인근 식당에 들렀다. 라오 아이들은 각자의 도시락을 싸왔다.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음식을 맛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힘줘 세워준다. 어느새 친구가 됐다는 뜻이다. 입이 짧기로 유명한 유진이까지 숨을 꾹 참고 삼키는 것이 분명한데도, 얼굴은 히죽 웃어 보인다.

   KO-LAO 빅 매치..
 KO-LAO 빅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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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O-KO 수중 빅 매치..
 LAO-KO 수중 빅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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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점심을 해치운 남자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기 시작한다. 나도 끼어볼까 하다가 햇살을 좋아 잔디밭에 벌러덩 누웠다. 남자 아이들의 머리통(?)이 카르스트 봉우리들을 배경 삼아 공을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햇살에 눈이 부셔 가늘게 눈을 뜨고 보니, 어째 그들 모두가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함께 지내온 사이인 것만 같다. 사내 녀석들이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둥근 축구공 하나면 전후반 10분 새 친구가 되고 만다.

오후에는 모두가 둘러앉아 게임을 하기로 했다. 라오 아이들이 먼저 하자고 내어놓은 게임이 있어 설명을 들어보니 다름 아닌 '손수건 돌리기'다.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앉아 술래가 몰래 등 뒤에 손수건을 던져놓고 도망가면 이를 발견하고 쫓아가는, 내 유년시절에 했던 그 단순한 게임에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쫓고 쫓기며 신이 났다.

또 라오의 민속춤도 배웠다. '로꼬냥'이라고 하는 라오 노래에 맞추어 둥글게 크고 작은 두 개의 원을 만들어 마주보고 파트너를 바꾸어가며 민속춤을 추는 놀이었다.

"다시는 못 만날지 몰라 슬프다"

   수건돌리기에서 걸린 영어선생님과 그를 응원하기위해 나온 라오친구들
 수건돌리기에서 걸린 영어선생님과 그를 응원하기위해 나온 라오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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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노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는 아이
 우리가 노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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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땀을 빼고 나서는 동굴 아래 작은 못에서 수영을 했다. 수영에 자신이 있는 희경이와 성호와 승현이와 윤미는 라오 아이들을 따라 동굴 입구로 통하는 수로로 들어가더니 한 참 만에 반대쪽에서 나왔다. 라오 아이들이 평소 탐험하는 동굴 안 물길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하루 소풍이 끝났다. 하지만 우리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앞에 도착해서도 아이들은 헤어질 줄을 모른다. 이미 이메일이나 연락처를 교환하고도, 아쉬움이 남아 마냥 서성인다. 이국땅에서 친구를 혹은 이국에서 여행 온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분명 특별한 경험이긴 할 것이다. 결국 다들 옷이 물에 젖어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된 내가 그만 헤어지자고 매정하게 미련의 줄을 끊어버리고서야 어려운 이별이 완성됐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KO-LAO'가 형성된 것이다. 아이들은 다음날 저녁 자기들끼리 또 만났다. 라오 아이들이 시험이 끝난 시간에 약속을 정해 저녁식사를 같이 한 모양이었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은 녀석들은 그 다음다음 날 아침 라오 아이들의 학교에 놀러 갔다 왔다고 했다.

   땀장 동굴 위에서 내려다 본 샛강과 방비엥의 풍경
 땀장 동굴 위에서 내려다 본 샛강과 방비엥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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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 친구들이 게스트하우스까지 오토바이를 몇 대씩 타고 와서 태우고 간 것이다. 그날 아침 라오 친구들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그들 학교에 놀러갔던 일은 우리 여행학교 아이들에게도 인상 깊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몇 아이들의 그날의 일기에 그곳 학교의 풍경과 분위기가 잘 담겨 있다.

"처음엔 많이 어색했는데 서로 이름을 물어보고 공감대를 찾으면서 많이 친해졌다. 써머, 키후, 콘, 설 등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서 너무 기뻤다. (방비엥 2일째)

어제 놀았던 라오스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우리한테 내일 학교로 오라는데 정말 설레고 긴장된다. 라오스 학교는 과연 어떨까? (방비엥 3일째)

라오스 학교는 정말 자연과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교실 크기는 우리 학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운동장은 우리보다 100배는 더 넓은 거 같다. 학교 뒤에는 강이 흐르고 숲이 있어서 마음껏 뛰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점이라면 쓰레기가 많다. 친구들과 라오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다시는 못 만난다는 생각에 많이 슬펐다.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메일을 보낼 것이다. (방비엥 4일째)" - 박성호(열일곱 살)
 
드라큘라, 고미 - 땀짱 동굴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드라큘라, 고미 - 땀짱 동굴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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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소풍을 통해 우정을 나눈 두 나라의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됐을까. 라오 아이들 중에는 한국어를 익히고 태권도를 배운 친구도 있고, 한국에 가는 것이 꿈인 아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대한민국이 부러울 수도 있겠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이곳 아이들의 순박한 모습과 교실은 초라해도 운동장과 숲이 넓은 학교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낯선 타국에서 서로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과 만나고 초대받고 헤어지고 못내 아쉬워하는 이 모든 감정과 경험들이 그들에겐 아주 특별하고도 소중한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게 되리라는 점이다. 
    
-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날 일기에 적어둔 것처럼 하루 소풍으로 만난 그이들은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한동안 서로 메일을 주고받고 페이스북으로 소통했다.

덧붙이는 글 | 본 연재 기사는 <제민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은 김향미 & 양학용 여행작가 부부가 지난 겨울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명의 청소년과 2명의 대학생과 함께 라오스로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저서로는 967일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묶은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예담)와 라오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등이 있습니다.



태그:#라오스, #여행학교, #방비엥, #시속4킬로미터의 행복, #KO-L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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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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