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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가사도 가는 철부선입니다.
 진도에서 가사도 가는 철부선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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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는 진한 '애달음'이 있습니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의 '간절함', 물질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자식들의 '속탐', 뭍으로 돈벌이 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그리움'... 이 애달음을 담은 게 민요요, 진도 소리일 것입니다. 

진도에는 '진도스러움' 또는 요새 유행하는 노래에 빗대 표현하면 '진도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우선 시 한 편 읊지요.

바람 따라가듯
길 없어도
바다를 향해 가슴을 열고
너에게 가리

일곱 빛깔 영롱한 별빛아래
바다와 하늘이 몸을 섞으며
슬픔을 묻는 곳
그 섬에 가리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돌아온 길 돌아다보며
먼 하늘 한 자락 눈에 묻고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서 있는

남쪽 끝 그 섬으로
나는 가리
(김정화, <그 섬에 가리>)

이 시는 '애달음' 중, 육지로 돈벌이 간 '자식의 관점'에서 쓰여진 듯합니다. 부모가 사는 섬을 향한 애타는 그리움이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이런 심정으로 '생명회의' 식구들과 지난 13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로 향했습니다.

"우리 각시는 내 노래소리에 반해 시집왔다니깐!"

가사도 이종식 할아버지입니다.
 가사도 이종식 할아버지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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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 해수욕장입니다.
 가사도 해수욕장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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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 딸린 가사도행 선박에 올랐습니다. 풍경 구경과 해수욕을 위함이었습니다. 진도서 가사도까지는 약 3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뱃삯은 어른 3천 원. 진도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오시는 촌로들이 계시더군요. 그 중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종식(85)·장동엽(72) 부부였습니다.

- 어르신은 아내를 어떻게 홀리셨대요?
"떽끼, 홀리다니... 고거시, 워쳤게 만났냐믄 소리 땜시 결혼했어."

- 고거시 뭔 소리다요?
"우리 각시는 나가 부르는 소리에 반해 나한테 시집왔다니깐."

- 에이, 설마... 아무리 노래를 잘헌다고 소리 땜에 시집왔을까. 안 그렀소, 어무니?
"아녀, 아녀. 그 거시 맞어. 나넌, 우리 신랑 소리 듣고 핑 돌아 홀려서 시집갔구먼."

여기가 소리의 고장 진도군 아니랄까봐, 소리가 인연이 돼 결혼했다는 말까지 듣게 됐습니다. 그러니 '진도스럽다' 혹은 '진도 스타일'이라고 하는 겁니다. 말이 나온 김에, 어르신께 각시를 홀렸다는 소리 한 구절 부탁했습니다.

이종식 할아버지는 거침없이 남도 민요 한 가락을 뽑았습니다. 일명 '팔자 타령'이라나, 뭐라나. 어르신의 소리를 들으니 "중매로 남편을 처음 만나 소리에 반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더군요. 진짜 반할만 했습니다.

"우리 각시는 당최 애정표현 헐 줄을 몰라!"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가사도 장동엽 할머니입니다.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가사도 장동엽 할머니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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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 마을입니다. 여유가 넘칩니다.
 가사도 마을입니다. 여유가 넘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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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엽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 어무니, 여든이 넘은 신랑이 아직도 매력적이에요?
"그란께 아직까지 살지. 안 그라믄 못살아."

열아홉에 혼인했다는 장동엽 할머니는 4녀 2남을 낳고, 53년 동안 부부로 잘 살고 계신답니다. 부부생활만 '환갑'이 다 돼가는 이들 부부도 불만이 있더군요. 다 늙어 힘없는 마당에, 황혼 이혼이 무서워 밥 안 줘도 쓴 소리 못하고 쩔쩔맨다는 요즘, 이종식 할아버지께서 겁 없이(?) 불만 하나를 덥썩 말씀하시더군요.

"나넌, 각시헌테 애정표현을 잘 허는디, 우리 각시는 당최 애정표현 헐 줄을 몰라."

난 또 뭐라고... 부부 간 애정 전선을 거침없이 토설하시는 걸 보면 아직까지 당당하나 봅니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한 게 있습니다. '진도 스타일'은 아무래도 '민요'와 함께 '당당한 콘셉트'인가 봅니다. 어르신들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가사도 해수욕장이 한산해 '생명회의' 식구들이 독차지했습니다.
 가사도 해수욕장이 한산해 '생명회의' 식구들이 독차지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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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진도, #가사도,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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