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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용범(50대, 가명)씨는 올해 4월 폐업을 고민했다. 편의점을 운영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본사 설명과는 달리 매출도 저조하고, 주변에 새로 들어선 편의점 간의 경쟁으로 수익도 점점 줄어들었다. 인건비라도 아끼고자 아르바이트를 채용하지 않고 김씨 부부가 직접 밤낮으로 교대를 하며 일을 했지만 허사였다.

김씨는 결국 본사에 폐점을 문의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 도착한 본사의 견적서를 본 순간 김씨는 말문이 막혔다. 견적서에 갖은 명목으로 매겨진 수천만 원의 폐점비용이 청구돼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창업을 문의 할 때는 이런 내용은 없었어요. 장사가 잘된다는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 해줬지. 손해가 막심해 폐점을 하겠다는데 몇천만 원의 비용을 물라니…."

폐점비용 5000만 원에서 1억 원 사이... '울며 겨자 먹기'

김씨가 실제 받아본 견적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견적서 예시 김씨가 실제 받아본 견적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박명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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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은 점주인 김씨가 본사 직원을 통해 받아본 실제 폐점내역이다. 김씨는 "몇 십 페이지에 달하는 사업계약서에 이런 내용들은 설명돼 있지 않았다"며 "영업담당 직원한테 폐점에 관해 물어봐도 사업이 잘돼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얼버무리기만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폐점을 할 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테리어 잔존가'와 '위약금'은 편의점을 개점하고 실제 운영을 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본사는 보통 5년 계약을 하고 편의점 시설에 대한 투자를 한다. 잔존가란 본사가 투자한 비용을 남은 계약기간 만큼의 비율로 환산한 것이다. 계약이 체결되고 인테리어 투자가 끝나기 전까지 점주는 자신의 점포에 얼마의 비용이 투자되는지, 또 중도에 계약을 중단할 경우 얼마의 비용을 물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위약금도 마찬가지다. 대개의 편의점은 수익의 35%를 매달 본사에 로열티로 지불한다. 만약 점주가 폐점을 하려면 위약금 명목으로 1년치의 로열티를 한꺼번에 지불해야 한다. 결국 편의점을 1년간 운영해, 한 해 동안 얼마의 로열티가 지불되는지 확인하지 않는 이상 점주들은 위약금의 규모를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이런 폐점비용에 관한 내용을 점주들이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사업을 하는 데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인 '안티 편의점'에는 편의점 폐업과 관련해 곤란을 겪고 있는 점주들의 사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폐점에 청구되는 비용은 보통 5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에 달한다. 결국 사업을 포기하고 싶어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편의점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에서 편의점을 1년 넘게 운영한 한 점주는 "창업만 하면 하루 매출 170만 원이 보장된다는 말과 달리 아르바이트 인건비 줄 돈도 없어 빚을 내야 했다"며 "폐점 의사를 밝히니 위약금으로 3000만 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이미 수천만 원의 손실이 났는데, 이제 폐점하려면 또 빚까지 져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편의점 2만개 시대'... 시작은 쉽지만 발 빼긴 어려운 '레드오션'

반경 50m 안에 세 군데의 편의점이 위치하고 있다
▲ 혜화동 반경 50m 안에 세 군데의 편의점이 위치하고 있다
ⓒ 이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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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한국편의점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 점포의 숫자는 총 2만650개로, 2010년 1만6937개보다 20% 이상 상승했다. 편의점협회는 올해 점포수가 2만4100여개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매출액도 해마다 상승해 전체 편의점의 매출액은 9조85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17.3%(1조4519억) 증가했다. 편의점협회는 2012년 매출액은 11조1600억 원대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장기간의 불황, '자영업의 위기'에서 편의점 사업만큼은 해마다 급성장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편의점 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적은 초기자본으로도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사는 점주에게 인테리어 비용과 집기일체 등을 제공하며 사업을 지원한다. 이런 방식으로 점주들은 보통 4000~6000만원 자본금만으로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대신 점포의 임차비용을 점주가 부담하고 매달 이익의 35%를 본사에 지급해야 한다. 이에 소위 '빅3(세븐일레븐, CU, GS25)'라 불리는 편의점 브랜드 사이의 점포 신설경쟁은 개인들의 편의점 창업을 더욱 부추긴다.

문제는 이렇게 과열된 경쟁으로 인해 이미 편의점 수요가 과포화 상태라는 점이다. 실제 서울 시내 주요 상권이나 역세권을 살펴보면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집중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동일 브랜드의 편의점이 맞은편 길가에 들어서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편의점협회에 따르면 일평균 편의점의 매출액은 2010년에 155만8000원으로, 2009년 154만3000원과 비교했을 때 크게 상승하지 않았다. 즉 편의점 시장은 더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없는 '레드오션' 사업이다. 하지만 본사들 간의 경쟁은 여전히 과열 상태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점주들에게 돌아간다. 이런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고 편의점 사업에 뛰어든 점주들은 기대와는 다른 매출과 높은 위약금이라는 이중고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영업사원, 실적 위해 수익 과장... 본사도 책임 있어"

서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우리는 위약금과 계약기간에 묶여 손해를 보면서까지 편의점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본사는 개인점주들이 망하든 말든 로열티와 유통마진만으로 돈을 벌고 있다"며 지적했다. 그는 "5년이란 계약기간과 로열티 35%라는 구조 자체가 본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윤철한 부장은 "점주들이 겪는 문제는 영업사원들이 실적을 위해 수익을 과장하거나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라며 "이를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본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본부가 개인점주들을 수익의 대상으로만 보고, 무분별하게 점포를 확장해 이익을 빼먹는 구조가 편의점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 편의점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계약 14일 전 정보공개서를 통해 사업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공개되고 있다"며 '사업 관련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점주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계약은 개인점주와 본사 간에 1대1로 이뤄지는 것으로서, 모든 계약은 상호 동의 하에 이뤄지는 것이다"라며 "계약 시 본부 측이 일방적으로 부당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덧붙이는 글 | 김혜란·박명본·이윤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1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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