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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하기 전부터 벌써 잠이 오는 큰 아이. 하지만 끝까지 경기를 봤습니다.
 축구를 하기 전부터 벌써 잠이 오는 큰 아이. 하지만 끝까지 경기를 봤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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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됐습니다.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 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을 결정전. 막둥이는 영국과 브라질 경기처럼 반드시 자신을 깨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니 부탁이 아니라 아예 자신이 알람을 설정했습니다. 이번에는 큰 아이도 보겠다며 나섰습니다.

"우리는 내일 새벽 일본하고 축구 볼 것인데. 먹을 것 있으면 좋겠다."
"아빠 내가 아몬드 준비했었요."
"아몬드? 아몬드보다는 더 맛있는 것 먹어야지."

"아몬드 밖에 없어요."
"엄마하고 누나는 잠자고 있으니까. 우리끼리 가서 먹을 것 사 오면 되잖아."

"아빠 정말이예요. 그럼 통닭 사주세요."

아내와 딸 아이가는 이미 꿈나라에 갔습니다. 아들 둘과 마트에 가서 통닭과 육포를 샀습니다. 먹을거리까지 준비했습니다. 이제 승리만 남았습니다. 긴밤을 지새우고, 아이들은 알람 소리에 일어났습니다. 경기를 시작하자 막둥이는 축구 전문가(?)답게 해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통탉'(?). 정말 대단한 아이들입니다. 육포까지 먹었습니다.
 새벽에 '통탉'(?). 정말 대단한 아이들입니다. 육포까지 먹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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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패스를 뒤로 하는데. 옆에 우리 선수가 있는데."
"옆으로 패스했으면 일본 선수에게 빼앗겼을 수도 있어."
"바로 때려야지, 패스하면 안 되잖아. 일본이 잘 하는 것 같아요. 벌써 일본은 슛을 세개나 때렸는데 우리나라는 하나도 때리지 못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봐라."
"심판이 왜 저래요. 우리만 파울을 주고, 경고도 3개나 주었어요."

사실 심판이 카드를 조금 남발했고, 박주영 선수가 골을 넣기 전까지는 우리 선수들이 슛을 하나도 때리지 못했습니다. 막둥이 분석이 나름대로 맞았습니다.

"아빠 우리나라가 이길 것 같아요?"
"이기지."

"어떻게 아세요?"
"박주영 선수가 걸을 넣을 것이니까. 우리가 이기지. 아빠가 말했지. 박주영 선수가 넣으면 이기고, 넣지 못하면 진다. 브라질 전에서도."


그 순간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박주영 선수가 일본 선수 4명을 거느리면서 날린 슛이 일본 골문을 갈랐습니다.

"아빠 골이예요! 골! 박주영 선수가 넣었어요."
"골이다! 골!"
"아빠 말이 맞았어요. 박주영 선수가 골을 넣었어요."
"오늘 우리가 반드시 이길거다."

박주영 선수가 골을 넣자 좋아하는 막둥이
 박주영 선수가 골을 넣자 좋아하는 막둥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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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놀랐습니다. '박주영'이 누군인지 증명했습니다. 일본 선수들은 추풍낙엽이었고, 그 동안 자신을 향했던 수많은 비판을 한꺼번에 날려 버린 멋진 슛이었고, 골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선수 앞에 감격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이는 축구를 보면서도 책(만화책)을 읽습니다. 만화책이라고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1946년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 수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여 학업성적이 우수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파이베타카파 회원이었다가 하버드대학원에서 수학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밟다가 홀연 그만두고 전업 논픽션 만화가로 살아가고 있는 래리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만화책을 읽고,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일본과 축구를 하는 데 책을 보는 큰 아이. 공부를 잘하는지 궁금하겠지만 비밀입니다.
 일본과 축구를 하는 데 책을 보는 큰 아이. 공부를 잘하는지 궁금하겠지만 비밀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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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할 때도 만화를 보는 큰 아이 그럼 공부는 잘 할까요? 그건 비밀입니다. 학과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내일 중간고사인데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아이입니다. 이러니 아내와 저는 머리가 열릴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다그쳐도, 자기 갈 길을 갑니다. 어쩔 수 없지요. 후반전에 구자철 선수가 골을 넣고, 이겼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엄마 일어나요! 우리가 이겼어요!"
"엄마는 잘래."
"우리가 동메달을 땄는데 어떻게 잘 수 있어요?"

"엄마는 잔 다니까."
"누나 우리가 이겼어. 빨리 일어나."
"체헌아 잠 좀 자자."
"엄마와 누나는 우리가 이겼는데도 잠만 자네."


엄마와 누나 깨우기를 실패한 막둥이는 그래도 좋습니다. 그렇게 바랐던 일본을 이기고 동메달을 땄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수들 정말 잘했습니다. 그리고 막둥이는 올림픽 축구 6게임을 다 봤습니다. 당연히 전문가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 막둥이가 내린 분석을 통해 한국 축구는 더 나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대한민국 축구 화이팅입니다.


태그:#올림픽축구, #막둥이, #한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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