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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동상 보수현장 가림막 안에 전시된 맥아더와 지휘관들의 인천상륙작전 감행 당시 재현 부조 작품
 맥아더 동상 보수현장 가림막 안에 전시된 맥아더와 지휘관들의 인천상륙작전 감행 당시 재현 부조 작품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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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서울 수복과 한반도 남쪽의 공산화를 막았다는 점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고 맥아더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시대착오적인 논리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동상의 존폐와 상관없이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우상으로 떠받들어졌던 맥아더에 대한 재평가는 불가피해 보인다.(2005년 9월 19일자 <경향신문>, 국제부 김진호 차장)

지난 2004년 진보와 보수단체의 이념 갈등 논란으로 유혈참극까지 빚었던 맥아더 동상 문제가 인천 지역의 주요 쟁점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인천 중구청은 국고보조금 등 예산 6000만 원을 들여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을 앞두고 동상 보수를 개시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맥아더를 더 이상 한미동맹의 우호적 인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진보단체와 학계의 주장이 있고, 또 하나는 시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예산 6000만 원을 들여 보수한다는 자체가 혈세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중구청은 지난 4월 동상 보수를 시작하려했으나 당시 총선기간이 겹쳐 이념논쟁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해 연기해왔다. 구는 애초 동상을 다른 곳으로 옮겨 전체 보수를 실시하려 했으나 철거 논란 시비로 인해 현장에서 보수하기로 결정했다.

"동상 다리 부분이 심하게 찢겨... 보수 당연"

자유공원 초입에 보이는 인천학도의용대 추모비 사진
 자유공원 초입에 보이는 인천학도의용대 추모비 사진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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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10시 30분, 차를 몰고 인천 중구에 있는 자유공원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으나 60~70대로 보이는 노인층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보인 건 인천학군의용대 추모비였다. 이 추모비는 6.25전쟁 당시 참전했다 희생된 인천의 중고생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추모비를 돌아 계단을 오르니 바로 경찰 10여 명이 보였다. 이내 그 주변이 맥아더 동상이 있는 위치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경찰 경계는 삼엄했다. 2인 1조의 전경들이 동상 주변을 순찰했으며 젊은 소대장과 대원들 10여 명이 그 주위를 살피고 있다.

맥아더 동상 주변을 24시간 순찰하고 있는 전경들의 모습
 맥아더 동상 주변을 24시간 순찰하고 있는 전경들의 모습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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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동상 사진을 찍으려 다가서려했으나 이내 제지를 당했다. 그리고는 그 안에 있던 경찰들이 모두 기자를 에워쌌다.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기자는 경찰에게 "이거 너무 심하게 경계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소대장으로 보이는 경찰이 "저희도 지시에 따라 순찰을 하는 거라 어쩔 수 없다. 이해해달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어 경찰은 무전기로 관할 경찰서인 중부서 보안과에 연신 문의를 하며 기자의 사진촬영 허가를 문의했다. 그 후로 10분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동상 보수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장에는 2명의 노동자가 쉬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무더운 탓이다. 동상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촘촘히 둘러싼 겉포장 때문에 형체를 볼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나오면서 현장 노동자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기자님이시죠?(웃음) 현재 동상 아래 다리 부분이 심하게 찢어지게 터져 나와 보기에도 흉측해요. 상단 부분은 일정 정도의 크랙(균열)만 있는데 전체적으로 새단장을 해야 되요. 한 달이면 끝나니 나중에 다시 오세요."

현장에는 달랑 2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간은 한 달 남짓. 그렇다면 도대체 혈세 6000만 원은 모두 재료비로 쓰인다는 말인가. 현장을 나오면서 예산에 대해 다시 궁금증이 생겼다.

기자는 7일 오후 2시께 중구청 기획실과 주민생활지원과에 세 번의 통화를 했으나 담당자가 출장 중이라 답변을 드릴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다른 관계자에게 "혹시 보수 관련 예산내역서를 따로 받거나 열람할 수는 없나"라고 묻자 "현재 별도의 예산 내역서를 열람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는 답만을 들었다.

"동상 철거? 빨갱이들 같으니... 혈세 낭비는 막아야"

보수공사 가림막 사이로 살짝 보이는 맥아더 동상의 등부분 모습. 현장 노동자의 말대로 상단부분의 형체 손상은 많지 않아 보인다.
 보수공사 가림막 사이로 살짝 보이는 맥아더 동상의 등부분 모습. 현장 노동자의 말대로 상단부분의 형체 손상은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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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나와 주변에 있는 참전 군인들을 만났다. 6.25당시 백골부대 소속으로 참전했다는 최순진(1932년생)씨는 동상 철거에 대한 문제를 들먹이자 바로 '빨갱이'라는 말로 기자의 말을 막았다. 그는 "맥아더 덕분에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살았다는 걸 왜 모르냐"며 "동상 철거를 또 들먹인다고? 그렇게 말하는 자들은 전부 빨갱이와 똑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기자는 다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과 장사상륙작전에서의 학도병 희생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최씨는 "그건 잘 모르겠다. 물론 잘잘못은 따지고 보는 게 맞지만"이라며 말문을 닫았다. 최씨는 "지금은 외국관광객도 많이 오기 때문에 전시용으로라도 보수를 해야 한다. 나는 (동상 보수에) 찬성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7사단에 장교로 근무하며 당시 전쟁의 상흔을 또렷이 기억한다는 이아무개씨는 "맥아더는 한국의 명예를 살린 사람이고, 나라를 살린 사람"이라며 "동상을 철거한다는 논리는 '나는 빨갱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최씨와 같은 대답을 했다.

동상 보수 문제에 대해 이씨는 "외국관광객이 볼 때 더러운 동상을 세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며 "다만, 한 달 반 보수하면서 6000만 원이나 비용이 드는 것은 몰랐다. 내역을 철저히 구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 옆에 있던 김아무개씨도 "지금 자유공원 주변에 불필요한 예산 낭비가 너무 많다. 보도블럭 잦은 교체도 그렇고, 땅이고 나무에 설치한 불필요한 형광조명도 그렇다"며 "동상 또한 혈세가 낭비된다면 똑바로 그 내역을 공개하고 철저히 검증받아야 한다. 시민들의 예산을 함부로 쓴다고 하면 어느 누가 좋겠느냐"고 이씨의 말을 거들었다.

자유공원 내에 우뚝 솟아있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사진
 자유공원 내에 우뚝 솟아있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사진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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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 한 케이블채널에서는 한국전쟁과 맥아더에 대한 재조명 보도를 통해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희생물이 된 '장사상륙작전'에 대한 전쟁 비사를 방영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작전은 1950년 9월 14일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리에서 벌어진 학도병 상륙작전으로 북한군 교란을 목적으로 감행된 임무였다.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과 양동작전으로 맥아더에 지시에 의해 은밀히 진행됐다. 이는 당시 15세~17세의 학도병으로 징집된 772명이 장사에 상륙, 국도 제7호선을 봉쇄하고 조선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한 작전이다. 하지만 맥아더는 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영웅 칭호를 수여받았지만, 학도병 대부분은 미군 등 연합군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몰살되거나 실종됐다.


태그:#맥아더,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장사상륙작전, #인천 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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