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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영희 다섯 번째 시집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푸른사상)는 시인이 철창에 기댄 채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을 찾아 쓴 시편들과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별 희한한 꼬라지(?)를 꼬집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 시인 박영희 시인 박영희 다섯 번째 시집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푸른사상)는 시인이 철창에 기댄 채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을 찾아 쓴 시편들과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별 희한한 꼬라지(?)를 꼬집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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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 세상 봐라
우리보다 한수 위인 놈들 짜드리 찼다 아이가
니미 큰 차이 없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판검사 교수 회사원...
이놈아들 중에 여게 한번 안 들어올 놈 몇이나 되겄노
절마들은 줄타기를 잘한 거고
우린 다만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알겄나? -81쪽, '우린 다만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몇 토막 

"검열 1순위 한겨레 / 빌어먹을 두 겨레"(한겨레는 빨갱이 신문)라며 교도소에서 한겨레를 구독하는 수인을 빨갱이라 낙인찍는 교도관을 거침없이 잘근잘근 씹는 시인 박영희.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간 광부들 삶을 서사시로 쓰기 위해 1992년 방북했다가 15년 형을 받고 6년 7개월 동안 독방에 갇혀 있다가 1998년 노동시인 박노해와 함께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나온 시인 박영희 다섯 번째 시집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푸른사상)는 시인이 철창에 기댄 채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을 찾아 쓴 시편들과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별 희한한 꼬라지(?)를 꼬집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이 시집 제목에 나오는 '학교'는 "쇠와 유리로 만든 제품이 없"(소유)는 감옥이다. 

이 시집은 제1부 '사람도 때로 짐승처럼 운다', 제2부 '뫼르소의 최후 진술은 거짓이 아니었다', 제3부 '열쇠는 잠긴 문을 열지 않는다', 제4부 '우린 다만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제5부 '그곳은 환경이 없었다' 등 모두 5부에 56편이 감옥 그 속내를 발가벗기고 있다. "옥창살 틈새로 / 도적처럼 들어온 / 햇살 한 줌"(손님)처럼 그렇게.

"그런 사랑도 있더라 1, 2", "사람도 때로 짐승처럼 운다", "타살", "사상과 소매치기", "답장을 쓸 수 없었다", "비가 내려요", "못잠", "사형수", "나도 법대로 너도 법대로", "슬픈 하루", "시인과 청탁", "조타수", "한겨레는 빨갱이 신문", "좆밥", "그때 그 닭들처럼", "거미", "사회참관", "봉함엽서", "출소를 꿈꾸며", "존속살인" 등이 그 시편들.

시인 박영희는 ‘시인의 말’에서 이번 시집에 대해 “1992년 1월부터 1998년 8월까지의 감옥일기”라고 쓴다.
▲ 박영희 다섯 번째 시집 시인 박영희는 ‘시인의 말’에서 이번 시집에 대해 “1992년 1월부터 1998년 8월까지의 감옥일기”라고 쓴다.
ⓒ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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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때론 짐승처럼 운다"


어디, 조용한 데 가서

혼자 살고 싶다는

이 말을 나는
뇌리에서 말끔히 지워버렸다 -24쪽, '독방' 모두

아, 감옥 독방생활 6년 7개월!!!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몸과 마음이 쓰리고 아팠을까. 면회를 오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담당교도관에게 듣고 "한 마리 짐승"(사람도 때론 짐승처럼 운다)처럼 울부짖고 있는 우석이를 그저 바라보아야만 했던 시인. 우석이가 오죽 깊고 서럽게 울부짖었으면 "교도관도 더는 가까이 가지 못"할 정도였던 그 뼈아픈 세월을 보내야 했던 시인.

시인 박영희는 '시인의 말'에서 이번 시집에 대해 "1992년 1월부터 1998년 8월까지의 감옥일기"라고 쓴다. 그는 "일부러 쓰려고 했던 건 아니다. 2004년 겨울, 만주에 갔더니 감옥이 보였다"라며 "그러니까 나는 다섯 번째 시집을 우연찮게 만주에서 얻은 셈이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감옥을 추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는 "6년 7개월 동안 나는 같은 사상범보다는 잡범들과 노니는 걸 더 즐겼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왜 그랬을까. 그는 "그들은 무궁한 스토리를 간직한 채"였고, "아마도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끌린 나머지 우는 법을 다시 배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그 감옥에서 그들과 노닐며 "교도소는 학교로 / 사형장은 넥타이로 공장으로... 남자 거시기는 번지 없는 주소로 / 여자 거시기는 아랫목으로"(은어) 바꾸어 부르며 속으로 엉엉 울었다.

"젓가락을 씹지도 않은 채 꿀꺽 삼켜버린"(심심풀이 소동) 일이 '심심풀이 소동'쯤으로 여겨지는 곳, "어디, 조용한 데 가서 / 혼자 살고 싶다는"(독방) 말이 너무나 사치스러운 곳, 스물일곱 청년이 "웩, 목 졸려 죽"어도 "누구도 책임질 필요 없는"(타살) 곳. 시인은 그 이상한 나라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가슴에 시로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시 "읽지 마라, 숨이 턱턱 막힌다"

출소하면 말예요
술도 안 마시고
밥도 안 먹고
연애도 안 할 거예요

곡성장에 가
고무신부터 한 켤레 살 거예요

그 고무신 다 닳도록
미친 듯 걸을 거예요 -94쪽, '출소를 꿈꾸며' 몇 토막

시인 박영희 다섯 번째 시집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는 시로 꾹꾹 눌러쓴 20세기 끝자락 우리나라 감옥을 발가벗긴 르포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감옥을 '학교'라 여기는 것도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별의별 일들은 감옥 밖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우리나라 자화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창살 밖 비둘기 소리를 "온종일 구우구우구우구우구우 / 누군가 죽어나갈 것"처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시인 이응인은 "읽지 마라. 숨이 턱턱 막힌다. 세상의 밑바닥 그 아래, 한 치도 에누리 없는 알몸 그대로 인간을 만나는 곳. 박영희, 그가 있었던 학교는 '감옥'"이라며 "시를 읽어가며 호흡이 가빠질 때마다, '그는 왜 갇혔었나?' 끊임없이 물어봐주길 바란다. 삼십 년을 갇혀 살고서도 코앞에 있는 접견실도 못 가본 장기수가 있는 한, 우리의 삶도 여전히 철조망에 갇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썼다.

시인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는 "단 하루라도 좋으니 형광등을 끄고 잠들 수 있고, 따뜻한 방에서 한숨 푹 잘 수 있고, 목욕탕에서 언 몸을 녹일 수 있고, 흠뻑 비에 젖은 채 밤길을 걸을 수 있고, 사랑하는 딸에게 마음대로 전화를 걸 수 있고, 그리고 자신의 방문을 직접 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인의 토로에 눈물이 난다"며 "통일이며 인권의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될 세상이 우리가 살아 있는 날에 올 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시인 박영희는 1961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에서 태어나 지금은 대구에서 살고 있다. 1985년 <민의>에 시 '남악리'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시집으로 <조카의 하늘> <해 뜨는 검은 땅> <팽이는 서고 싶다> <즐거운 세탁>이 있다. 서간집 <영희가 서로에게>,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 평전 <김경숙>, 르포집 <길에서 만난 세상>, 기행 산문집 <만주를 가다>, 청소년소설 <대통령이 죽었다>를 펴냈다.

덧붙이는 글 | < 문학in >에도 보냅니다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박영희 지음, 푸른사상(2012)


태그:#시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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