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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우라지에 가면 아우라지 처녀를 만나러 가는 징검다리가 있다.
▲ 징검다리 정선 아우라지에 가면 아우라지 처녀를 만나러 가는 징검다리가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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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기세가 뜨겁다. 얼마나 더우면 '가마솥 더위'라 '살인더위'라 불리겠나. 하루 일기를 예보하는 기상 캐스터의 목소리도 숨가쁘다. 강원도 정선하고도 산중에 사는 나로서는 그다지 이해되지 않는 풍경이나 도시는 덥고 사람은 지쳐간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 탈출을 꿈꾼다.

해마다 그러하지만 손꼽히는 여름 휴가지는 강원도다. 산과 계곡이 많고 푸른 바다가 있으니 더위를 피하기엔 제격이다. 그 중에서 정선은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리스트)에 들어도 좋을만큼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고향 같은 곳이자 영혼의 땅이다. 정선은 서울에서 고작 230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목포, 부산보다 멀게 느껴지고 그렇게 생각된다.

정선의 바람과 땅이 만든 음식 '콧등치기'

대한민국에서 정신적 거리로 가장 멀고, 오지로 알려진 정선도 요즘엔 휴가객으로 북적인다. 한적하던 시골 국도에 차량이 꼬리를 무는 모습은 생경하고 신기하다. 정선을 찾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곤드레 나물로 밥을 한 곤드레밥과 메밀로 만든 콧등치기국수이다. 

정선에 와야만 맛볼 수 있는 '콧등치기국수'는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이 잔뜩 드는 음식이다. 콧등치기의 주 재료는 메밀이다. 메밀의 뿌리는 노란색, 줄기는 붉은색, 잎은 푸른색, 꽃은 흰색, 열매는 검은색으로 이루어졌다 하여 '오방색'이라 불리기도 한다. 오방은 우주를 뜻한다. 그러하니 콧등치기국수 한 그릇엔 건강과 함께 우주가 담겨있다.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 강원도 일대에선 주식으로 쓰일 정도로 즐겨먹었다. 메밀만으로 만든 음식이 메밀밥에서부터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전병, 메밀묵, 메밀국죽 등등이니 메밀음식으로 밥상을 차린다고 어색할 일 하나도 없다. 그 중에서도 정선의 명물이 된 콧등치기국수는 무더운 여름철 가장 인기가 높다.

강원도 정선의 진정한 보양식, 콧등치기국수입니다.
 강원도 정선의 진정한 보양식, 콧등치기국수입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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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을 붓고 반죽을 하여야만 찰기가 생기는 메밀가루는 보통 성심으론 제 맛을 내기 어렵다. 메밀가루가 있다 하여 집에서 쉽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때문에 어지간한 배포가 있지 않고서는 사 먹는 편이 정신건강에도 좋다.

나는 어릴 적부터 국수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어떤 국수라도 고개부터 흔들었다. 하지만 정선 여량면에 있는 청원식당의 콧등치기국수는 마다해 본 일이 없다. 전날 술을 먹은 날이면 스스로 찾기까지하니 내 고약한 입 맛을 맞춰주는 그 집만의 비결이 궁금할 뿐이다.

식당 주변으로 두 물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아우라지가 있고, 정선아라리 가락이 산자락을 타고 슬금슬금 내려오는 풍경이 있어 그 집의 국수맛이 유독 좋을 수 있겠다 싶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2대 째 대물림되고 있는 그 집만의 맛의 비밀이 나를 홀린 게 분명하다.

생이 서럽도록 콧등을 맞아보라

어느날 나는 콧등치기국수가 먹고 싶어 일부러 그 집을 찾았다가 돌아와서는 이런 글을 썼다.

안개 자욱한 철길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날이나
폭설로 지워진 길을 내고 있을 때
이별을 통보 받았다면 
흡뜬 눈을 조용히 감을 일이다

아우라지 처녀가 하루 두 번
기차를 떠나보내 듯
저 홀로 견딜만 하다면
아라리 아라리
스스로 제 몸을 다스려야 할 일이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도 지쳐
감꽃마냥 지고 싶은 날 있다면
여량역 앞 청원식당에 가
콧등치기 시켜놓고
생이 서럽도록 콧등을 맞아 볼 일이다

- <강기희 졸시 '청원식당' 전문>

그날 만난 아우라지와 청원식당의 모습은 이러했다. 오늘처럼 뜨거운 여름날 오후였다면, 다른 글이 나왔을 것이나 그날은 생이 서럽도록 콧등을 맞아 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정선 콧등치기 국수 상차림.
 정선 콧등치기 국수 상차림.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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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로 차지게 반죽한 것을 도마에 놓고 칼로 숭숭 썰어 끓여낸 국숫발은 굵고 앙칼지다. 그것을 찬물에 씻어 만든 국수가 콧등치기국수인데, 후룩 들이키면 긴 국숫발이 콧등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만약 누군가가 콧등 한 번 맞지 않고 콧등치기국수를 먹었다면 그는 콧등치기국수를 먹지 않은 것과 같다. 제 아무리 테이블 매너가 좋고 고상한 식사 습관을 지녔더라도 콧등치기를 먹을 때는 상대의 혀를 감아 채듯 강한 흡인력을 자랑해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메밀국수를 먹다 콧등을 치는 국숫발이 재미있어 그때부터 콧등치기가 되었다는 정선의 '콧등치기국수'. 이제 메밀국수라는 이름마저 밀어내고 번듯하게 자신의 자릴 잡았다. 하지만 메밀국수와 콧등치기는 같은 메밀로 만들었으니 "어, 이 집엔 콧등치기는 없고 메밀국수만 있네"라는 말은 하지 말자. 정선 어느 음식점에 가도 콧등치기는 다 한다.

자, 얼얼하게 콧등을 맞아보고 싶다면 자동차 핸들을 정선으로 꺾어 보지 않겠는가. 정선엔 콧등치기 말고도 여름을 날려 줄 음식들이 즐비하다. 


태그:#정선아리랑, #아우라지, #콧등치기, #레일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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