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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앞에서 열린 유기농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촛불 대신 호박, 가지, 오이를 들고 정부의 두물머리 공사 강행을 규탄했다.
▲ 유기농집회 1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앞에서 열린 유기농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촛불 대신 호박, 가지, 오이를 들고 정부의 두물머리 공사 강행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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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삽을 들면 우리의 밥상을 지키는 생명의 삽이 됩니다. 토건족이 삽을 들면 우리의  산을 무너뜨리고 강바닥을 시멘트로 엎어버리는 파멸의 삽이 됩니다. 두물머리는 파멸의 삽에 맞서 생명을 지킬 마지막 보루중의 하나에요. 더 이상 파괴의 삽을 들지 않길 바랍니다."

온라인 애니메이션·게임 커뮤니티 '오덕액션'의 한 활동가는 식칼을 예로 들었다. 그는 "식칼을 어머니가 쥐었을 때는 아침과 점심을 준비하는 사랑의 칼"이라며 "똑같은 칼을 강도가 쥐었을 때는 살인 무기가 된다"고 말했다. 삽도 그렇다. 누가 삽을 드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에서 파괴의 삽이 아닌 생명의 삽이 되길 바라는 집회가 열렸다. 두물머리 행정대집행 저지를 위한 세계 최초의 '유기농 집회'다.

그 흔한 촛불하나 없었다. 대신 호박, 오이, 가지, 밀, 볏짚까지 등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유기농산물을 들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듯 신나는 춤추고 공연을 벌였다.

집회는 퍼포먼스로 시작됐다. '다이인(die-in)'과 아스팔트 모내기 퍼포먼스다. '다이인(die-in)'은 강제철거를 눈 앞에 둔 두물머리의 아픔을 상징한다. 참여자 30여 명이 호박, 오이, 가지, 밀을 든 채로 대한문 앞 마당에 밭 전(田) 글자의 형태를 만들며 죽은 듯이 누웠다. 참여자들의 목에 걸린 피켓에는 '밥은 하늘입니다. 농민은 뻘인가?', '삽 말고 삶을 달라'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이후 인디 음악가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두물머리에 공사 말고 농사'라는 노랫말과 함께 신나는 음악이 나오자 참가자들은 죽음에서 깨어난 듯 춤을 췄다. 생명에게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장맛비까지 내린 대한문 앞은 참가자들의 함성 소리와 심장을 울리는 음악으로 열띤 분위기가 20여 분간 이어졌다.

아스팔트 모내기 퍼포먼스는 참가자들이 대한문 앞에서 일렬로 줄을 서서 모내기를 재현했다. 대한문 앞 마당 끝에 선 참가자들은 못줄을 잡은 농부를 따라 바닥에 모 심는 흉내를 냈다.  

호박, 오이, 가지 등 유기농산물을 든 집회 참가자들이 대한문 앞에 누워 밭 전(田)를 그려보였다. 이 퍼포먼스는 두물머리 공사강행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상징한다.
▲ 다이인(die-in) 퍼포먼스 호박, 오이, 가지 등 유기농산물을 든 집회 참가자들이 대한문 앞에 누워 밭 전(田)를 그려보였다. 이 퍼포먼스는 두물머리 공사강행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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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는 생명의 땅, 포클레인 그만 밀고 와"

생명의 두 퍼포먼스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대한문 앞에 자리를 잡자 장맛비도 뚝 그쳤다. 이어서 김제남 통합진보당 의원의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김제남 의원은 "생명의 춤을 신나게 추다가 갑자기 마이크 잡는 게 어색하다"며 "생명의 땅이 공익인가요? 자전거 도로가 공익인가요?"라고 말하자 집회 참가자들은 "생명의 땅이요"를 크게 외쳤다.

이어 김 의원은 "팔당 유기농 단지는 생명의 땅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심는 기쁨을 주고, 생명을 수확하는 기쁨을 주고, 생명을 나누는 기쁨을 준다"며 "농민들을 향해서 포클레인으로 밀고 오는 짓 당장 멈춰라"며 국토해양부를 향해 경고했다. 

두물머리에서 들깨와 참깨를 기른다는 조언정 팔당마실교회 목사는 "우린 무작정 하지말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은 지혜를 짜내서 후손들에게 생명이 넘치는 땅을 물려주자는 것이 아닌가"라며 "토건 세력들이 이 나라를 갈기갈기 짓밟는 속에서 우리들의 어머니인 토지를 지켜야낼 것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집회 초반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띄운 이날 유기농 집회는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졌다. 인디 음악가 쏭과 어쩌다마주친 그리고 '신나고 짜릿한 강정 꽃밴드'라는 뜻의 신짜꽃밴의 공연 속에 집회는 한 여름의 문화제로 이어졌다.

18일까지 자진철거 통보..."공사 말고 농사"

18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유기농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불도저식 공사 대신 농사 짓자고 정부의 공사 강행을 비판했다.
▲ 공사말고 농사짓자 18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유기농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불도저식 공사 대신 농사 짓자고 정부의 공사 강행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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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는 경기 양평군 양수리에 위치한 곳으로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물'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 팔당 두물머리 유기농 단지가 있지만 서울지방국토청은 4대강 사업 구간 공사를 위해 18일까지 자진철거를 통보했다. 지난 17일부터는 시공업체가 불도저, 덤프트럭 등의 장비를 투입해 공사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막기 위해 18일 오전까지도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팔당공대위)와 천주교연대 신부들, 생활협동조합 회원 50여 명 등이 공사장 입구에서 농성을 벌였다. 반면, 4대강 사업 찬성 단체 소속 40여 명도 '4대강 사업 조속히 추진하라'는 피켓을 들고 대응했다. 이날 오후 들어 시공사 측 장비들은 철수했지만 용역들은 현장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유기농 집회에는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유가족, 강정마을 주민들도 집회에 참석했다. 시간과 공간은 모두 다르지만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의 연대의 장도 마련된 것이다.

용산참사로 숨진 이상림씨의 유족 전재숙씨는 마이크를 잡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22분이 세상을 떠난 것은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외침 아니었나"라며 "두물머리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는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외침을 눈과 귀로 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씨는 "힘없는 우리들이 똘똘 뭉쳐 싸워나가자"며 "두물머리는 꼭 승리할 거라 믿는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이날 유기농 집회는 팔당공동대위와 두물머리 유기농지 보존 대작전(두유작전)을 비롯 4대강 복원 범국민 대책위원회의 주최로 진행됐으며 전 세계 농민들의 연대 단체인 '비아 캄페시나' 소속 15명도 함께 자리를 지켰다. 이날 유기농 집회는 오후 9시를 넘겨 마무리됐다.


태그:#두물머리, #행정대집행, #팔당 유기농 단지, #이명박, #4대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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