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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제노사이드> 겉표지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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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지구상에서 인간이 멸종한다면 거기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까마득히 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일은 빼고 그런 요인들을 추측해보자.

그러니까 '50억년 후에 태양이 식어서 인간이 멸종한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여기서 제외된다. 우선 떠오르는 것으로는 핵전쟁과 그로 인한 환경의 변화 때문에 인간이 멸종한다는 가설이다.

아니면 소행성과 지구가 충돌해서 인류가 멸망에 이를 수도 있겠다. 영화 <2012>처럼 지구내부의 온도상승으로 인해서 전지구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인간들을 덮쳐서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좀더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지구에 침입한 외계인들과 전쟁을 벌이다가 떼죽음 당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혹시 인간이 한 단계 진화하면서 현재의 인간을 모두 없애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진화한 인간은 현재의 인간과는 다른 종(種)이 될 것이다. 그 새로운 종의 인간이 현재의 인간을 몰살시키고 지구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 크로마뇽인과의 경쟁에서 뒤진 네안데르탈인이 멸종의 길을 걸어갔던 것처럼.

이상한 제안을 받아들이는 두 사람

생각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이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2011년 작품 <제노사이드>는 바로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작품 속에서 진화한 인간은 유전자 변이로 인해서 지구상의 어떤 인간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2주 만에 영어를 습득하고 복잡한 수학계산과 암호해독도 간단하게 풀어버린다.

유전자 변이 때문에 외모도 독특하다. 뇌의 발달로 인해서 머리가 유난히 크고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고 손발이 짧다. 누구나 처음보는 순간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결코 잘생겼다거나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외모가 아니지만, 그 두뇌 속에는 상상하기 힘든 지능이 담겨있다.

<제노사이드>의 주인공은 대학원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있는 24세의 고가 겐토다. 그는 얼마전에 사망한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바이러스 학자였던 아버지는 겐토에게 메일을 통해서 이상한 유언을 남긴다. 겐토만 알고있는 장소에 많은 현금을 찾을 수 있는 카드를 감춰두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못다한 약품 개발 연구를 마무리 해달라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지구 반대편 이라크에서는 민간 군사 기업에 소속된 미국인 용병 조너선 예거가 역시 이상한 제안을 받는다. 중앙아프리카에 가서 한 달 가량 특수임무를 수행하면 4만 5천달러를 벌 수 있다는 것이다.

특수임무는 그다지 어렵거나 위험한 일이 아니다. 다만 임무 수행 중에 '본 적 없는 생물'을 만나면 즉시 사살하고 사체를 회수해 오라는 것이다. 겐토와 예거 모두 의아해 하면서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긴다. 이렇게 해서 아프리카와 일본을 오가며 진화한 인간을 추적하는 모험이 시작된다.

진화를 바라보는 인간의 딜레마

작품 속에서 진화한 인간은 현재의 인간에 비해서 여러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있다면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심리현상이나 사회현상까지, 정밀도가 높은 시뮬레이션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한 인간은 현재의 인간에게 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속의 과학자들과 정치가들은 여기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침팬지가 인간을 이용할 수 없듯이, 인간도 진화한 인간을 이용할 수 없다. 진화한 인간의 개체수가 많아지면 대립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는 현재의 인간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싸움 뒤에 살아남은 인간들은 모두 동물원에 갇힐지 모른다. 지금 인간들이 희귀동물들을 보호하는 것처럼. 정치가들도 이런 점을 두려워 한다. 지구상에 우리보다 머리가 좋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새인류를 제거(제노사이드)하려 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현생인류가 탄생한지 20만 년 가량의 세월이 지났다. 미래에 어떻게 진화된 인간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새인류와의 싸움으로 현재의 인간이 멸종하는 상황만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거야 말로 가장 잔인하고 슬픈 멸종 시나리오다.

덧붙이는 글 |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김수영 옮김. 황금가지 펴냄.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황금가지(2012)


태그:#제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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