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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머리 좀 말려줘"
"세린, 아빠 피곤해 네가 말려"
"치~(삐쳐서 등 돌리고 머리 말리는 딸)
"(해줘, 말어 10초 간 마음 속 갈등... 결국) 이리와 말려 주께"

초등학교 5학년 우리 딸. 머리 감고 나면 이렇게 아빠에게 머리 말려 달라고 한다. 꼬맹이 시절, 목욕도 시켜 주고, 머리도 말려 주고, 함께 놀아주고... 하지만 이제 제법 컸다고 어디 함께 가자고 해도 안 따라오고 친구들이랑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머리 말리는 일이다. 머리가 길다 보니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연히 혼자 하기 귀찮은가 보다. 매번 나한테 머리 말려 달라고 한다.

솔직히 딸이 어렸을 때 느꼈던 그 소소한 재미와 행복이 아이가 점점 커지면서 없어지다 보니 서운할 때가 있다. 아빠보다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든가 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녀석이 머리 말려 달라고 할 때 처음에는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게 좀 귀찮을 때도 있다. 퇴근하고 집에 갔을 때 기분이 좀 안 좋거나, 피곤할 때 등이다. 그래서 안 해주는 날도 있었다. 안 해주는 날 딸은 삐친다. 다음번에 머리 말려 준다고 하면 됐다고 자기가 한다.

크면서 아빠보다 친구와 노는 딸 '서운', 그래서...

점점 커가면서 아빠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많다. 아빠는 서운하다.
▲ 너무나 소중한 딸. 점점 커가면서 아빠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많다. 아빠는 서운하다.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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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누워서 딸 혼자 머리 말리는 것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는 데, 갑자기 우리 딸이 훌쩍 컸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문득 드는 생각, '더 크면 정말 자기 친구들이랑만 놀텐데. 쩝!'. 그러면서 또 드는 생각이 있었으니.

벌떡 후다닥~ 방에 가서 종이와 볼펜을 가지고 온다. 아내가 '왜 저래?' 하면서 날 본다.

"세린~ 잠깐 이리 와봐"
"왜?"
"아빠가 매일 머리 말려 주까?"
"진짜?"

"그래~ 근데..."
"... ..."
"대신, 너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아빠가 머리 말려주기로 약속해야 돼."
"(잠시 생각) 그건 좀..."

"왜?"
"아니 그냥... 그게 좀..."
"아 됐어. 그럼 아빠도 안 해. 앞으로 너 혼자 쭈욱 머리 말려"
"잠깐! 음~ 고등학교까지는 그렇고, 초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고1 딸 머리 말려주는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

고1 우리 딸의 머리를 말려줄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하다^^
▲ 얏호! 나의 행복 보증수표. 고1 우리 딸의 머리를 말려줄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하다^^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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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에이, 손해 보는 장사다. 내 목적은 단순히 머리 말려 주는 게 아니라, 우리 딸이 크면서 조금씩 멀어질 것 같은, 그래서 아빠로서 느껴야 할 서운함을 채울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상상해 봤다. 고등학교, 숙녀가 다 된 우리 딸 머리 말려주는 나의 모습을... 상상함 해도 행복한 미소! 그래서 난 초등학교까지 제시한 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안 해?"
"아 왜. 그럼 중학교 1학년?"
"안 해. 고등학교 3학년."
"치, 그럼 나도 안 해."

아마 딸도 고등학교 3학년이면 자기가 다 컸고, 그래서 아빠한테 머리 말리는 게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나보다. 옥신각신 몇 번의 협상을 해 봤지만 요지부동이다. 오~ 어떡하지? 마음의 갈등이 파도를 친다.

결국 협상 타결을 위해 절충안을 제시했다.

"좋아. 그럼 고등학교 1학년까지. 그 이하는 절대 안 돼."
"좋아. 그럼 고등학교 1학년까지."

야호!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약속을 했다. 각서까지 썼다. 나중에 아빠가 조작했다고 할 까봐 딸한테 친필로 직접 쓰라고 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증거를 위해 사진도 찍어 놨다. 난 앞으로 녀석이 고1이 끝나는 4년 6개월 동안 '행복 수표'를 받았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볼 때 마다 정말이지 흐뭇하다.

질투하는 9살 아들 "아들아! 넌 크면 아빠랑 지리산 완주하자"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한다. 녀석이 크면 어떡하지? 셋째 낳을까?
▲ 나의 보물 9살 아들.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한다. 녀석이 크면 어떡하지? 셋째 낳을까?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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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9살 아들이 누나만 머리 말려 준다며 자기도 고등학교 1학년까지 머리 말려 달란다. 상상해봤다. 수염 나고, 다리 털 나고, 목소리 굵어진 고등학교 1학년 아들 녀석 머리 말려 주는 모습을.

쫌 징그럽다. 그래서 아들과는 각서 안 썼다. 대신 매일 탁구 치고, 자전거 타고, 주말에 산에 가고, 잘 놀아주고 있다. 물론 머리도 말려주고 있다. 얘는 머리 짧아서 시간 별로 안 걸려서 좋다. 머리 말려주는 것 대신 아들과 이 약속을 하고 싶다.

"아들아, 고 1되면 아빠랑 지리산 완주 하자."


태그:#딸 바보, #아들 바보, #행복, #아빠와 놀기,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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