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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①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 모든 이에게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은 식량·의약품 등의 부족으로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고 가혹한 인권유린으로 고통받고 있는 실정임."

 

②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 모든 이에게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은 식량·의약품 등의 부족으로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는 등 열악한 인권 상황에 처해 있음."

 

①은 새누리당이 지난 1일 발의한 북한인권법안(윤상현 의원 대표발의)에 있는 법안 '제안 이유'의 첫 문장이다. ②는 민주통합당이 18대 국회에서 발의했던 북한민생인권법안(김동철 의원 대표발의)의 첫 문장이다. 새누리당의 법안은 18대에서 이미 한 번 발의 됐다가 폐기된 것으로 19대에서 다시 발의했다. 민주당 법안도 폐기됐지만 현재 당론은 그대로다.

 

북한인권 문제를 놓고 새누리당은 민주당 등 야권을 향해 사생결단식의 종북·색깔론 공세를 퍼붓고 있지만 양당의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법안 제안 이유에도 나와 있듯이 '가혹한 인권유린'(새누리당)과 '열악한 인권 상황'(민주당)이라는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새누리당 '북한인권법안' vs. 민주당 '북한민생인권법안'

 

양당이 갈라서는 지점은 방법론이다. 새누리당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한다. 정부가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강한 대북 압박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법안에는 이같은 입장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통일부에 '북한인권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5조) 외교통상부에는 '북한인권대사'를 둬서 북한 인권 증진과 관련한 국제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조항(7조)이 대표적이다. 또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해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10조) 새누리당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통해 현재 북한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권 유린의 가해자를 기록하고 통일 후 처벌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 안은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의 활동도 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15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경우도 군사적 용도 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단서 조항을 달아놨다.(8조)

 

반면 민주당은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 북한을 압박하기 보다 남북관계의 평화적 관리를 통해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고 개발 지원에 나서는 등 점진적으로 북한의 인권이 개선될 수 있는 상황 조성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법안에 '민생'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법안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민주당 안은 주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국군포로·납북자의 송환 및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한 간의 인도주의 업무 촉진계획 수립,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인 인권 보호 및 생활 유지를 위한 식량·비료·의약품 등 각종 물품의 지원 등을 담당할 기구를 통일부 내에 설치하도록 했고(5조),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각종 정보의 수집을 담당하기 위해 통일부 내에 인도주의정보센터도 설치하도록 했다.(5조)

 

평행선 달리는 새누리당-민주당 양당의 방법론

 

민주당은 특히 새누리당의 법안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북한 인권 개선 효과 보다는 오히려 대북 압박의 상징적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이 제정되면 북한 정부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고 체제 위협을 의식한 북한 정부의 주민 통제가 강화되는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법안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마저 군사적 전용 금지 등 4대 단서조항을 달아놔 인도적 지원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새누리당 법안의 15조에 대해서도 민주당의 우려가 높다. 새누리당은 북한인권법안 15조에서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에 경비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사실상 북한에 '삐라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는 보수단체를 지원하는 조항이라는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후보가 "극우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지원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한 근거가 바로 15조다.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7일 의원총회에서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안은 인권 보호를 목표로 한 법안이 아니라 북 정권을 압박하고 대북 단체를 지원할 목적인 법안"이라며 "이름은 북한인권법안이지만 내용과 포장물은 남북관계를 더 경색시키는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비판에 대해 터무니 없다는 입장이다. 반북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법이라는 것은 민주당의 정치 공세일 뿐이고 북한인권자문위를 설치하고 북한인권대사를 두는 것은 실질적인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야의 입장은 팽팽하다. 이번 뿐이 아니라 그동안 여야는 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각론을 놓고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해 왔다. 지난 2005년과 2008년 국회에 북한 인권 관련 법안이 제출되고도 폐기된 것은 여야의 시각차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18대 국회 하반기였던 지난 2011년 6월에는 당시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양당이 각각 발의한 북한인권법안과 북한민생인권법안을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야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평행선 논쟁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해 결국 두 법안 모두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토론할 문제를 '색깔론'으로 바꾼 새누리당

 

북한 인권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합의점 찾기는 19대 국회에서도 계속돼야 할 과제다. 문제는 자신들이 발의한 법안만이 '선'이라는 아집에 사로 잡혀 있는 새누리당의 독선적인 태도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북한인권법안을 비판한 이해찬 민주당 대표 후보에 대해 종북세력이라는 낙인을 찍으려는 듯 '국회의원 자격심사 대상'이라는 언급까지 했다.

 

이같은 발언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새누리당의 당론에 동의하지 않으면 배제해야할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도 엿보인다. 자유민주주의와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이같은 사고 방식을 보면 새누리당이 북한인권법안을 발의한 게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국내 정치 공세를 위해서라는 오해를 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논쟁하고 토론해야 할 문제를 '색깔론'으로 치환해 마치 민주당 등 야권은 북한인권에 침묵하고 있다는 듯한 여론 호도용 정치적 공세에 나서는 것은 국회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여당이 취해야 할 자세라고 볼 수 없다.

 

새로 거듭나겠다고 이름까지 바꾼 새누리당이라면 전직 총리마저 '종북세력'으로 낙인 찍는 무시무시한(?) 색깔론은 이제 버려야 한다. 새누리당이 진정성이 있다면 철 지난 색깔론 대신 야당과의 생산적 토론에 나서는 게 먼저다.


태그:#북한인권, #북한인권법, #북한민생인권법안, #색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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