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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래봤자 아저씨'들의 이야기. 기획시리즈 '오빠라고 불러줘'는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고픈 '마음만은 오빠'들의 고군분투기입니다. 시리즈 마지막 글은 '오빠'에 목매다는 '아저씨'들을 향한 20대 여동생(?)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그룹 소녀시대
 그룹 소녀시대
ⓒ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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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스라는 가수의 <오빠>라는 노래가 기억나는 세대가 있을 것이다.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이런 가사가 반복되는 리드미컬한 댄스음악이다. '오빠'라는 단어가 꽤 흥겹고 괜찮은 리듬과 뒤섞여 대중가요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왁스의 <오빠>. 시간이 지나, 인기 있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오(oh)>라는 노래에서도 '오빠'가 등장했다. 오빠 팬들 난리 나는 건 당연한데 어찌 삼촌 팬, 아저씨 팬들까지 열광했던 건지…. 어쨌든 그들의 착각을 이용하여 소녀시대는 인기를 구가했다.

그런데 주변의 남자들을 바라보는 여자들의 시선은 소녀시대처럼 곱기만 할 수가 없다. 평생 '오빠'인줄 착각하고 사는 남자들. '오빠'라고 불리길 원하는 남자들. 걸들의 '오빠' 소리에서 해방되고 싶지 않은 남자들에게 이제 그만 해방되라고 외치고 싶다.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쉽게 해방될 것 같지는 않다.

말끝마다 "오빠가"... '오빠'의 집착은 왜?

말머리에 꼭 '오빠'라는 단어를 붙여 얘기하던 어떤 오빠가 있었다.

"오빠가 이거 해줄게."
"오빠는 이런 거 잘해."
"오빠가 (어쩌고 저쩌고)…."
"오빤 (이러쿵 저러쿵)…."

늘 자신을 오빠로 지칭하며 대화하던 그 남자. 누가 오빠 아니랬나. '오빠'라는 단어를 강조하듯이 느껴지던 그 사람의 대화법은 능글거리고,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주변 동생들의 호기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저 오빠는 왜 저렇게 오빠 소리에 집착할까?"
"그러게…. 낸들 알겠냐."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분노를 사기에도 충분했다. 바로 그 남자의 여자친구였다. 몇 번 마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오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남자가 다른 동생들에게 2음절의 '오빠'라는 단어로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조금씩 일그러졌던 그 여자친구의 얼굴. 나는 그 표정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인데, 그 '오빠'라는 사람보다 여자친구가 4살 연상이었다고 한다. 사실을 알고 나서야 나와 다른 친구들은 그 여자친구의 일그러졌던 표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여자친구가 오빠라고 안 불러줘서 그 말에 그렇게 집착했나?'

동갑인데도 오빠라 부르라니... '수컷심리' 때문인가

동갑이면서, 오빠라고 불리길 바라는 남자아이도 있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정신연령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여자에게 감히(!), 동갑이기까지 한 주제에 오빠라고 불러달라 하는 것이 내게 용납되지 않았다.

오빠는 무슨… 말 그대로 그냥 '남자아이'인데…. 조금이라도 오빠 같아야 뒤통수 한대 딱 때리고 싶은 심정도 얼마쯤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건 뭔가 여자보다 늘 먼저이고 싶고, 우위에 있고 싶어 하는 '수컷심리'라고도 느껴져서 아주 큰 반발심을 가져다주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친해졌던 일행 중, 한 남자아이가 유독 그랬다. 동갑이면서 꼭 나와 같은 여자 친구들에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몇 번은 그냥 웃어 넘겼지만, 지치지도 않았던 그 아이.

말도 안 되게 '오빠' 소리를 지겹도록 원하는 그 아이의 품새가 영 못마땅해졌던 어느 날이었다. 기회가 찾아왔다. 한 방 터뜨릴 기회. 그 아이가 여럿이서 같이 밥 먹자는 전화를 내게도 걸어왔던 것이다. 뒤통수는 못 때려도 되받아칠 기회는 잡아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통화하면서도 그 아이는 오빠라고 부르면 자기가 밥을 쏘겠다는 둥의 허풍 섞인 발언을 했고, 나는 놓치지 않고 쏘아 붙였다.

차곡차곡 적립해두었던 모든 노여움을 한 번에 발산시켰다. 그 뒤로 그 아인 내게 전과 같이 행동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날 까다로운 여자, 무서운 여자로 여기게 된 것 같았다. 이글을 쓰면서 잊혀져있던 기억과 더불어 그 아이가 생각났다. 지방에 내려오게 되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지금도 여전히 '오빠'라고 불러달라며 여자애들 틈에서 깔깔거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김원준(윤빈 역)이 양정아(방일숙 역)의 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김원준(윤빈 역)이 양정아(방일숙 역)의 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 KBS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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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도 한두 번이지... 아저씨는 아저씨일 뿐

아저씨 같지만 영원히 오빠이길 원하는 남자들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오빠'라고 농담처럼 부를 수 있을 만큼 동안인 아저씨들도 있다. 그런데 농담도 한두 번이지. 그들이 아저씨이기를 거부하고 오빠를 들먹일 때에는 굉장히 코믹하게 느껴진다.

한 예로 최근에 방영중인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김원준(윤빈 역)이 극중 양정아(방일숙 역)의 유치원생 딸에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호통 치던 장면이 있었다. 한물간 연예인으로 나오는 김원준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양정아의 유치원생 딸이 보여주는 실감나는 표정으로 코믹의 정점을 이뤘다.

솔직한 아이의 눈에선 그는 분명 아저씨인데, 그는 아이에게 '오빠'를 강요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연출이다. 특히나 소녀 팬들의 사랑을 먹고 자란 과거의 스타 '윤빈'에겐 '오빠'라는 호칭이 제일 익숙할 터이다.

이왕이면 '오빠'로 불리고 싶은 건 드라마 속 윤빈만이 아니다. 실제 아저씨들이 그렇게 불리길 희망한다. 평소 말 한마디라도 더 오가는 사이가 된 직장 내 어르신들이 있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워낙 자주 마주치는 분들하고는 편해져서 이런저런 얘기를 가끔 하는데 그 날은 아주 재미있는 풍경을 목도했다.

"오늘 왜 이렇게 기운이 없으셔요?"
"아니 뭐… 그런 거 아닌데."

직장 내 미화작업을 하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대화이다.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말을 함과 동시에 나도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는데 정말로 기운이 없어 보이셨다. 나는 자판기 음료수를 마시며 그분들의 대화를 살짝 엿들였다.

양심적인 '오빠선언'은 불쾌하지 않아요 

"오늘 어째 기운이 없는 게 오빠 소리 한번 해줘야겠구만? 박 오빠, 기운 내! 깔깔깔깔!"
"뭐여~ 아니여."
"뭐시가~ 아저씨보다 오빠가 더 좋다믄서?"
"하기야 그렇지만은 기운 없는 게 그걸로 낫남?"

족히 50세는 되어 보이시는 두 분의 대화에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웃으면서 듣고 있던 나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저씨는 왜 오빠라고 불리는 게 좋으세요?"
"젊어진 느낌 들잖어~. 안 그래도 주름살 팍팍 느는데 오빠라고 불려야 덜 늙은 것 같지."
"오빠라고 부르는 거 싫어하는 여자들도 있는데요?"
"아, 오빠라고 부르라고 농담처럼 얘기하면 질색팔색하며 싫어하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냥 좋게 넘어가주면 어디가 덧나나…. 자기들도 같이 늙어가는 처지면서 말여."

듣다보니, 아저씨의 말씀이 아예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아저씨는 양심은 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끼리만 오빠, 동생 하자는 거다. 드라마 속의 윤빈만큼 억지스럽지는 않다.

습관처럼 스스로를 '오빠'라고 지칭하고, 달력학상으로 오빠가 아닌데 '오빠'라고 부르라 요구하고, 몇 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오빠'라는 호칭에 연연하는 '오빠' 아닌 남자들을 보며 화가 나고, 기가 차며, 코믹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말하는 관계 속에서의 '오빠'에게는 젊게 살되 세월을 거스르지 않고, 억지스런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는 마음이 보였다. 양심적으로 오빠를 선호한다고 말하는 아저씨의 표정에 스며 있는 수줍음을 보며, 여자 입장에서 이 정도는 수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심적인 오빠선언은 불쾌하지 않다.

'아 그렇다고, 20년 넘게 차이 나는 제가 아저씨를 오빠라고 부르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아저씨는 제게 아저씨예요!'


태그:#오빠,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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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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