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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KBS, YTN, 국민일보, 연합뉴스. 역사상 유례없는 '언론사 공동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국민일보와 MBC 노조는 이미 파업 100일을 넘겼다. 이들의 요구는 같다. '공정언론 사수'. 이를 위해 사장 퇴진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오마이뉴스>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언론인 지망생, 언론사 파업을 이끌고 있는 노조위원장, 수습을 갓 떼자마자 파업에 동참한 '막내' 언론인들의 '파업토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말]
13일 여의도 공원 '희망캠프'에서 열린 'KBS 방송대학'에서 나영석 PD가 언론인 지망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있다.
 13일 여의도 공원 '희망캠프'에서 열린 'KBS 방송대학'에서 나영석 PD가 언론인 지망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있다.
ⓒ 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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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여의도공원, 잔디밭에 앉은 200여 명의 사람들이 한 남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마이크를 잡은 이는 얼마 전까지 '국민예능' <1박2일>을 이끌던 나영석 KBS PD. 그 앞에서 신기함 반, 부러움 반으로 나 PD를 쳐다보는 이들은 장래에 나 PD 같은 언론인이 되기를 꿈꾸는 언론인 지망생들이다. 

<1박2일> 연출 당시 "땡!", "실패"를 외치며 '부정의 아이콘'으로 멤버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나 PD는 이날 예비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 "실패를 극복하라"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의 말을 메모하는 예비 언론인들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이날 '취업 설명회'의 제목은 'KBS 방송대학'. 나 PD 외에도 최근 KBS 사측으로부터 해직 통보를 받은 최경영 기자, <개그 콘서트> 서수민 PD 등이 강연에 나섰다. 강연이 끝난 후 예비 언론인들은 각 분야별 선배들에게 언론사 입사시험에 관한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전날 같은 장소에서는 <무한도전> 김태호 PD 등이 참석한 가운데 'MBC 방송대학'이 진행됐다.

선배 언론인들과 언론인 지망생들의 만남은 언론사 '파업' 덕분에 이루어졌다. KBC, MBC 노조는 여의도 공원에 '희망캠프'를 꾸리고 각각 60일, 100일 넘게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강연이 열린 여의도 공원 한 편에는 텐트 80동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상 초유의 언론사 동시 다발 파업을 바라보는 언론사 입사 지망생들의 심경은 어떨까. <오마이뉴스>는 KBS 방송대학에 참석한 이른바 언론고시생 3명을 즉석에서 섭외해 대화를 나눴다. 드라마 PD 지망생 1명, 기자 지망생 1명, 아나운서 지망생 1명. 세 사람 모두 이번 KBS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했다. 취업 상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 얼굴과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다. 다음은 그들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즐거운 파업' 좋지만 절박함도 필요하다"

13일 'KBS 방송대학'에 참석한 언론인 지망생들이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3일 'KBS 방송대학'에 참석한 언론인 지망생들이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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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가명, 이하 이) : 여성. 드라마 PD 지망.
김민수(가명, 이하 김) : 남성. 취재기자 지망.
최지연(가명, 이하 최) : 여성. 아나운서 지망.

- 왜 언론인이 되고 싶나?
이 :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건강한 사고를 못하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따뜻함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자가 되고 싶었지만 한계가 있더라. 그러던 중 우연히 뮤지컬 공연을 하게 되었다. 뮤지컬을 준비하는 중에 무엇인가 기획하고 실행을 하는 일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때 느꼈다. 아이들에게 문화 콘텐츠를 통해서 세상의 따뜻함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라마 PD가 되어서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김 : 세상을 직접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일반인으로서는 한계가 있지 않나? 직접 발로 뛰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현장을 찾아내고 그곳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최 : 어려서부터 꿈이 아나운서라서 학교를 다닐 때도 방송부 활동을 했다. 사람들 중에는 TV가 세상을 바라보는 전부인 사람들도 있지 않나? 그런 사람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보여주고 싶었다.

- 오늘 KBS 방송대학이 있었다. 프로그램은 어땠나?
이 : 특별한 것을 배운다는 생각보다는 파업현장에 직접 가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왔다. 서수민 PD는 워낙 말을 잘하는 데다가 긍정적인 아우라가 있었던 것 같다. 지원 분야 별로 입사 설명을 할 때는 (설명해 줄 드라마 PD가) 한 분 밖에 없었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해줘서 힘을 많이 받았다.
김 : 아무래도 파업 현장이다 보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는데 PD들이 강연하면서 주로 실무적인 이야기만 하고 파업 이야기는 없어서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최근 입사자들이 언론사 준비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 것은 좋았다.
최 : 같은 말이라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말보다 직접 현직에 있는 사람의 한마디가 더 크게 와 닿는 것 같다. 제 순서가 좀 늦어져 뒤에 있었는데 설명해 주신 분이 끝까지 친절하게 잘 해주셨다.

- 언론사 파업이 한창이다.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 : 개인적으로 파업을 축제 같은 분위기로 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너무 심각하게만 하는 것보다 즐겁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파업이라는 단어를 연상하면 뭔가 과격하고 그렇지 않나. 노조원들이 홍보하는 데 많이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이 볼 때에도 눈에 띄는 사람들이라 더 주목하는 것 같다. <제대로 뉴스데스크> <리셋 KBS 뉴스9> 같은 프로그램이 다행히 늦게나마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을 하는 것 같긴 한데, 나중에 회사로 돌아가서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김 : 지난 2년간 잘 있다가 왜 이제 와서 파업 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이미 오랫동안 파업 중인) 학습지교사나 대형마트 비정규직 이런 분들은 사실 파업할 여력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언론사 파업을 보면 '예전에 너희들이 우리말 하나도 안 들어 줬어' 그런 생각을 할 거다. 그런 사람들과 연대해야 하지 않을까.
최 : 저 역시 '파업'하면 무서운 이미지가 있었다. 축제 같은 파업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이들 중에 예능이나 드라마를 만들던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반면, 그런 부분에서 절박함이 덜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일반인들 중에는 뭔가 떨어지는 게 있어서 파업한다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좀 더 절박함이 필요하다.

"파업 접고 방송 복귀... 언론인으로서는 결격 사유"  

- 최근 몇몇 노조원이 파업을 접고 방송에 복귀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이 : <1박2일> 같은 경우는 연세 있으신 분들이 시청자의 대부분을 차지해서 파업을 오래하는 데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능이라는 부분은 정치색이 크게 드러나는 장르도 아니고... 또 한 사람의 PD에게는 노조원이 아닌 많은 스태프들, 이를테면 작가, 외주 인력들이 함께한다. 파업하면 그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는 거니까. 사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파업의 희생양 아닌가. 그런 고민도 있을 거라 본다.
김 :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제가 그 상황이었어도 더 좋은 기회나 커리어를 더 쌓을 수 있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언론인으로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은) 기본적으로 사회에 대한 부채 의식, 동료들에 대한 동지 의식이 있어야 한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는 결격 사유라고 생각한다. 파업을 접었던 사람이 이후에 잘 된다면 '괜히 공정방송을 외칠 필요가 없구나'하는 인식을 후배들에게 심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최 : 한 아나운서의 복귀 이유를 듣고 한편으로는 슬퍼졌다. 떠밀려서 파업을 했다는 식의 뉘앙스였는데 그런 글을 보며 실망스러웠다. 나중에 그런 사람들이 잘 돼서 열심히 다른 투쟁한 사람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될 경우,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 그런 인식이 확산 되는 게 두렵다.

- 자신이 현직 언론인이었다면 파업에 동참했을 것 같나.
이 : 어떤 선택을 하건 누군가에게는 미안할 것 같다. 그게 시청자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고. 그래서 파업을 하더라도 시청자들의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는 대안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인터넷으로 일부를 서비스한다든가 하는.
김 : 기본적으로 파업에 참여할 거다. 저는 단체(조직)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면, 파업에 반대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을 배려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 : 저도 참여할 것이다. 생활인으로서도 중요하지만 특히 언론인은 직업적인 소명의식을 당연히 가져야 한다.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언론인이 가진 소명의식이라고 생각한다.

- KBS는 현재 공채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 작년에나 재작년에 뽑힌 사람들도 파업하고 있는데, 뭐. 아마 올해 뽑히는 사람도 심적으로는 파업에 동의하고 있을 거다.
김 : 저는 약간 우려가 된다. 채용을 하다 보면 경영진이 자신들에게 가까운 사람들을 뽑지 않을까? 이를테면 사상검증을 통해서 말이다.

"면접에서 '파업 찬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여의도공원 '희망캠프' 현장에서 방송대학을 열고 있다.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여의도공원 '희망캠프' 현장에서 방송대학을 열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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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김재철 사장은 앞으로 기자는 계약직으로 뽑고, PD는 외주제작을 할 거라고 한다.
이 : 사장의 행위가 과연 타당한가와는 별개로, 직원들이 (계약직 채용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낼 때 솔직히 자기 밥그릇 싸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제가 교육 공부를 하면서 계약직 선생님을 무척 많이 봤다. 그런 부분은 한 번도 보도에서 다뤄진 걸 본 적이 없다.
김 : MBC가 그렇게 한 번 그렇게 (계약직 채용을) 해버리면 관성이 생겨서 (다른 언론사들도) 쉬워지지 않을까?
최 : 가장 큰 병폐라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직원들을 도구로 여긴다. 그래서 이렇게 파업을 해야 하는 거다.

- 만약 나에게 계약직 입사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김 : 저도 파업을 찬성하기는 하지만 도전하지 않았을까? 워낙 언론사 입사의 문이 좁은데,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지 않을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은 알지만, 준비생들은 약자다.
최 : 잠깐이라도 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현재 시스템은 공채로 선택받은 자들만 뭔가를 할 수 있지 않나? 그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중소매체에 있을 때 일하다가 버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상처가 두렵기도 하다.

- 주변에 계약직 기자나 PD 지원을 한사람이 있나?
이 : 없다. 있어도 아마 이야기 안할 거다.
김 : 내 주위 사람들은 다 신입 지원자인데 경력직을 뽑으니 지원자를 찾기 힘든 것 같다.

- 언론사 파업이 예비 언론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이 : 각오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사실 그동안 언론인들의 생각은 그들의 기사나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났는데 이번 기회에 언론인들 개인의 가치관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 같아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어떤 언론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김 : 현실적인 고민이 많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파업에 찬성하더라도 만약에 면접에서 물어보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소개서를 쓸 때 '파업에 찬성하고 현재의 사장 선임구조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쓰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은 피해갔던 것 같다. 그래서 자괴감도 들었다.
최 : 일부에서는 아나운서 준비생들은 시사에 관심에 없고 마치 연예인이 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다. 나도 사실 준비를 하면서 내면보다는 외면에 더 관심을 쏟았던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언론인이 되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태그:#언론사 파업, #언론인 지망생,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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