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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3일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과 관련 “국민 여러분과 당원 여러분께 사죄드리며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3일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과 관련 “국민 여러분과 당원 여러분께 사죄드리며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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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이 "국민에게 매를 청하겠다"며 3일 공개한 비례대표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부정 선거 사례들로 가득찼다.

온라인 투표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동일 IP(인터넷 주소)에서 중복 투표의 경우, 특정 IP 하나에서 투표한 이들의 거주 지역이 모두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39명의 투표가 이루어진 IP의 경우 투표자들의 지역이 서울, 인천, 대구, 경기, 전북 등 전국에 분포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당원들을 대신해 대리투표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진상조사위의 판단이다.

또 진상조사위가 특정 IP에서 온라인 투표를 한 당원 90명을 직접 조사한 결과 응답한 65명 중 12명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7명은 당원이 아니었다. 또 온라인 투표와 현장 투표를 중복해서 했을 가능성이 있는 표수도 582표나 됐다. 진상조사위는 "대리투표가 이루어진 명백한 정황이 상당하다"며 "(동일 IP에서의 투표수가) 개별 IP 투표를 압도할 정도로 많다"고 지적했다.

대필·서명조작... 현장 투표는 부정 선거 백화점

현장 투표는 부정 선거 사례의 백화점이라고 할 정도의 다양한 불법·탈법이 자행됐다. 투표용지가 낱장으로 분리되지 않고 6장이 한꺼번에 붙어 있는 투표용지가 발견됐는가 하면, 선거인 명부의 확인 서명란에는 필체 위조로 보이는 사례도 다수였다. 서명 위에 다른 필기구를 사용해 서명을 수정하거나 선거인 명부에 대리 서명하거나 동일인인데도 필체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등 투표·개표록 및 선거인 명부를 조작한 것으로 의심되는 투표소가 61곳에 달했다.

또 당규에 따라 무효로 처리해야 할 표를 유효로 처리하고 개표 작업을 단 한사람이 도맡아한 투표소도 8곳이나 됐다. 심지어 2개의 투표소를 한 사람이 동시에 관리한 사례도 나왔다.

통합진보당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2일 오전 국회에서 "19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위한 온ㆍ오프라인 투표에 총체적 부실과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인정한 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통합진보당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2일 오전 국회에서 "19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위한 온ㆍ오프라인 투표에 총체적 부실과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인정한 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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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광범위한 선거 부정이 발생한 것은 경선 과정에서 각 정파간 '사생결단' 싸움이 불가피했던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보당의 비례대표 순번 중 4~6번, 12, 14번은 영입인사 등의 몫이었고 경선에서 1위와 2위를 해야만 당선 안정권에 들 수 있었다. 특히 여성 후보 경선의 경우 1위는 비례대표 후보 전체 1번이 되지만 2위는 9번으로 밀리는 방식이었다.

결국 당선 안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정파간 치열한 경쟁 속에 그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권을 장악했던 당권파의 고질병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이 같은 당권파의 비민주적 행태는 2000년 초반 뒤늦게 진보정당에 합류한 후 당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위장전입, 당비대납 등을 저질러 왔던 구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현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적 행태는 2008년 분당의 한 원인이기도 했다"며 "과거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아직까지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금도 안변한 구태에 지지율도 뒷걸음질... 그런데도 당권 놀음만?

부정선거 파문으로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도로 민주노동당' 수준으로 뒷걸음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Realmeter)를 통해 "비례대표 경선 부정으로 진보당의 지지율이 3일 연속 하락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4월 26일) 조사에서 8.4%를 기록한 이후 어제(2일) 조사에서 6.8%로 하락했습니다"라며 "유권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각고의 노력이 없다면 '도로 민노당'으로 지지율이 하락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도로 민노당'이라는 표현에 대해 "합당 전 민노당의 지지율이 4.8%로, 이번 총선에서 교섭단체 구성엔 실패했지만 3당이 되면서 상승했던 지지율이 다시 하락할 수도 있다는 취지"라고 경고했다.

보수와 진보진영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비판에 통합진보당은 일단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다. "가장 무거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겠다"(이정희 공동대표), "밝힐 것은 밝히고 혁신할 것은 혁신할 것"(유시민 공동대표), "당의 낡은 유산을 쇄신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심상정 공동대표)라는 자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당을 어떻게 쇄신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당내 논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통합진보당 내에서는 국민들에게 '당권 놀음'이라고 보여질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날 이정희·유시민·심상정·조준호 공동대표는 4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통해 지도부 총사퇴 쪽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놓고 이견을 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대책위원장을 누가 맡느냐를 놓고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3일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과 관련 “국민 여러분과 당원 여러분께 사죄드리며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3일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과 관련 “국민 여러분과 당원 여러분께 사죄드리며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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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정 선거 파문에 대한 책임을 가장 크게 져야 할 당권파가 혁신을 택하는 대신 당권 양보 등의 거래를 통해 위기를 넘어서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불거지고 있다. 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정희 대표는 3일 진상조사결과 발표 후 유시민 공동대표에게 "당 대표를 맡아 당 운영방식이나 구조 등을 혁신적으로 바꿔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를 놓고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 쇄신과 변화를 위해 당선자들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당 안팎에서 강하게 일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비례대표 사퇴를 결심했던 윤금순 당선자(비례 1번)는 "당에서 방침을 정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비례대표 사퇴 놓고도 이견... "당 외부인사로 비대위 구성해야"

현재 통합진보당 당원은 물론 이번 총선에서 10%가 넘는 정당 투표를 몰아준 지지자들은 당권파의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당 운영 개선, 전면적인 당 쇄신을 통한 진보정당다운 당내 구조 확립을 요구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한 관계자는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이번 일을 계기로 뼈를 깎는 쇄신을 택하기 보다 정파의 위기를 핑계로 오히려 '우리끼리 똘똘 뭉치자'는 식으로 변화를 거부한다면 전체 진보정치 진영에 큰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라며 "새누리당보다 못한 구태를 벗지 못하고 어떻게 정치 개혁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국민들이 보기에 지도부 사퇴는 물론 부정 선거로 당선된 비례대표 후보자들의 전원 사퇴는 쇄신의 출발점일 뿐"이라며 "당내 정파 구도에서 국민의 요구를 재단하지 말고 국민의 눈으로 당 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 교수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patriamea)를 통해 "자기 정파의 승리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차적 민주주주를 우습게 보는 의식과 행태, 기가 막힌다"며 "부정선거 책임자를 중징계하고 당 대표들도 물러나고 외부인사를 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당 대회를 준비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 문제에 대해서도 "부정선거의 원인이자 결과인 비례대표 당선자도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당 쇄신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차원에서라도 최소 1명은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진보당,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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