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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꽃나무인지는 모르나 어머니께서 심어놓으셨다. 새순이 싱그럽다.
 무슨 꽃나무인지는 모르나 어머니께서 심어놓으셨다. 새순이 싱그럽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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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이른 아침, 어떤 국회의원 후보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으니, 나 아니면 나라 살림 책임질 사람이 없다"며 고막이 터질 정도로 확성기를 틀어대고 있었다. 또 어떤 후보는 자기를 안 뽑아주면 나라가 망할 거라며 공갈 협박까지 서슴지 않으니, 유권자를 장기판의 졸로 본 것이 틀림없다. 진짜 잘 난 사람은 뒤에서 웃고만 있는데, 하는 짓들이 하도 우스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누웠다.

인산 건널목에 걸려있는 현수막과 산나물 파는 할머니들.
 인산 건널목에 걸려있는 현수막과 산나물 파는 할머니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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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OO요양원에 계신 장인어른께 간다"며 두런두런하기에, 함께 가자고 하길래 길을 나섰다. 병원으로 가는 차창 밖의 풍경을 보니 봄이 확연하다. 요양원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여기저기 '나 잘났다'는 현수막이 요란하다. '일산 일꾼'이라 쓰인 현수막, 그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산나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들과 묘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과연 '일산 일꾼'이라 자처하는 현수막 주인공의 눈에 저 할머니들이 보일까 하는 의구심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요양원 가는 길 차창밖 풍경
 요양원 가는 길 차창밖 풍경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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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 요양원 입구에 도착했다. 왠지 모를 기대가 크다. 예전에 가 본 서울 신내동의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무료 요양원은 호텔 같은 시설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한 달에 수백만 원씩 들어가는 요양원이니, 호텔 수준 이상 갈 거라고 지레짐작했었다. 문병을 온 사람들끼리 앉아서 오순도순 이야기도 나누다 오면 좋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현기증과 함께 주저앉고 말았다. 병원 자체는 깔끔하다. 하지만 소독약 냄새도 아니고, 그렇다고 환자들의 변 냄새도 아니고 숨이 턱 막혀오는 게 천장에 매달린 앙증맞은 샹들리에가 핑그르르 돈다.

아내 앞에서 내색도 못하고 장인어른 손을 잡고 멀거니 서서 병실을 둘러보니, 열두 분의 어르신이 하나같이 기저귀를 차고, 코로 숨을 못 쉬니 입을 벌리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요란하다. 이제야 현기증을 유발한 냄새의 출처를 알았다. 하루에 두 번 기저귀를 갈아 채우는데, 그동안 싼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조건 하루에 두 번만 갈아 채운단다. 아! 훈훈한 병실 열기에 소독약 냄새와 미처 갈아 채우지 못한 기저귀 속에서 배여 나오는 냄새의 하모니는 멀쩡한 사람도 주저앉히기에 충분한 그 무엇이었다.

닭갈비집 벽에 걸려있는 그림. 장인어른께서 나만 보시면 항상 하시던 말씀이다.
 닭갈비집 벽에 걸려있는 그림. 장인어른께서 나만 보시면 항상 하시던 말씀이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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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담배를 끊느라 애를 쓰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바람이나 쐬자며 밖으로 나오려 하니 말도 못하시는 장인어른께서 잡은 손을 안 놓아 주신다. 억지로 손을 빼내기도 민망스러워 한 시간을 그렇게 손을 잡히고 있는데, 함께 간 딸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제 엄마 옆구리를 콕콕 찌른다.

아내가 데리고 나가 밥이나 사 먹이고 오라며 장인어른의 손을 빼내어 자기 손으로 옮겨 쥔다. 예전에 처가를 가면 장모님은 조 서방 술 마시는 꼴 보기 싫다며 슬쩍 돌아앉으시고, 장인어른이 손수 밖에 나가 술과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 오시고는 했는데…. 그야말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딸아이나 나나 아침도 안 먹고 나온 터라 부랴부랴 식당을 찾으니, 낯선 동네라 그런지 눈에 안 뜨인다. 결국, 닭갈비 집 한군데를 찾았다. 닭갈비와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딸아이와 마주 앉았다. 내가 그렇게 모진 사람도 아니고, 부모님 때문에 병원이라면 이골이 난 사람인데도 병원에서의 냄새가 가시지를 않는다. 소주를 석 잔이나 연거푸 털어 넣으니 몸은 따뜻하게 더워지는데, 고개는 자꾸만 땅바닥을 향한다. 마주앉은 딸아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말았다.

장인어른도 얼마 전까지는 뜨거운 연탄재 같으셨을 텐데.
 장인어른도 얼마 전까지는 뜨거운 연탄재 같으셨을 텐데.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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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장인어른에 대한 '연민의 정' 이전에 왠지 모를 설움이었다고 밖에 해석이 안 된다. 장인어른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 장인어른과 눈이 수없이 마주치면서 장인어른은 막냇사위인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을까? 혹시 평소에 못 하셨던 말씀이라도 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가령 "너 이놈 내 사랑스러운 막내딸 고생 좀 그만 시켜라!" 글쎄? 그 속내야 알 길이 없지만 미루어 짐작건대 그 말씀 말고는 달리하실 말씀도 없을 것 같다.

잠시 후 처 작은아버지분들이 오시어 우리는 그만 자리를 일어섰는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내랑 디지털 녹음기 헤드폰을 한 쪽씩 나누어 귀에 꽂고, 아무 말 없이 음악만 들으며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내가 말했다.

"당신, 아까 아버지가 당신 손잡고 안 놓아주었지!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손을 잡아도 귀찮아하시는 분이거든. 그런데 당신 손은 잡고 안 놔주시데? 뭔가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은 짐작이 안 가?"
"글쎄? 낸들 아나?"

순간 아내의 대답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너, 이놈 내 사랑스런 막내딸 고생 좀 그만 시켜라. 그러셨을 거야!"

자식 된 도리로 할 소리는 아니지만 장인어른의 인생에 있어 마지막 질곡, 어서 훌훌 털어버리시기를 바란다.


태그:#요양원, #장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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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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