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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펫 박물관을 나와서 박물관 옆 공원 놀이터로 갔습니다. 꽤 쌀쌀한 날이라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혈기 왕성한 아이들은 놀이터를 보자 먹잇감에 달려드는 사자처럼 벌써 시소에 앉아 있었습니다. 항해의 키는 어느덧 아이들에게로 옮겨갔고, 난 슬슬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난 햇빛이 조금이라도 잘 드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햇빛은 눈비시게 밝았지만 여전히 추웠습니다. 마침내 햇빛 잘 드는 담장 안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이들 노는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놀이터 풍경을 구경했습니다.

우리나라 놀이터처럼 빨갛고 노란 원색의 놀이기구가 많았습니다. 그네와 시소가 있고, 정글짐과 미끄럼틀이 있습니다. 규모도 상당했습니다. 테헤란에서 소문난 큰 공원에 딸린 놀이터라서 그런지 동네 놀이터와는 규모가 달랐습니다. 그네만 해도 30여 개나 됐고, 에버랜드에서나 탈 수 있을 정도의 놀이기구도 있었습니다. 

소심한 관찰자로 전락한 내 시야에 한 아버지의 모습이 잡혔습니다. 그 아버지는 네댓 살로 보이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더운 지방이라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이 이렇게 유난히 추운 날 놀이터에서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상황이 좀 의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꽤 진지했습니다. 그건 듣는 아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을 읽어 주는 아버지 맞은편에는 얼굴에 검은 털이 무성한 젊은 아빠가 두 돌 정도 돼 보이는 사내아이를 안아서 미끄럼틀을 태워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카키색 코트를 입은 엄마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먼 곳을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며 마음이 지금 이곳에 있지 않은 얼굴이었습니다.

아이를 이리 저리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열심히 태워주는 쪽은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아버지 뒤에서 엄마는 어슬렁어슬렁 따라다니는데 결코 현재를 즐기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영혼에 전혀 생기가 없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꽤 먼 거리에 있는 그녀를 언제 봤다고 이런 오지랖 넓은 판단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상하게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그녀라는 매개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한참 어렸을 때 생활에 지쳐있던 내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녀의 모습은 과거 무기력하던 내 모습을 보게 했습니다. 자기 시간이 없이  아이를 돌보는 일이 내겐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란 아버지들은 매우 가정적이었다. 놀이터에서건 야외에서건 버스에서건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은 아버지들이었다.
 이란 아버지들은 매우 가정적이었다. 놀이터에서건 야외에서건 버스에서건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은 아버지들이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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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놀이터에는 놀이동산의 놀이기구처럼 생긴 시소가 있는데 같은 모양의 옷을 입은 소년 두 명이 타고 있고 차도르를 두른 여자 두 명과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이 녀석들을 따라다녔습니다.

소년들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요란스러웠습니다. 소리를 어찌나 질러대는 지 놀이터를 전세 낸 것 같았습니다. 무어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다 괴성이었지요. 나름 즐기는 방법인 것 같았습니다.

놀이터에서는 이 소년들이 가장 즐거워보였고, 이 아이들의 활기가 전체 분위기를 업시킨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나도 요란한 이 아이들을 보면서 덩달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요란한 소년들 옆에 서있던 엄마들의 표정은 좀 전에 본 카키색 코트를 입은 여자의 무표정과는 딴판으로 얼굴에 생기가 느껴지고 현재를 즐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부녀가 나타났습니다. 빨간 모자를 쓰고 금발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또한 빨간 코트을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분홍색 부츠를 신은 5살 정도의 소녀입니다. 소녀의 모습이 워낙 예뻐서 그 아버지는 어느 나라 공주의 경호원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들 부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이란의 놀이터에서 느낀 것인데 아버지의 역할이 정말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놀이터에서 주도적 역할은 어머니인데 이란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주도적으로 돌보는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이날이 휴일이라 직장에 가지 않은 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쳐도 아버지의 행동에는 적극성이 있었습니다. 결코 가정의 들러리가 아니라 양육에서 키를 잡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란 남자들이 가정적이라는 것을 이란 와서 알았습니다. 오기 전에는 가부장의 화신으로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이들은 매우 가정적이었습니다. 퇴근 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자리를 깔고 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저녁을 보내고 휴일에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녀를 돌보는데 적극적이었습니다. 버스를 함께 탔을 때도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고 내내 달래는 사람도 아버지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란의 아버지들이 이런 모습인 건 음주문화가 없는 문화적 이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주국가이다 보니 술집이 있을 리 없고, 밖으로 나돌 이유가 차단되다보니 가정적인 아버지를 만드는 데 한 몫 한 게 아닌가 하고, 이란의 놀이터에서 추위에 언 머리로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태그:#이란놀이터, #테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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