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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달리고 있는 차. 나도 이 차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느려터진 아저씨는 신기하고도 새로웠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 차. 나도 이 차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느려터진 아저씨는 신기하고도 새로웠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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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애가 인터넷에서 6천원에 산 가방이 몇 번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손잡이 부분의 박음질이 터졌습니다. 적은 돈을 주고 산 가방이고, 어쩌면 고치는 것보다 새 걸 사는 게 더 경제적일지 모르지만 작은 애와 난 고치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작은 애는 그 가방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고, 난 새 것보다는 고쳐 쓰는 게 좋다는 이상한 신념 때문에 우린 정말 거의 오랜만에 의견을 통일했던 것입니다.

가방을 고치기로 결정한 후 길을 다닐 때 가방 고치는 곳이 어디 있나, 하고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마침내 한 집을 발견했습니다. 자주 다니는 도서관에서 가까운 구두방입니다. 콘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든 작은 구두방에는 분명 '가방수선'이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당장 가방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구두방엔 주인이 없었습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걸로 봐서 먼 데 간 것 같지는 않아 잠시 서서 기다렸습니다. 구두방 안은 너저분했습니다. 누군가 찾아가지 않은 낡은 구두들이 쌓여있고, 청소는 한 번도 안 한 것처럼 먼지가 뽀얗게 덮여 있고, 구두를 수선하다가 남은 가죽 부스러기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었습니다

선반 아래 작은 탁자가 하나 있는데 그 위에는 지저분한 구두방과 어울리지 않게 음식물이 있었습니다. 오렌지 몇 개가 투명 봉지에 묶여있고, 포장된 떡볶이도 있고, 음료수도 몇 병 있었습니다. 누군가 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분 후에 한 남자가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직감적으로 이 구두방 주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정말 거북이처럼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가 내 눈에 보일 때부터 해서 구두방 안으로 들어가서 내게서 가방을 받아들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길어야 5분 남짓이겠지요. 그런데도 그렇게 느낀 것은 평균적으로 우리 삶의 속도가 50킬로라면 그는 10킬로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답답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에게 가방을 건네면서도 미심쩍었습니다. 설마 그가 움직인 속도로 가방을 고치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그런데 내 생각은 그렇게 잘못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방을 받아들고  재봉틀로 박기를 하는  것은, 정말 거북이걸음처럼 진행됐습니다. 한없이 느린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내게 콘테이너 안으로 들어오라거나 그런 말도 안했습니다. 나 또한 좁고 다소 지저분한 그곳에 들어앉아 있을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포지션은 구두방 앞에 그냥 어정쩡하게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디 갔다 올 수도 없었습니다.

느려터진 구두방 아저씨가 고친 가방. 몇 줄로 왔다갔다 하며 박았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박음질이다.
 느려터진 구두방 아저씨가 고친 가방. 몇 줄로 왔다갔다 하며 박았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박음질이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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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방은 5차선 도로와 주택가 골목의 교차로에 서있었습니다. 차들이 씽씽 달리고 사람들은 모두들 어디로가 줄지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게 정신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구두방만 너무나 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멈춘 공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들 50킬로의 속도로 살아가는데 혼자서 10킬로의 속도로 살아가고, 난 갑자기 이상한 곳에 던져진 느낌이었습니다.

50킬로의 속도로 살아가던 사람은 갑자기 너무 느려진 상황을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내 기준으로 보면 터진 가방은 재봉틀로 드르륵 박으면 길어야 5분이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붙들고 30분째 조몰락거리고 있는 아저씨가 답답했습니다. 심심하고 갑갑해서 거의 미칠 것 같은 기분일 때 한 할머니가 왔습니다.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구두방 안으로 들어가서 앉았습니다. 가방을 고치는 것인지 들고만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슬로우 모션으로 가방을 고치고 있는 아저씨는 할머니가 옆에 앉았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가방 고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이에 개의치 않고 할머니는 먼저 신발 밑창 덧대러 왔다고 말하고는 너무나 자연스런 모습으로 아저씨가 가방을 고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고개를 길게 빼고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했습니다. 어떤 조급함도 없고 편안한 시선이었습니다.

이상한 공간에서 급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습니다. 아저씨는 그냥 정지된 시계처럼 움직이고 할머니는 느긋한 관찰자고, 난 50킬로 속도의 세계에서 10킬로 속도의 세계로 갑자기 떨어져 적응 못해 안달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사실 나 또한 바쁠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니 시간에 쫓길 것도 없고, 사실은 시간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바쁜 척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쁘지 않으면서도 바쁘게 살아가는 게 습관처럼 돼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길고 긴 가방 고치기가 끝났습니다. 5분이면 마칠 것을 30분이나 매달렸으므로, 그만큼 애썼으므로 난 아저씨가 수선비를 많이 달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3천 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3천 원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 가방 하나에 매달려 있었는데 수선비가 너무 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천 원을 주고 오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뭘 좀 사다 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두방에 쌓여있던 음식물은 아마도 내 마음과 같은 사람들의 선물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큰 애 가방도 똑같이 손잡이 부분이 고장 났습니다. 가방을 들고 구두방을 향해 걸었습니다. 그런데 가다 보니 우리 집에서 얼마 안 가서 가방수선이 가능한 또 다른 구두방이 보였습니다. 평소 지나다니는 길인데 왜 보지 못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망설였지만 그 구두방으로 이미 한 발이 들어갔습니다.

이 구두방은 지난 번 구두방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주인은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인지 동작이 재빨랐습니다. 그리고 그의 구두방은 정말 말끔했으며 특히 손님을 위해 마련한 정말 깨끗한 실내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지난 번 구두방과 달랐습니다. 주인은 내게서 구두를 받아들더니 정말  내 짐작처럼 5분도 안 걸려서 가방을 다 고쳤습니다. 그리고 5천원을 받았습니다. 좀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5분도 안 걸린 걸 5천원이나 받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번 구두방에서는 30분도 넘게 걸렸는데 3천원밖에 안 받았는데, 하면서 조금 손해 본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친 모양을 보면, 두 구두방의 차이는 더욱 확연해졌습니다. 앞의 30분 동안 고친 가방은 개발 새발 바느질에 질서라고는 없습니다. 반면에 5분 간 고친 가방은 질서정연하게 말끔하게 박았습니다.

바느질 모양새뿐만 아니라 가방에 어울리는 실 색깔 선택이나 모든 면에서 5분 구두방이 프로페셔널했습니다. 5분 구두방이 프로라면 30분 구두방은 아마추어에 가까웠습니다. 당연히 5분 구두방이 효율성이 높고, 앞으로도 이 구두방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30분 구두방으로 기울었습니다. 고쳐야 할 가방이 한 개 더 있는데 난 그 가방을 들고 아마도 30분 구두방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30분 구두방에는 마음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의 입장이 아닌 손님의 입장으로 가방을 고쳤던 것입니다. 다시는 떨어지지 말라고 마음을 다해서 몇 번씩 박음질을 했습니다. 비록 솜씨는 신석기인들처럼 세련되지 못했지만 30분 구두방에는 마음의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그게 날 감동시켰고, 다른 사람들도 감동시켰고, 실력은 비록 출중하지 못하지만 그의 가게에 많은 선물들이 쌓여있었던 이유였습니다.


태그:#구두방, #가방, #삶의 속도, #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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