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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면목동 장안교 야경
▲ . 면목동 장안교 야경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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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서울 면목동이 '수준이 낮네 어쩌네'라며 면목동을 벗어나 강 건너 부자동네로 이사를 가는 날이야말로 출세 하는 날이라고 떠듭니다. 하지만, 저는 면목동이 좋습니다. 우선 면목동 사람들은 악착같지 않아서 좋지요. 모두가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모여살기에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얼굴 맞대고 으르릉 거리지 않습니다.

잘난 척해봤자 파마머리나 볶은 머리나 그게 그거인 줄 아는 까닭이지요. 예전에 신문에서 시집 장가가노라 함이 들어오는데 소란스럽다고 이웃에서 신고를 하고, 아파트에서 개가 시끄럽게 한다고 사람을 상하게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면목동에서는 바다 건너 먼 나라의 해외토픽 같은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면목동에서는 시집가는 딸아이 함이라도 들어올라치면 온 동네 구경거리요, 잔치를 벌입니다. 하다못해 개들까지도 신이 나서 짝을 지어 동네를 돌며 멍멍 왈왈 축하해주지요.

친절한 상인 출입허용. 더불어 살자고요.
▲ . 친절한 상인 출입허용. 더불어 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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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통에서 구운감자를 팔며 냄비 밑에 황조가를 붙여놓고 장단을 맞추시는 로맨티스트 아줌마. 제가 사랑하는 아줌마입니다.
▲ . 시장 통에서 구운감자를 팔며 냄비 밑에 황조가를 붙여놓고 장단을 맞추시는 로맨티스트 아줌마. 제가 사랑하는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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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면목동에는 '친절한 상인 출입 허용'이라는 글귀를 써 붙인 빈대떡 집도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머리를 공짜로 깎아주는 미용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어르신들 영정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사진사도 있습니다.

아침에는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초등학생들과 경찰관 아저씨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고, 시장 통에 엎드려 구걸하는 분이 있으면 공손하게 천 원짜리 한 장 넣어주는 인정이 있습니다. 면목동에 오면 더불어 산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지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감자를 구워 파는 아줌마는 <황조가>(黃鳥歌)를 구불구불한 글씨로 써서 감자 판 돈 넣는 냄비 밑바닥에 붙여놓고 흥에 겨워 냄비뚜껑으로 장단을 맞추는 낭만도 있습니다.

이른아침 산책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뭐하자는 것인지?
▲ . 이른아침 산책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뭐하자는 것인지?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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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시어머니께 못살게 굴다가 이웃집 연세 지긋한 아줌마한테 쥐어 터져서 눈두덩이 퍼렇게 하고 다니는 젊은 새댁도 있지만, 면목동에서는 이마저도 뉘우침이 빠르고 용서가 됩니다.

이것저것 다 관두고 제가 제일로 면목동을 사랑하는 이유는 시장골목이고 어디고 밖에만 나서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줌마들은 아줌마들대로 아는 척을 해주며 정겹게 손을 흔들흔들 해주기 때문입니다. 면목동 사가정길을 다니는 버스기사 아저씨들은 제가 밖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볕이라도 쪼일라치면 경적을 울리며 인사를 하고 지나갑니다. 어떤 날은 산책 나가는 사람을 붙잡아놓고 자기네 회사 어깨띠를 둘러주며 교차로 한복판에 세워놓기도 합니다. 제가 무슨 자기네 회사 직원인 줄 아는 가 봅니다. 참 유쾌하신 분들입니다.

만나기만 하면 하하호호, 눈만 마주쳐도 하하호호
▲ . 만나기만 하면 하하호호, 눈만 마주쳐도 하하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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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역 3번 출구 토스트를 구워 파는 인심 넉넉한 아줌마도 제 친구입니다. 시장 만두가게에서 만두라도 살라치면 "새로 만든 만두는 손님한테 팔아야 된다"며 제게는 한참 전에 만들어 놓은 만두를 줍니다. 저는 그 아줌마의 당당함이 참 좋습니다. 만두가게 아줌마에게 나는 손님이 아니고 그냥 이웃인가 봅니다. 언젠가는 신발가게 아줌마와 옆집 생선가게 아줌마가 싸웠는데 다음날 신발가게에 옆집을 가리키는 손가락 표시가 그려져 있었고 짤막한 글귀가 쓰인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옆집 여자가 눈을 찔러서 실핏줄이 터지고 시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아폴로미용실의 자랑스런 서울시민상장
▲ . 아폴로미용실의 자랑스런 서울시민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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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동은 예전에 구청장 선거할 적에 강남 3구 빼고는 모두가 야당 구청장을 뽑았는데 유일하게 중랑구만 강남3구와 같이 무상급식 못 하겠다는 여당 구청장을 뽑아준 순진한(?) 사람들이 사는 그런 동네입니다. 그저 좋은 게 좋고, 부탁을 하면 거절을 할 줄 모르는 순진함이 있지요.

그런데 단 한 가지 면목동 사람들에게 서운한 것이 있습니다. 면목동을, 아니 중랑구를 사랑하는 나에게 중랑구청장 나가보라는 말 한마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호떡집 아줌마랑 자가용을 끌고 시장 보러 온 다른 동네 젊은 새댁이랑 싸우는 데, 아줌마 편을 들어줬더니 서울시장 나가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지요. 내가 서울시장 나가면 자기가 명함을 돌려주겠답니다. 생각해보겠다고는 했지만 서울시장 재목이 안 돼 그만뒀습니다.

초등학생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는 면목동지킴이.
▲ . 초등학생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는 면목동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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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내용이 자세히 보이시지요? 면목동이 이런동네랍니다.
▲ . 편지내용이 자세히 보이시지요? 면목동이 이런동네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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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날 뻔 했습니다. 한 가지를 빼먹었군요. 저희동네 학교 앞에서 아침마다 교통정리를 해주시는 경찰관아저씨 이야기를 빠트렸군요. 아이들한테 얼마나 살갑게 하시는지 아이들이 가끔 편지를 써서 고마움을 전하기도 합니다. 이사 가게 되면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다니기도 한답니다. 그중에 제가 일하는 사진관을 제일 먼저 들리지요. 당연히 경찰관아저씨께도 미리 인사를 드리고요.

흔히 말하기를 서울사람들은 동네친구가 없다고 합니다. 제가 사는 면목동은 그런 걱정이 없습니다. 시장 통 족발집이나 감자를 구워 파는 아줌마집이나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서로서로 다 알 정도랍니다. 아침에 출근할라치면 시장아줌마들이 서로 자기네 집에서 커피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는 바람에 성가셔 죽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는 동네의 자랑거리는 무엇인가요? 제가 사는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 자랑 좀 해봤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자랑할만하지 않겠습니까?


태그:#면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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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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