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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증조 할아버지의 기일(2월 24일)이라 온 식구가 다 모였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향내가 독해 창문을 열어 놨더니 달빛이 얼마나 밝은지 촛불 하나만 있어도 좋을 듯합니다. 음복술을 마시려고 고개를 젖히는데 휘영청 밝은 달이 참 크기도 합니다. 

"형님 안주 드시지요."

아우의 말에 "안주는 됐네, 저기 창밖에 밝기도 한 달 한 점 베어 먹으면 되겠구먼"이라고 했지요. 올해 예순이 넘으신 당숙께서 저와 아우의 수작(酬酌·술잔을 주고  받는 일)을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달? 그렇지! 하늘에는 달이 있었지. 하늘에 달이 있다는 것을 오늘 조카 덕분에 새삼 알았네. 아마도 고향을 떠나오고 달이라는 말조차 오늘 처음 들어보는 것 같네. 조카가 사람답게 사는구먼."

머리가 허연 당숙께서 조카들 잔에 술을 채워주시더니 잔을 드십니다. 창밖에 푸른 달빛 안주삼아 멋지게 한잔 하시자며 당신께서 먼저 한 입에 털어 넣으십니다. 잠시 후 주름진 눈가에 뭔가 반짝이더니 당숙께서 고개를 숙이십니다. 안주 삼아 술 한 잔 하자던 창밖의 푸른 달이 우리 당숙을 기어이 울려놓고 마는군요.

가까운 고향이지만 눈물이 난다... 왜?

고향가는 길목의 소나무가 멋드러집니다.
▲ . 고향가는 길목의 소나무가 멋드러집니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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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숙과 저의 고향은 강원도 홍천입니다. 우물가에는 앵두나무가 있었고 장독대 옆으로 청포도 나무 길게 늘어진 그런 고향이었지요. 입버릇처럼 고향이 그립다 말은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쉬엄쉬엄 가도 두 시간이면 닿을 거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당숙이나 저나 고향을 그리워할까요? 철마다 다녀오는 고향이면서도 가슴 속에는 항상 고향이라는 그 무엇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흔히들 고향을 얘기할 때 '어머니의 품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습니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고 어머니의 따듯한 품에서 키워진 곳이 바로 그곳이라서 그럴까요?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향에는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그 어떤 넋두리와 하소연을 해도 끝까지 웃으며 들어줄 수 있는 어릴 적 동무들이 있습니다. 또,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따듯한, 할머니와 어머니의 품 속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지요.

고향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구멍가게.
▲ . 고향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구멍가게.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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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익어가던 내고향 강원도 홍천
▲ . 청포도 익어가던 내고향 강원도 홍천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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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관 생활 45년. 즐거운 날보다는 서러운 날이 많아 하늘에 달조차 있는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만 그 서러운 마음을 안고 고향에 가면 밤하늘 달이 제일 먼저 위로해 주지요.

동구 밖 멋들어지게 굽은 소나무와 키 큰 장승은 타관에서 묻어오는 억만 시름 고향 땅에 발 들여놓지 못하도록 수호신을 자처하고 나섭니다. 툇마루에 앉아 열무김치에 밥 한술 말아 먹는 서러움 속에서도 어김없이 밤하늘에 달은 떠 도심의 가난에 길들여진 나를 위로 하는 곳이 바로 고향입니다. 그리고 연어가 바다로 나갔다가 저 태어난 곳으로 와서 생을 마감하듯이 나 죽어 묻힐 도라지꽃 파랗게 물드는 땅이 고향에는 있습니다.

발밑에 낙엽이 뒹굴고 낙엽 속에 파묻힌 '신용불량자 긴급대출'이라 적힌 전단이 미화원 아저씨의 쓰레받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며 청포도마저 다 떨어지고 없을 몹쓸 겨울의 끝자락에 고향 생각이 진저리를 칩니다. 제 고향은 인제에서 서울로 되짚어 오는 길목에 있는, 청포도 익어가는 마을 홍천입니다.

덧붙이는 글 |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향으로의 회귀를 원하지요. 연어가 저 태어난 곳을 찾아오듯. 그만큼 한갓지게 살고 싶은 마음일 겁니다. 고향에 부모님은 안 계시는지요. 봄이 오는 길목입니다. 고향의 부모님과 집안 어르신들께 안부 한 번 전해보심은 어떨는지요.



태그:#고향, #달, #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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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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