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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 생각이 올바를 때, 역사의 흐름은 퇴보하지 않는다. 미래를 약속하는 언어들이 출렁이는 2012년, 온 지구를 가로질러 30여개국에 선거가 있다. 변화의 시기, 한 생각은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힘의 논리로 억압하지 않는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고자 <오마이뉴스>는 세계의 지성들을 만난다. 그들의 통찰력을 빌어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내면의 지혜를 깨우려 한다. 한 생명이 밝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깨어나자 2012' 인터뷰 시리즈는 그 노력의 하나다. [편집자말]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언어학과 연구실에서 놈 촘스키 교수를 만났다.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언어학과 연구실에서 놈 촘스키 교수를 만났다.
ⓒ 안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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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9일 오후 2시 45분 놈 촘스키(Noam Chomsky) 교수의 MIT 연구실에서 이야기 나눴다. '깨어나자 2012'라는 큰 틀 속에서 자본주의 속 민주주의를 살펴보자 제안했고, 세계 곳곳에서 요청해 오는 인터뷰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을 할애받았다. 촘스키 교수와 단둘이 마주앉아 몰입해 대화를 나눴다. 촘스키 교수는 단 한 호흡도 흐트러짐 없이 물레를 잣듯 생각을 뽑아냈다. 나직한 그의 음성에는 감정의 굴곡이 없었지만, 그가 고른 단어에는 생명을 차별하지 않는 뜨거운 진심이 가득했다.

-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관심을 보여주시며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언급하셨습니다. 그 이후 한국 내에서 강정 해군기지에 관한 시각이 본격적인 평화운동으로 확산되었는데요. 더불어 최근에 발표한 글에서도 '미국의 몰락'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경제적 힘겨루기 가운데 드러나는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 지적하셨습니다. 강정 해군기지를 통해 드러나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 군사적 행보에 관해서 설명해 주시죠.
"제주도 해군기지는 300마일 밖 중국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더욱 에워싸려는 종합적인 노력의 일부분입니다. 일본 오키나와가 수송체계의 주요 지역이며 강정도 본질적으로 강대국 영향권 아래에 있는 클라이언트 상태(client state)입니다. 이 압박 틀에 괌과 같은 곳이나 오바마가 해병을 보내겠다고 발표한 호주 북부지역도 들어갑니다.

쟁점은 중국의 영해 조절권입니다. 중국 군대가 팽창하면서 연안에서부터 200여 킬로미터 밖까지 통제력이 증강되고 있습니다. 이 해역은 중국의 경제 개발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바닷길 말고는 남부 산업지대에서 남아시아와 중동을 지나 유럽까지 직접 이어지는 다른 접근로가 없습니다. 중국은 그 지역 지휘권을 갖고 싶어하고 미국은 안보를 이유로 안 내주려 하는 거죠.

현재 중국은 파키스탄 남부에 주요 기지를 건설하고 있어요. 중동 석유를 얻으려는 건데, 말라카 해협(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 섬 사이), 인도양 등을 거치지 않고. 파키스탄 국경에서 바로 중국으로 가져가려는 겁니다. 또 인도 역시 이란 남부에 해군 기지를 세우고 있습니다. 중국은 더 나아가 지중해 항구 하이파에서부터 이스라엘 홍해로 이어지는 고속 철도관련 협상을 이스라엘과 진행 중입니다. 이는 지중해 동부에서 나오는 천연가스와 석유를 파키스탄 국경까지 수송하기 위해서죠.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 같이 아시아 안보 시스템에 참여합니다. 인도, 파키스탄, 이란은 옵서버지만 아마도 곧 함께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는 상하이협력기구 주변부를 차지합니다. 대안적 안보 시스템의 일종인 에너지 안보이고 서방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오지 않을까 전망하게 됩니다."

"자유무역이라 불리는 그것은 투자자 권리 프로그램 시스템의 일부일 뿐"

우리 문화유산인 운문사 사천왕석을 탁본한 족자를 선물하자 감탄하며 보고 있는 놈 촘스키 교수
 우리 문화유산인 운문사 사천왕석을 탁본한 족자를 선물하자 감탄하며 보고 있는 놈 촘스키 교수
ⓒ 안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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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을 들으면서 지난해 영어권에서 출판된 책에 있는 선생님의 세계화에 대한 글이 떠올랐습니다. "제국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해적 행위'를 해왔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저는 강정 문제를 보면서 가난이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세계 경제 시스템의 상부를 쥐고 있는 권력의 적극성을 본 거죠. 신자유주의, 돈의 논리에서 파괴되는 구럼비 바위처럼 세계질서 변화 속에서 인간의 존엄이란 것은 사라질 거라는 위기감입니다.
"먼저, 우리는 자유무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라, 고도의 보호주의적 요소를 갖는 투자자의 권리 협정이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나라에 대고 특별한 권리를 보장하라고 강요하는 겁니다. 미국 회사가 멕시코에 투자하면서, 멕시코 회사와 똑같이 대우하라고 요구합니다. 인디애나주에 있는 자동차 회사는 조립 공정의 반이 멕시코 북부 공장에서 이뤄집니다. 그리고 완성된 차는 엘에이로 와서 팔리는데, 이럴 때 한 회사의 생산과정을 미국과 멕시코 모두 무역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은 장부를 공개하지 않구요. 이는 교역이 아니라 내부 상호작용이고, 폐쇄된 경제체제입니다. 다국적 기업입니다.

그리고 자유무역 속에서 받는 첫 번째 영향은 가난해지는 겁니다. 미국과 멕시코의 북미자유협정이 1994년 체결됐습니다. 이후 멕시코에서는 기존에 있던 갑부들의 재산이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반면에 그들의 농장 노동자들, 소작농들은 삶의 터전이 위태로워졌어요. 대단히 많은 보조를 받고 들어오는 미국 농업과 경쟁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도시로 집단 이동하고, 도시는 또 미국 기업에 밀린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도산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미국 국경으로 몰려듭니다. 그런데 이미 미국은 1994년 조약 체결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국경 수비경계를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민생 파탄이 예상되었던 것처럼 결국 그들이 미국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부자들은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 사람도 멕시코에서 나왔어요. 카를로스 슬림이라는 남자입니다.

이렇듯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 갖는 전형적인 효과는 부의 집중을 이끌고 부패를 심화시키며 일반 다수의 이익을 감소시키고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결국은 대중 봉기를 부르구요. 아랍의 봄도, 월스트리트 점령도 반 신자유주의 운동이고, 이런 운동은 이미 10년 전 남미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즈음 신자유주의 원칙 속에서 고통 받던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한 나라씩 번져나갔습니다. 그렇게 한 나라씩 해체시켜 나갔습니다. 대한민국도 신자유주의 규칙을 거부하는 이 시간이 엄청난 성장의 시기임이 분명합니다. 일단 신자유주의에 적응되면, 그 나라는 매우 빨리 경제위기로 가라앉습니다. 자유무역이라고 불리는 그것이 바로 한 축이구요. 이는 자유무역도 아니고 무역도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투자자 권리 프로그램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에요."

- 당시 "해적 행위"라고 언급한 단어는 지금도 유효합니까?
"그것은 은유적인 의미이죠. 우리가 오늘날의 사회에서 해적 행위라고 부르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200년 전으로 돌아가 대입해 볼 수 있지요. 최초로 근대화를 이룬 영국은 현재 해적 행위라 부르는 일을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같은 영국의 영웅들은 해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스페인 갈레온(15~17세기에 사용되던 스페인의 대형 범선)을 습격해 은과 자원을 가지고 왔고 영국 산업자본의 큰 부분을 차지했죠. 존 메이너드 케인스(케임브리지 출생의 영국 경제학자) 같은 이도 이에 대해 글을 썼고 그것이 영국 부와 경제 발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지적하면서 이것도 간단히 말하면 해적 행위에 기초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현재의 해적 행위라 불릴 수 있는 행위들이 추앙받기까지 합니다. 지적 재산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아주 완벽한 예인데요. 만약 중국이 미국이나 일본, 한국으로부터 기술을 가져갔다고 가정하면 그들이 그것을 사용할 때, 우리는 이를 해적 행위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영국과 미국에 의해 개발된 과정입니다. 영국은 당시 더 높은 기술 수준을 갖추었던 인도, 아일랜드, 벨기에에서 기술을 해적질 해옵니다. 그렇게 개발을 이뤘습니다. 미국은 19세기에 영국의 수준 높은 기술을 가져왔습니다. 현재 그들처럼 하면 이를 해적이라 부릅니다. 세계 무역 기구의 규정을 보면, 그들이 개발도상국들만 제재를 가하고, 부자 나라들은 감시도 하지 않는 것을 알게됩니다. 사실 경제 이론에서는 이를 '사다리 걷어차기'라 부릅니다. 먼저 사다리를 기어 올라가 부자가 된 다음 그것을 차버리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같은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없게 되는 거죠."

- 해적 음반이라고 부르던 단어가 가장 익숙한 해적행위인데… 그 상황 논리를 확대해 보면 가진 자의 욕망이 곳곳에서 비슷한 유형으로 드러나 온 것을 들춰 볼 수 있겠네요. 시대와 경우마다 그 함의가 유연하게 적용되는 것이 언어라는 것도 기억해야겠습니다.

(☞ '깨어나자 2012 : 석학을 만나다 1-2'로 이어집니다.)


태그:#놈 촘스키, #강정마을, #해군기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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