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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비정규직으로 돌아간다. 교무실, 급식실, 과학실, 도서실, 돌봄교실, 방과후 교실 등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 이들은 이름이 없다. 공무원도 교사도 교직원도 아니다. 그저 학교 비정규직인 이들은 고용불안, 근속에 따른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 심화, 임금과 복리후생의 차별, 임의적 근무일수, 경력 불인정 등 모든 부분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다. - 기자 말

특수교육실무사 정현희(가명·54)씨는 서울 성북구 ㅇ초교에서 계약해지를 당했다. 김씨는 자폐아동, 다운증후군 아동 3명을 돌봤다. 수업부터 화장실, 점심식사까지 같이했다. 아이들이 재학 중이었고, "6개월 이상 상시, 지속적 업무 담당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정부의 고용개선 지침에 의해 정씨는 올해 무기계약직이 돼야 했다. 그러나 학교는 정씨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학교측은 "특수교육실무사는 무기계약 안 시킨다"며 "장애 아동이 없을 때를 대비해서"라고 답했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농성하는 학교 비정규직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농성하는 학교 비정규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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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비정규직(회계직) 노동자들이 대량 계약해지, 해고를 당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는 전국 16개 시도에서 평균 100여 건의 해고 사례를 접수했다. 광주에서는 조리종사원 660여 명이, 제주에서는 수익자부담 조리종사원의 약 25%에 달하는 394명이 집단 계약해지를 당했다.

공공노조 소속 전국교육기관회계직연합회(전회련)측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서울지역에서만 약 1천여 명이 해고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무기계약자까지 포함됐다. 서울 H고는 처우개선으로 인해 인건비가 증가했다는 이유로 기간제 노동자 9명을 계약해지했다. 서울 Y초등 병설유치원에서는 한 노동자가 출산휴가 상담을 했다는 이유로 근무평가 점수를 낮게 받고 계약해지 당했다.

학교의 차별 구조, 예정된 해고대란

터질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학교가 운영 전반을 비정규직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차별적인 인력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는 11만5천여 명의 비정규직이 영양사, 조리종사원, 교무보조, 돌봄강사 등 33개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2011년 3월 기준). 한시적 사업 종사자, 대체인력, 특기적성 강사 2만여 명을 제외한 수치다.

학교비정규직 직종
 학교비정규직 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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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고려대 교수는 '학교의 신분차별형 인력구조와 비정규직 해결방안'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교 체제는 학급당 학생 인원수가 줄어들고, 교원 수가 증가하는 선진형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사무원 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학교의 기능이 복잡해지고 질적 수준이 향상되는 데 반해 지원 조직이 줄어든 것이다. 이 틈을 메운 것이 회계직의 급속한 증대이다. 22,600명인 약 25%가 증가하여 학교 행정수요가 증가하는 데 반해 행정인력이 축소(주로 기능직의 축소)된 빈틈을 비정규직의 증가로 대체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어 그는 그 배경을 "고용의 질을 고려치 않고 양적 확대에 의존해 적은 예산으로 해결하는 정책을 전제한 것"으로 진단하고 "고용불안의 시대를 공공부문, 그것도 교육기관이 앞장서서 주도하는 양상"이라고 비판했다.

학교 인력구조 변화현황
 학교 인력구조 변화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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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비정규직의 신분은 교원도 직원도 아니다. 그에 따라 임금, 노동조건도 현격한 차별이 있다. 임금의 경우 단일 연봉제다. 조리사의 경우 245일 일하고 이를 12개월로 나눠 월급을 받는다. 임금이 낮을 수밖에 없다. 호봉, 상여금, 각종 수당 등 임금 인상 구조가 없다. 근속할수록 오히려 정규직과의 격차가 커진다. 10년이 지나면 정규직 조리사는 월급 228만 원을, 비정규직 조리사는 정규직의 42%인 96만 원을 받게 된다.

상시적 고용 불안도 심각하다. 채용권한을 개별 학교장이 갖고 있으나, 사용자성이 명확치 않아 노사협의체계가 보장되지 않는다. 학생 수가 줄거나 지자체가 재정 지원을 줄이면 자연스레 해고된다. 학교 편의에 따른 해고, 부당 노동행위가 빈번히 벌어지는 원인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무책임

학교 비정규직은 이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60% 이상을 채울 정도로 비대해졌다. 정부도 위기를 느낀 것은 분명하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통해 '올해부터 학교 비정규직 역시 2년 이상 상시, 지속적 업무 종사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라'고 밝혔다.

교과부 역시 '학교 비정규직 처우개선안'을 내놓았고, 시도교육청 별로 진행하고 있다. 연봉기준일수 상향조정, 장기근속가산금, 맞춤형 복지 인상, 정년연장, 비정규직정책협의회(경기, 광주, 서울, 충남 등) 등이 주요 내용이다. 차별 해소를 위한 노조의 요구가 상당수 반영된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런 한편으로 해고 대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책이 핵심을 비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장이 고용권을 갖고 있는 한 고용은 여전히 불안하다. 학교 측이 처우개선에 드는 부담을 피하려 해고, 계약해지를 남발하는 상황이 이를 반증한다.

교육청의 소극적인 대처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특히 서울시에서 가장 많은 해고사태가 일어난 이유도 여기 있다고 노조 측은 지적한다.

"고용노동부가 내린 무기계약직 전환 지침 이행 협조공문을 서울시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뒤늦게 발송했다. 교육청은 2월에 벌어진 집단 계약해지 사태를 방조했다."(곽승용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서울지부 정책국장)

"무기계약직 채용 지침은 1월에 발표됐다. 대비만 했으면 2월에 일어난 해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와서는 그 자리를 신규 채용자가 메웠기 때문에 계약해지 문제를 풀기 더 어려워졌다."(박문순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부장)

학교장이 고용을 유지할 의지가 있어도 교육청이 '어깃장'을 놓은 사례도 있었다. 지난 11월 서울 마포구 A중학교는 학교회계직 인건비 부족액을 지원해줄 것을 교육청에 요청했으나 "향후 인건비 부족을 겪는 학교가 추가 발생할 것이 예견되어 인건비 추가 지원이 불가하다"며 거부당했다.

또 다른 비정규직을 만들어내는 '역행'까지 일으켰다. '교무행정지원사'다. '교원업무정상화계획'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1004개 학교에 교무행정지원사를 충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이 직종이 월급 104만 원짜리 10개월 기간제 일자리라는 점이다.

"우선 교육청(교육감)이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해 불안정한 고용구조 자체를 바꾸는 대책을 내야 한다. 개별적, 점진적 처우개선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현재 상황이 입증한다."(박금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교육청 직접고용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광주시교육청의 경우 지난해 '광주시교육청 비정규직 보호조례'를 제정했고 올해 9월부터 직접고용을 합의했다. 광주교육청 관계자는 "소요 예산을 파악해 교육비 특별회계를 통해 인건비를 지원할 방침"이라며 "직접 고용해도 쓰이는 인건비는 동일하다"고 밝혔다.

이어 "직접고용을 통해 근로자 입장에서는 학교별로 달랐던 근로조건을 통일하고 고용안정을 이룰 수 있다"며 "교육청 입장에서는 학교 인원 증감에 맞춰 인력을 순환 배치하는 등 해고 없이 보다 효율적으로 인력을 운용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강원, 전북, 전남도 직접 고용을 추진하고 있다.

사용자는 누구? 입장 충돌하는 정부

지난 2월, 공공기관 비정규직 대책의 문제점과 현장사례 발표 기자회견.
 지난 2월, 공공기관 비정규직 대책의 문제점과 현장사례 발표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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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궁극적으로 교과부를 비롯한 정부가 총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노조와 논의해왔으나, 교육감 직접고용보다는 학교장에 위임하는 형태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예산 부담 때문이다. 이어 그는 "경기도의 경우 규모가 크고 비정규직 인원도 많은 만큼 도내 조례개정과 교육청 자체 예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올해 처우개선비에만 공립 기준으로 760억 원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교육청마다 조건과 상황이 다른 만큼 교과부의 지원과 정부의 정책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대책만 발표했을 뿐 관련 추경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각 공공기관의 자체예산으로 해결해야 한다. 교과부 역시 예산책정 없이 '시도별 자율시행' 권고안만 내렸다. 시도교육청 자체의 예산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책을 추진해야 한다. 결국은 일선 학교로 부담이 이어지는 구조다.

정부 지침이 오히려 기간제 보호법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1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추진지침은 2년을 초과해 근무하더라도 '직무분석 및 평가를 거쳐 일정 기준에 해당할 경우'에 무기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정했다. 일선 학교장들의 계약해지 남발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기관 사이의 입장마저 상충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체교섭에 있어 사용자 여부를 묻는 전남교육청의 질의에 지난 2월 고용노동부는 "교육청(교육감)을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교과부는 "학교장을 사용자로 본다"며 교과부가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적 영역을 시장 논리로 접근 말아야

"우리 애가 대학 졸업반인데 취업 자리 알아보고 와서는 그러더라고요. '엄마, 처음에는 인턴으로 들어가고, 1년 후엔 2년 짜리 계약직이 된대요. 요즘은 다 그래요?' 엄마가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하는데 우리 애들은 비정규직이 되는 걸, 백만 원도 안 되는 급여를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데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박금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평등교육학부모회 김태균 상임대표는 "학교는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공적 영역"이라며 "교육현장과 그 구성원을 시장 논리, 비용 문제로 접근해 다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로 인해 비정규직이 양산될 경우 학교현장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역시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교사에게는 교원평가로, 학생에게는 일제고사로, 비정규 노동자에게는 근무평가와 차별로 서로 경쟁하게끔 하는 것은 교육을 무력화할 것이다"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비정규직 확대에 의한 사회적 비효율성을 해결하는 것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일반 기업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게 될 공공부문, 특히 교육 부문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모범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 - 학교 비정규직 : 각급 학교에서 교육 및 행정업무 등을 지원 또는 보조하기 위하여 필요한 근로를 제공하고 학교회계에서 보수를 받는 자를 말한다.
- 이 기사는 노동세상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비정규직, #학교비정규직, #공공기관비정규직, #학교,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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