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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귀농이라는 화두를 가슴에 품고 도시에서 경북 상주의 시골이라는 미지의 땅으로 이주를 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고 지우던 그때가 지금 돌아보면 행복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밭농사로 귀농의 첫걸음을 떼고 있을 무렵, 주민들로부터 종종 들었던 얘기들.

"소 한번 키워보지 그래?"
"요즘은 소가 돈이 되네, 열 마리만 키워도 유동 현금이 5000만 원일세."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없던 마음도 듣고 보다 보면 혹하는 법, 돈에는 솔깃한 구석이 있었지만 아직 닭이나 쳐야 될 처지에 큰 덩치의 소 키우는 일은 솔직히 자신도 없었고 선뜻 내키질 않았다. 게다가 한 마리나 열 마리나 매일 사료 주고 키우는 일 때문에 하루도 집 비우기가 힘들다는 주변의 말에 강 건너 얘기로 흘려버렸다.

땅에서 나는 농사로 경제자립이 힘들게 다가올 때마다 소나 키워볼까 했던 마음이 슬그머니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최근의 솟값 폭락 사태가 일어나기 전만 해도….

솟값 폭락에 FTA까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수심만 가득

전국한우협회 소속 축산농가 회원들이 5일 오후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값 폭락에 항의하며 정부의 한우 수매 등 한우값 폭락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전국한우협회와 축산 농가는 소 1000여 마리를 차량에 싣고 상경해 '한우 반납 시위'를 벌일 계획이었으나 경찰의 원천 봉쇄로 상경은 무산됐다.
 전국한우협회 소속 축산농가 회원들이 5일 오후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값 폭락에 항의하며 정부의 한우 수매 등 한우값 폭락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전국한우협회와 축산 농가는 소 1000여 마리를 차량에 싣고 상경해 '한우 반납 시위'를 벌일 계획이었으나 경찰의 원천 봉쇄로 상경은 무산됐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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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솟값 폭락이 현실로 나타났다. "소 값 반 토막", "육우 송아지 한 마리에 1만 원", "사료 값 때문에 송아지 굶겨 죽여" 등, 나락으로 떨어진 축산 관련 뉴스는 연일 언론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축산 농민들의 절망과 분노는 마침내 소를 몰고 청와대로 가는 상경 시위로 표출됐고(5일), 공권력과의 충돌은 새해 벽두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시장에서 버림받은 탓일까? 지난 6일 찾아간 이웃 축사의 분위기는 추운 겨울 날씨보다 더 냉랭했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농민의 눈에는 앞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폭락 사태에 대한 불안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당장에 소를 팔아야 사료 값도 충당하고 가족의 생계를 이어 나가는 영세 축산농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아~ 소 말고 다른 농사라도 짓는 사람들이나, 수백 마리 이상 키우는 자금 튼튼한 사람들이야 버틸 수 있지만, 우리처럼 소 하나 바라보는 사람은 죽게 생겼어."

다른 농사를 지으면서 '과외'로 소를 한두 마리 키우는 사람들은 당장 소를 팔지 않아도 되니 괜찮고, 대규모 기업형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금력으로 이 사태를 버틸 수 있으니 괜찮지만, 당장 소를 팔아야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를 팔 수도 안 팔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라는 말이다.

막상 '소 값 반 토막'이 현실로 다가오자 다시 분노는 정부 정책으로 향했고, 별 관심 없던 한미FTA도 미래의 불안 심리에 불을 지피는 것 같다고 한다.

"소를 너무 많이 키운 농민에게도 약간의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요?"
"몇 십 마리 키우는 게 뭐가 많이 키우는 거야. 천 마리 키우는 사람도 있는데."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한우 사육 두수는 약 300만 마리. 정부는 한우의 과잉사육 문제를 제기하며, 3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암소 도축을 유도하는 것으로 이 가운데 40만 마리를 도태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세농가의 입장에선 이도 억울하다는 반응이었다.

"수입 쇠고기만 아니면 한우가 많은 것도 아니야. FTA 밀어붙이는 정부 책임이 제일 크다고."

한우 수가 늘어나면서 정부에선 감축 권고를 했지만 사실상 개별 사업자와 같은 농가의 현실상 통제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돈 된다' 대책 없이 달려든 농민들 책임" 지적도

2011년 6월 경남 함안 가축시장 모습
 2011년 6월 경남 함안 가축시장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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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분노의 한편에는 또 다른 시각도 있었다.

"돈이 되니까 너도 나도 축사 짓고 많이 키우다 이제 와서 보상해달라고 하면 말이 되나?"
"배추나 소나 다를 게 뭐가 있나? 돈 되면 앞뒤 없이 확장하고…. 배춧값 폭락하면 누가 보상해주나? 다 농민들 책임이지."

작금의 축산농 입장에선 독화살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농업을 전적으로 시장 경제에 방치해서도 안 되고, 시장의 불균형을 농민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정부가 농장을 국가 소유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는 없기에, 개별 사업장과 같은 농업에 대해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관리 정책은 응당 정부의 몫이다. '식량산업'인 농업은 보호해야 될 국가의 기초산업이기 때문이다.

결국 과잉공급에 사료 값 인상, 수입 쇠고기의 증가라는 악재가 맞물리면서 시장의 질서는 한 치의 사정도 없이 움직였다. 농민은 반 토막 난 솟값에 절망하고, 최종 소비자는 여전히 비싼 쇠고기 값에 분노해도 솟값의 40%를 넘게 차지하는 중간 유통구조는 요지부동이다.

한 마리라도 더 키워 부농이 되고자 하는 농민의 욕심(?)과 무능한 정부의 관리 정책, 세계 곡물시장에 의존한 사료 값의 치솟는 인상, 농업을 희생으로 한 대책 없는 FTA가 지속되는 한 솟값 폭락 사태는 당분간 회복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뒤늦게 군납용 쇠고기를 전부 한우로 대체하고, 잉여 암소를 수매하는 대신 단계적으로 도태시키겠다는 뒷북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그나마 가장 효과 있는 정책은 쇠고기 소비 촉진이지만 부동의 고가에 서민들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억대 농가 육성' 외치는 정부, 농가 탓할 수 있나

소값 폭락을 알기나 할까? 추운 날씨에 어딘가를 바라보는 한우.
▲ 생각에 잠긴 소? 소값 폭락을 알기나 할까? 추운 날씨에 어딘가를 바라보는 한우.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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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오래된 미래'를 보는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다른 농사와 함께 아이들의 장래 학비를 위해 한우 3~4마리를 키우는 귀농자가 있다. 일체의 사료를 거부하고 오로지 풀을 베어서 먹이고 있다. 당연히 사룟값에서 해방되니 솟값 폭락에도 큰 절망은 없다. 열심히 풀을 베는 노동력만 버텨주면 적은 돈이나마 아이들의 학비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소를 키우는 것은 그만큼 풀을 댈 수 없기에 불가능하다고 한다.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비웠기에 가능한 일이다.

소와 함께 평생을 같이하며 밭 갈던 시대는 지나갔다. 고기의 무게에 따라 돈으로만 환산되는 소의 짧은 운명. 하지만 불안전한 사료보다는 풀을 먹이는 축산 농가를 바라는 꿈은 너무 낭만 같은 이야기일까?

다른 농사와 달리 소는 한 마리를 키우나 수십 마리를 키우나 힘 드는 건 매일반이라고 한다. 어차피 풀을 베서 먹이지 않는 한 차라리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대규모 사육을 하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마리 수가 늘어날수록 돈이 늘어나는데, 억대 농가 육성을 마치 농정지표처럼 부채질하는 정부가 과연 농가에 쉽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태그:#솟값, #FTA, #수입쇠고기, #소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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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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