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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세월이란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저 똑같은 시간일 뿐인데... 아마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삶을 분간하고 의미를 찾고자 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권력도 십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권불십년...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2007년 2월 8일, 그날 이후 3650일, 10년이 흘렀다.

하얀 겨울 시골의 풍경은 한폭의 수채화다.
▲ 눈온 날 별채 풍경 하얀 겨울 시골의 풍경은 한폭의 수채화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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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의 나이는 이제 50대 중반이 되었고, 아이들도 그만큼 성장했다. 중3, 초6, 네 살이었던 세 딸은 어느새 20대 청춘이 되었고, 막내도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함께 농사지으며 동고동락해 온 아내와 나는 자연스레 촌부가 되었다.

성공한 귀농인? 아직도 진행 중

귀농 붐이 불면서 성공 귀농, 억대 농부라는 단어가 도시, 농촌을 휘저었고 실제 시골에서 억대 소득을 꿈꾸는 귀농자들, 갈수록 경제적 목적의 귀농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농사를 통해 억대 소득을 올린다면 성공한 귀농일까? 외견상은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귀농의 모습이지만 땅은 지가상승으로 농심을 어지럽히고, 집 짓는 과정은 즐거움이자 스트레스의 현장이기도 했다. 억대농이 되려고 농사판 벌리다 감당 못 해 주저앉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귀농 초심은 적게 벌어 적게 쓰자는 주의였다. 당연히 소농으로 이어졌고 귀농 5년 만에 이룩한 경제 자립은 한해 농사 삐걱하면 다음 해 빚지는 불안한 가계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성장했고 지출은 늘어갔다. 그래도 부부가 한눈팔지 않고 농사만 지어서 경제를 꾸리겠다는 귀농초의 결심을 지킬 수 있었음에 스스로 자부해본다. 성공도 실패도 모두가 삶의 지나가는 과정이니 성과 패를 따진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귀농은 그저 진행형일 뿐이라고 믿고 싶다.

제 일을 다한 포도잎들이 누렇게 변하면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 포도수확이 끝난 후 제 일을 다한 포도잎들이 누렇게 변하면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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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대안을 찾아 경북 상주로 무작정 귀농

도시는 견고했지만 불안한 성이었고 화려한 롤러코스터였다. 매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치이고 부대끼고, 밤이 되면 이어지는 술집 순례. 밤늦은 귀갓길엔 이렇게 살다 결국엔 도시의 담벼락 아래서 삶을 마감할 것 같은 서글픈 예감이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자연과 생태, 농사와 소박한 삶이 가슴 들뜨는 대안으로 다가왔고, 관심사는 시골로 향했다. 텃밭의 벅찬 체험부터 길게는 3년의 기다림과 준비 끝에 10년 전 아내와
아이들 셋을 데리고 경북 상주 화령의 어느 빈집에 시골살이의 둥지를 틀었다.

자유로운 심신, 시골의 낭만, 속세의 명리를 버리니 황제보다 더 높고 편하다는 고사처럼 시골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경이롭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몸을 써서 일한다는 뿌듯함은 호미, 괭이, 삽질을 마다하지 않았고 땀 흘린 노동 후에 들이켜는 막걸리의 꿀맛과 분위기 달구는 구성진 옛노래 부르기는 시골살이의 낭만에 빠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도 돌아보면 귀농 초 2년의 시간이 가장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텃밭은 이러저런 먹거리를 선물해준다.
▲ 소박한 가을걷이 텃밭은 이러저런 먹거리를 선물해준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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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시골은 '환상' 문화적 차이 앞에 무력감 들기도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은 청정 시골을 상징한다지만 지하수는 조금씩 오염되었고, 쓰레기는 태우면 그만이라는 무의식과 행정의 무관심으로 시골 곳곳은 쓰레기 소각과 방치가 만연했다. 초기에 쓰레기 문제로 주민들과 끈질긴 대화를 나누고 분리수거도 일 년간 시도한 끝에 마을 안에 쓰레기 분리장이라도 만들어 소각량을 그만큼 줄였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오랜 세월 단순한 농사일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시골의 단순성과 폐쇄성은 도시에서의 합리적 사고와 시비분간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다. 귀농인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은 골치 아픈 일로 무시되기 십상이었다.

이렇듯 시골살이도 낭만적 외연에서 내부의 속살로 들어가면서 심각한 문화적 차이와 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농촌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만큼 각종 보조금과 행정 지원은 관과 농민의 관계를 갑을로 만들었다. 보조금 타는 데 익숙한 농민과 그렇지 못한 농민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골도 깊어지고, 보조금 관련 비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도 농촌의 서글픈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나 시골, 사람 사는 세상은 대동소이

지금도 도시의 삶에 지친 많은 이들이 귀농, 귀촌을 꿈꾸며 시골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와 여건 속에서 귀농에 도전하는 분들에게 감히 드리고 싶은 말은 귀농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이라고.

귀농자든 원주민이든 끼리끼리 어울리는 사람 세상은 도시와 다를 바 없고, 몸을 써서 짓는 농사는 육신의 고달픔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포도에 순이 나오기 시작하면 포도순따고 정리하느라 하루 해가 짧기만 하다.
▲ 본격적인 포도농사 포도에 순이 나오기 시작하면 포도순따고 정리하느라 하루 해가 짧기만 하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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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시골살이의 낭만도 2년이면 시들해진다고 한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밤하늘의 별도 갈수록 볼 날이 줄어들고, 익숙해진 시골 풍경은 또 다른 일상으로 다가온다. 그럴수록 모임이 많아지면서 사람 관계에 치중하게 되고 어느 순간 도시의 삶과 별반 다름없음을 느끼게 된다.

농사로 먹고살아야 하는 귀농은 도시와는 전혀 다른 치열한 현실임을 알고 도전해야 한다. 육신의 마디마다 아픔을 이겨내고 을이 되어 시골살이에 정착하는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도 알아야 한다.

산천은 의구하지만 내가 변하면 자연도 새롭게 다가올 것

10년 세월을 보내고 다시 시골살이 2부를 시작하는 힘은 무엇일까?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그리 새롭지도 않고 지나온 일상의 반복일 것이다. 농사는 매년 생계를 위해 매달려야 할 지상 과업이고, 어느 정도 친숙해진 마을 주민들과는 흘러가는 대로 어울리게 될 것이다. 농한기에는 여유와 문화생활을 즐기고 그렇게 한 해 한 해 보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10년을 아니 20년을 맞게 되지 않을까.

산천은 의구하지만 내가 새로워지면 세상도 새로워질 것이고 변함없는 자연도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노력한 만큼 돌려주는 자연의 이치, 뜻 맞는 사람들과의 소통, 사계절의 섭리와 깊고 넓은 품으로 세속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대자연이 있기에 그래도 도시보단 시골이 더 낫다고... 단 시골을 너무 쉽게 보지는 말라고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태그:#귀농, #시골, #도시, #시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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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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