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를 정의하는 말은 여럿이 있다. 목사, 사도, 총회장, 당회장, 목자, 종. 호칭에 따라 어감은 완전 하늘과 땅을 오간다. 요즘은 안 좋게 평가하는 말들이 더 많아 목사들이 괴롭기도 하다. 좋게 표현하면 그만큼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터다. 물론 사회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분들은 1%가 안 된다. 99%는 땅 속 음지를 사는 분들이다.
음지 속 지렁이처럼 살아도 자족하는 분들도 많다. 온갖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활보하는 용처럼 타락하는 것보다 이 땅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목사들이 그렇다. 자칫 돈과 명예와 권력과 성에 휩쓸리기도 하는데 단호히 차단하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육신과 정신에 새 살이 돋게 지렁이처럼 사는 분들이 그렇다.
이지성의 <한국의 진짜 목사를 찾아서>는 음지 속 뜻 깊은 삶을 사는 목사 7명에 관한 이야기다. 영등포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 박희돈 목사, '토요일은 밤이 좋아'로 1980년 후반 한국가요계를 주름잡았던 김종찬 목사, 한국 최고의 칼빈주의 신학자 정성구 목사, 한국교회 죽이기에 맞서고 있는 이억주 목사, 단군상 훼파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고 있는 최흥호 목사, 한국교회의 시크릿 열풍을 차단하는 김태한 목사, 이단과 사이비들과 맞서고 있는 탁지원 소장과 탁지일 교수 형제가 그렇다.
분당의 대형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저자가 그 분들을 찾아 나선 연유는 따로 있다. 이른바 자기 교회의 담임목사가 행하는 설교에 구린내가 났던 까닭이다. 세상의 성공과 번영에 관한 설교가 주된 이유였던 것이다. 정작 선포해야 할 예수, 회개, 정직, 공의, 십자가와 같은 말들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런 회의감이 밀려들었을 때 어떻게 했을까? 몇 몇 교회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땅의 목사들도 성공을 외치는 세상의 유명 강사와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몇 신문에 소개된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을 만나 인터뷰한 뒤로는, 아직도 한국교회에 희망이 남아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한국교회 목사가 욕을 먹는 이유가 뭘까? 이지성은 이 책을 통해 세 가지로 꼽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목사의 시야가 교회 안에만 갇혀 있는 것, 목사의 가슴엔 국민이 없고 단지 교인만 있는 것, 불의한 이 세상의 권력자들 앞에 공의와 정의를 선포하지 않는 것 등이다. 어떤 면에서 공감이 가는 바이기도 하다.
"만일 대형교회 목사들이 설교시간에 세상의 언론만큼만 권력자와 재벌의 죄를 지적할 수 있다면 국민은 그들을 '우리 목사님'이라 부를 것이다. 소위 좌파의 길을 걸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성경이 말씀하신 선지자의 길을 걸으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라는 말이다. 그러면 국민들은 스스로 교회에 찾아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33쪽)사실 대형교회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하고 싶은 게 있다. 지난 12월 31일 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어느 대형교회 담임목사는 교인들을 한 명 한 명 불러 축복기도를 해 줬다고 한다. 그것도 오후 7시부터 11시가 다 되도록 말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칭찬하실 일일까? 또 다른 교회에서는 그 예배 때 헌금을 드리면서 '2012년의 말씀카드'를 뽑도록 한다. 과연 그도 성경적인 모습일까?
가히 이 책에 등장하는 7분의 목사들은 진정 색다른 분들이다. 그 중에서도 내게 깊은 울림을 전해 준 분이 있다. 단군상 훼파 사건의 주역인 최흥호 목사가 그다. 그 일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을 때 나도 실은 그 분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다. 단군상을 세우는 걸 단순한 문화적인 차원으로만 바라본 까닭이다. 헌데 최흥호 목사는 이 책을 통해 나의 시선이 얼마나 빗나간 것인지를 바로 잡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 차원이었다. 하나는 단군상 절단사건의 수사를 보통의 형사계가 아닌 청와대 차원에서 주도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단군상의 얼굴이 단월드와 뇌호흡과 뇌파진동으로 유명한 이승헌의 얼굴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 사건은 형법상 단순재물손괴로 벌금형일 뿐인데도 민족혼을 심는다는 김대중 정부가 수사한 일이었고, 단군상을 세운 단체의 수장격인 이승헌은 각종 비리와 스캔들을 추적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이로서 죽기 전 1000명의 무당을 만드는 포부를 갖고 있는 이라는 게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족의 구심점으로 단군을 내세웠다. 박정희 시절에는 서울 남산공원에 단군신전을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추진위원장이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그때마다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온 몸으로 막았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 때 이승헌이 단군상을 세웠다. 민족혼을 심는다는 둥 남북관계를 좋게 한다는 둥 온갖 그럴싸한 이유를 대가면서." (212쪽)2012년 임진년(壬辰年). 사람들은 용띠의 해라며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나는 용을 꿈꿀지 모르겠다. 목사들 가운데도 혹시라도 그런 망상을 품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몇몇 기독당을 모색하거나 더 큰 주름을 잡고자 하는 분들 말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진솔한 목사들처럼, 2012년 한 해에는 목사들이 음지 속 지렁이처럼, 진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삶에 자족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