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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서둘러 특급열차에 타지만, 이젠 자신이 무엇을 찾아 그리도 헤매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중에서

바쁜 일상이다. 눈 뜨면 어느새 하루가 가고, '휴, 월요일이네' 한숨 쉬기가 무섭게 주말을 맞는다. 그렇게 1년, 2년 세월이 쌓이면 뒤돌아보기 두려워 다시 앞만 바라본다. 광고 속 카드회사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고 소비를 부추기지만 정작 떠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카드회사가 돈 버는 게 싫어서? 꼭 그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단순히 여행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인생과 일상에도 쉼표가 필요하다는 게다. '슬로 라이프'의 창시자, 쓰지 신이치의 <행복한 경제학>에 소개된 인디오들의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유적 발굴 탐험가들에 고용돼 따라가던 인디오들은 정글을 앞두고 아무 말 없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탐험가들이 급료를 높여주겠다고 어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총으로 협박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자 이들은 갑자기 일어나서 짐을 등에 지고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인디오들은 말했다.

"너무 빨리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바쁘게 일하는 당신에게도 필요한 말이다. 연말을 맞아 잘 못 쉬는 독자들을 대신해 잘 쉬는 고수들을 찾아 나섰다. 소개하는 다섯 고수들의 다양한 쉼에서 힌트를 얻어 2012년, 당신으로부터 '잘 찍은 쉼표 하나'를 소개받길 기대한다. - 기자말

신혼여행 중 제주 강정, 부산 한진중공업, 봉화마을에 들렸던 음화(남), 심장(여)씨.
 신혼여행 중 제주 강정, 부산 한진중공업, 봉화마을에 들렸던 음화(남), 심장(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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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집회에서 '눈 맞은' 음화(닉네임)와 심장(닉네임)은 올해 10월 8일 결혼했다. 특별한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동남아 휴양지부터 유럽 배낭여행까지 어느새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요즘 신혼여행 풍속도에서 벗어나 "럭셔리한 제주도여행"을 계획했다가 어쩌다보니 강정마을, 한진중공업, 봉화마을을 돌았다.

남편 음화(곽경택·37·프로그래머)씨와 아내 심장(문환이·36·작가)씨를 정송이 기자가 만났다. 특별한 신혼여행의 내막을 캐기 위해. 그들은 "신혼여행을 가니 거기에 투쟁의 현장이 있었다"고 쿨하게 털어놨다.

정송이(이하 정) : "두 분은 어떻게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나?"
심장(이하 심) : "2008년 5월부터 시청으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나갔다. 8월 15일 광화문에서 촛불이 밀린 후에 동네에서 촛불을 들었다. 외로워서 동지를 찾아 동네로 오니 송파촛불이 있더라. 매일매일 시청, 광화문으로 나가서 새벽 3시까지 촛불 들고 집에 들어와서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펑펑 울던 때다. 부모님도 집회 나가지 말라고 하시고 주변에 말 안 통하는 사람들만 있던 때인데 동네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니 얼마나 행복해? 매일 술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가족같이 친해졌다.

그런 가운데 자꾸 사람들이 우리 둘을 연결시키더라. 처녀총각이니까. 10월에 춘천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에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남편과 처음 이야기를 나눴는데 말이 잘 통하더라. 그래서 내가 약간 반했지. 일정 끝나고 집쪽에 와서 뒤풀이를 했는데 내가 남편에게 "집에 안 데려다 주면 안 간다"고 하니 남편이 나를 데려다 줬다. 집에 다 와서는 "뽀뽀를 안 해주면 집에 안 들어간다"고 했더니 날름 하더라. 이후 3~4개월 비밀연애를 했다. 송파촛불에서 눈치챌만한 사람들은 다 눈치 챘겠지만."

음화(이하 음) : "조직 내에서는 연애를 하지 말자는 게 원칙이었는데, 너무 순식간에 제안이 들어오다보니..."
: "촛불에서 만났기 때문에 서로의 조건을 따지고 재는 관계가 처음부터 아니었다. 말도 잘 통하고 가치관도 같았고."
: "어쨌든 당시 취미(시위)가 맞았다는 것이지. 그땐 촛불집회를 매주 2회씩 했다. 그날은 당연히 보는 거고 그게 데이트였지. 그래서 촛불 열심히 나왔다.(웃음) 거의 매일 촛불들이 모여 막걸리 먹고, 명박이 욕하고. 그 와중에 살짝 나와서 둘이 몰래 데이트하고 다시 들어가고. 그러다가 돈 많이 들어서 연애 그만두고 결혼했다.(웃음)"

: "신혼여행을 기획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해 달라."
: "옛날부터 국내 여행도 제대로 못해봤으니 신혼여행은 해외 말고 제주도로 가자는 생각이 있었다."
: "결혼을 준비할 때 사람들이 중점을 두는 게 있더라. 누구는 결혼식 자체에, 혹자는 신혼여행에, 또는 반지식으로. 우리는 특별히 중점을 둔 건 아닌데 빤한 해외여행보다는 "좀 편하고 럭셔리하게" 제주도로 다녀오자고 했다. 실제로 제주도가 별로 싸지도 않지만 우리가 다시는 제주도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숙소도 풀빌라에, 차도 지붕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걸로 빌리고. '가깝게 가는 대신 남들보다 낫게 다녀오자' 였다.

근데 어쩌다보니 강정이 있었던 거지. 강정을 가기 위해 제주를 간 것은 아니지만, 근데 제주에 가기로 했으니 강정을 가야지. 처음엔 한진은 생각도 안 했다. 강정에 갔다가 봉화에 들러서 오자고 했다. 근데 집중투쟁 때 가는 것도 좋지만 "우리 여기로 신혼여행 왔어요. 힘내세요"라고 하는 것이 그분들에게 더 힘이 될 것 같더라. 우리도 평생 한 번밖에 해보지 못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나누면 배가 된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많이 감동을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딱 그 경우였다. 우리 기억에 오래 남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기억해줄만한 신혼여행일 거란 생각을 했다."

: "우리가 가려는 장소에 마침 투쟁이 있었던 게지. 한진도 마찬가지. 제주에서 비행기타고 봉화에 가느니 배타고 부산 거처 가자고 계획을 짜다보니 부산에는 한진이 있었고."

강정마을에서 합동미사에 참석했던 신혼부부
 강정마을에서 합동미사에 참석했던 신혼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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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장소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을 것 같은데..."
: "강정에서는 400여 명의 신부님들이 합동 미사를 하시는 걸 봤다. 밤에 진행한 미사여서 신부님들 입장 길을 따라서 깜깜한 밤길을 밝히는 촛불들을 깔아놨더라."
: "촛불이 정렬돼 있지 않아서 내가 정렬해 놨지. 그 길을 신부님들이 수단(가톨릭 제의)을 입고 입장을 하시는데 웅장하고 경건하면서 멋있었다. 장관이었다. 내가 '닦은'(강조) 길이어서 특히 뿌듯했다."
: "나는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영적인 뭔가를 해야 하는 신부님들에게 세속적인 것을 신경 쓰게 하는 시대와 명박이 때문에 짜증이 났다. 성직자가 제자리에 있지 못하는 현실에 신경질 났다. 왜 내가 신혼여행까지 와서 이런 모습을 봐야 하나? 제주도에 가기로 했는데 강정에 안 갈 수도 없고. 강정이라는 피해 장소를 만든 이명박이 미웠다. 우리를 맺어준 사람이라서 고마워해야하기도 하는데...(웃음) 다행인 것은 강정이 외로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쌀과 라면을 사갖고 갔는데. 베이스캠프에서 우리가 끓여먹고 나왔네.(웃음)"
: "한진에서의 일도 잊을 수 없다."
: "한진은 그때 처음 갔다. 지도상에는 멀어 보이지 않아 아침에 부산항에 도착해서 돼지국밥을 먹고 슬슬 걸어갔더니 40분 걸렸다. '분노하라, 진숙 85호' 티셔츠를 커플티로 입고 갔다. 둘이 한진 앞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크레인만 쳐다보면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근데 안 나와. 한진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은 지나가면서 '얘네 뭐야?'라는 듯 냉담하고. 적대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기도 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남편이 김 지도에게 트윗으로 맨션을 날렸다. "신혼여행중에 강정마을을 거쳐 지도님께 왔어요. 부디 건강하게 내려오시길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냉큼 답장이 왔다. "귀한 걸음 해주셔서 고마워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출발에 감동의 박수를 보냅니다. 달콤하시길~^^" 사실 답장이 온 지는 나중에 알았다.

근데 한참 크레인을 보다보니 사진에서 봤던 그 각도가 아니더라. 각도를 달리해서 다른 곳으로 갔더니 김 지도가 누군가를 찾고 있더라. 우리를 발견한 김 지도가 손을 막 흔드는데. 우리는 함께 손을 흔들지 못했다. 마음이 무겁고 미안해지고 먹먹해지고... 저기서 300일 가까이 고생하고 있는 사람에게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 수는 없었다. 근데 그 양반은 막 행복해.

조합원들도 누워있어서 가야겠다고 돌아서는데 어떤 작업복을 입은 분이 다가오더니 김 지도가 통화하고 싶다더라며 전화를 연결시켜주더라. 우리 둘 다 수줍어하다가 남편이 받았다. 김 지도의 힘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신혼여행인데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는지…" 등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건강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통화를 끝냈다. 그 다음부터 남편이 방방 뜨기 시작하는데, 연예인이랑 통화한 것같이 좋아하더라. 자제를 못 시키겠더라고."

: "유명인이랑 통화해서 좋았다. 또 서로 힘 받은 통화를 한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봉화마을에서 음화, 심장씨.
 봉화마을에서 음화, 심장씨.
ⓒ 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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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마을은 어땠나?"
: "나는 노빠다. 노무현을 남자로 좋아했어. 노무현이 했던 일 중에 공무원시험에서 역사과목 없앤 것 말고는 반대해 본 적이 없다. 편지도 많이 쓰고. 그랬더니 청와대에서 연하장도 오더라. 그런 양반이 죽어버린 거다. 촛불 들고 나서 채 1년이 되지 않아서. 1,2주기에 가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너무 슬플 것 같아서 가지 않았다. 이번엔 내 신혼여행이니까 좀 슬픔이 덜하지 않을까 해서 갔다. 가보니 너무 소박하고 예쁜 마을, 예쁜 묘지였다."
: "마을 분위기가 무거울 거라고 겁먹고 갔는데, 그렇지 않고 밝았다. 마을을 곱게 꾸미고, 농사짓고. 마을이 잘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다행이다, 싶었다. 노무현 아저씨가 없어도 마을 사람들이 그 뜻, 그 마음을 이어서 봉하마을을 잘 가꾸면서 살고 있구나, 안심됐다."

: "앞으로도 이런 여행을 할 계획인지."
: "여행까지는 아니지만 진보적 데이트는 계속할 거다. 나꼼수 콘서트에 다녀왔고, 다음 주에는 사이(유기농 포크 가수) 콘서트 및 홍대 놀이터 바자회를 가기로 했다. 그 다음 주에엔 몽당연필의 권해효 만나기로 했고. 이런 행사들을 함께 다니면서 즐기기도 하고 사회 참여도 하면서 기부도 하고 있다."
: "이번 신혼여행 같은 여행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투쟁현장에 찾아간다는 건 투쟁현장이 있어야 하고 아픔이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이 땅에서 이런 가슴 아픈 투쟁은 있으면 안 된다. 이제는 평택에 가야할 것 같으니, 원... 투쟁현장에 카드빚 막듯 이리 집중했다, 저리 집중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행복한 여행을 다녔으면 좋겠는데..."

음과 심 : "천국이 아니고서야 이 세상의 고통과 투쟁이 계속되는 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런 곳을 가지 않을까. 굳이 투쟁 현장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그 지역과 장소의 불합리함이 보이게 마련이다. 아프리카에 간다고 해보자. 우리는 이미 그곳의 다이아몬드가 아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다(블러드 다이아몬드)는 것을 안다. 거기 가서도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이지 말라고 울고불고 소리치겠지. 물론 제주에 머물던 4박 5일동안 강정에만 간 것은 아니었다. 강정에는 하룻밤만 방문했고 한진에서도 그리 오래 있지 않았다. 놀자고 떠난 여행에서 그런 곳을 간 것은 투쟁의 현장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외면할 수가 없어서였다."
: "청첩장에 "번듯하게는 살지 못하지만 반듯하게는 살겠습니다"라고 썼다. 우리의 신혼여행은 반듯하기보다는 번듯했던 게 문제다. 쉴 만큼 쉬면서 남들에게 칭찬 받기도 하고...(웃음)"
: "같은 꿈을 꾸는 사람과 항상 같이 얘기하고 함께하니 행복하다. 우리 둘의 행복이 우선이겠지만 다른 이의 행복도 고민하고 행동해서 다른 이와 함께 행복해지는 부부가 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월간 <노동세상> 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잘 찍은 쉼표 하나, #신혼여행, #강정, #한진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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