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가 19일 인도네시아 발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호주 양자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볼 인사를 나눈 뒤 이 대통령의 볼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닦아 주고 있다.
▲ "립스틱 닦아드릴께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가 19일 인도네시아 발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호주 양자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볼 인사를 나눈 뒤 이 대통령의 볼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닦아 주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농민과 소상공인의 피해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농업 피해를 우려하고 있으나 피해를 보상한다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농업이라고 세계 최고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FTA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에서 한 발언입니다. 한미FTA 비준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농업 분야에 대한 이 대통령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달 17일 76차 라디오·인터넷연설에서도 "농수산업과 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정부는 시설 현대화를 위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고 했고, 다음 날 정의화 국회 부의장과 황우여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소속 국회 지도부와 오찬간담회에서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발효되면 농촌 등에도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농촌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아직도 가족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속'이 뒤집어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모든 말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지만 농촌과 농업, 농민은 바람 앞에 놓인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대책 없는 '헛말'일 뿐입니다.

지난 2009년 5월 20일에는 경기도 안성시 한 농가에서 모내기를 하면서 "중국이 잘살면 우리 농업에 길이 얼마든지 열린다"면서 "중국 인구의 10%인 1억3000만 명이 우리보다 부자가 되면, 자국산은 농약을 뿌렸는지도 모르니까 안전한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황당한지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곡물 72%를 외국에서 수입합니다. 식량자급률은 28%입니다.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곡물 중 쌀을 빼면 자급률은 5%밖에 안 됩니다. 먹을거리 95%를 다른 나라 농민들에게 맡겼습니다.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중국 사람 1억300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모릅니다.

해마다 대책 없는 '헛말'만 되풀이

이런 생각을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미FTA를 날치기 강행처리하자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다행은 대통령과 대기업 같은 이들에게는 맞는 말입니다. 농촌과 농민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대통령은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농민의 아들이 속이 뒤집어지는 이유입니다.

더 큰 문제는 쌀 재배면적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쌀 재배면적은 지난 2006년 95만5000ha, 2007년 95만250ha, 2008년 93만6000ha, 2010년 89만2000ha, 올해는 85만4000ha 등으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10년 전인 2001년 108만 3125ha에 비하면 무려 23만ha가 줄어들었습니다. 

쌀 재배면적이 줄어들면 아무리 경쟁력을 갖추어도 쌀 생산량을 늘릴 수 없습니다. G20정상회의 한 번의 경제효과가 450조 원이라고 뻥튀기를 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땅은 뻥튀기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2008~2009년 쌀풍작과 북한 쌀지원 중단 등으로 쌀값이 폭락하자 2010년 쌀 감산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지난 23일 <농민신문>은 "논에 벼 대신 다른 소득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1㏊당 300만 원을 지원하는 '논 소득기반 다양화 사업'을 8975㏊에서 시범실시했고 올해는 4만㏊로 늘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정부는 "'벼 재배면적을 4만㏊ 줄이면 쌀을 20만t 격리하는 조치보다 비용이 4000억 원 절감되고 타작물 생산 증가 효과도 3000억 원에 달하는 등 모두 7000억 원의 직간접적인 효과가 발생한다'며 '특히 농가에겐 1200억 원의 보조금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득기회가 발생하는 등 일거다득의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고 <농민신문>은 전했습니다.

결국 농민들은 돈 안 되는 쌀농사보다는 대파와 배추, 시설채소를 심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한 포기 1만5000원씩 하던 배추가 올해는 한 포기에 1000원밖에 하지 않습니다. 농민들은 이래저래 고통입니다.

자동차 팔아서 쌀 사먹으면 된다?

농민들이 한미FTA 비준 철회 집회에서 'MB영정'이 꽂힌 나락 위에 시너를 붓고 있다.
 농민들이 한미FTA 비준 철회 집회에서 'MB영정'이 꽂힌 나락 위에 시너를 붓고 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올해처럼 이상기후가 이어지면 쌀 생산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쌀 생산량이 약 422만 톤입니다. 내년도 수요량이 418만 톤으로 당장은 위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내년에도 이상기후가 이어지면 부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자동차 산업 등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과 호주, 그리고 러시아 등에서 가뭄과 홍수로 인하여 흉년이 들어 곡물 생산량이 3% 줄면 곡물가격은 그 열 배인 30% 오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살 곡물이 없습니다.

한미FTA로 가장 큰 피혜를 입는 농업분야는 돼지고기입니다. 양돈협회는 미국산 돼지고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전국 7200여 양돈 농가 중 30%인 2200개 농가가 폐업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관세 완전 철폐가 조금 늦춰진 과일 농가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결국 한미FTA는 농업이 죽음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이 대통령은 2009년 5월 20일 "여러분이 기대할 것은 10년 안에 (1인당 GDP가) 3만 불 넘어 우리가 잘살게 되면 건강식이 더 잘 팔리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라면서 "지금이야 싼 걸 먹지만, 외국 쇠고기 값이 싸도 우리 한우와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소득이 더 오르면 한우 값이 비싸도 사먹는다"고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싼 걸 먹지만 나중에는 한우를 먹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구제역 이후 한우 값은 폭락했습니다. 비육우 750kg 한 마리가 800만 원 하던 것이 550만 원 선으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사료 값은 25kg 1포가 9000원에서 4000원이 오른 1만3000원입니다. 사료 값은 오르고, 한우 값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정부 보조를 더 받느냐, 보상받느냐 이런 사고에 젖어서는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6월 21일 '농어촌의 새로운 희망을 선도하는 전국 농수산 공직자 격려오찬')는 한심한 말만 하고 있습니다. 통곡할 일입니다. 이 대통령 입에서 농업 관련 발언이 나올 때마다 속 뒤집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70대가 농사짓는 농촌에 국제 경쟁력 갖추라니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지난 9일 발표한 정책자료에 따르면, '한미FTA농업피해보전대책'은 아무것도 없는 빈 쭉정이 대책입니다. 22조50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농업대책에 지원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꼼수이자, 기만이라고 전농은 반박했습니다. 특히 직접 피해보전액은 겨우 1조3000억 원에 불과하고 기존사업과 중복되는 사업이 한미FTA 보완대책으로 탈바꿈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미FTA 농어업분야 피해보전대책과 기존대책 비교
 한미FTA 농어업분야 피해보전대책과 기존대책 비교
ⓒ 전농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며 "농업이라고 세계 최고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는 농업은 대부분 생계형입니다. 특히 이미 농촌은 초고령화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사라져버린 곳에 60대는 젊은 사람입니다. 70대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2011년 고추·참깨 생산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추 생산량은 7만7100톤으로 지난해 9만5400톤보다 19.2%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농촌인구가 고령화되면서 타작물에 비해 노동투입시간이 많은 고추 재배면적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라고 통계청은 밝혔습니다.

고추에 한정된 것이지만 정부도 고령화가 농촌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30일 통계청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농림어가 인구의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1.1%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고령화율(11.3%)보다 2.8배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어떻게 미국 농민들과 경쟁을 해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까.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대통령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농민들도 마냥 정부에 손만 내밀면 안 됩니다. 젊은 농민들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개방은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농민들 속 뒤집는 말만 하지 말고 실제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더 이상 인내를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농민이 대기업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태그:#한미FTA, #이명박, #농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