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0월 말 남이섬에서 사부인 송샘이 찍은 사진
▲ 환상의 숲 10월 말 남이섬에서 사부인 송샘이 찍은 사진
ⓒ 송두현

관련사진보기


그를 알게 된지 1년 정도 됐다. 그로 인해 한 해를 행복하게 지냈다. 그는 나의 DSLR 사부, 송두현 선생님(송샘)이다.

내가 사진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대학교 때부터다. 벌써 한참됐다. 무려 30여 년 전이다. 나는 홀로 여행을 가도 카메라는 늘 들고 다녔다. 옛날에는 돈이 없어 렌즈도 바꿀 수 없는 자동카메라를 들고 다니곤 했다. 그래도 열심히 찍어댔다. 아이를 데리고 유적지를 가든, 놀이시설을 가든 항상 셔터를 눌렀다.

그러다 요새 많이 쓴다는 DSLR로 바꾸게 됐다. 한 2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당시 DSLR 중에서 제일 저렴한 Canon 450D을 구입했다. 아이들 다 키우고 이제는 그동안 꿈꿔왔던 나만의 취미생활을 누려보고 싶었다. 사실 사 놓고도 1년은 묵혀뒀다. 사실 매뉴얼대로 찍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한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사진 연수가 있는데 같이 들어보지 않을래? 1박 2일의 여행도 있다던데?"
"오, 좋은데! 알았어."
"그럼 내가 네 것까지 신청한다."

결국, 지난 1월 사진 연수를 받았다. 그렇게 송샘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매뉴얼을 읽을 때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니, 연수를 받으면서 어렴풋이나마 '아하'하고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최소한 P모드, M모드, A모드, S모드가 뭔지는 알게 됐다. 아직도 생소한 부분이 많긴 하지만…. ev값이니, 노출을 높여야 하느니, 셔터 스피드를 낮춰야 하느니 등의 말을 들을 때는 이해가 가는 듯하면서도, 막상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를 때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래도 송샘은 열성을 다해 강의를 이끌었다.

단풍과 구리시민공원의 야간 코스코스를 사부인 송샘이 찍은 사진
▲ 가을 사진 단풍과 구리시민공원의 야간 코스코스를 사부인 송샘이 찍은 사진
ⓒ 송두현

관련사진보기


연수를 받던 지난 1월, 덕유산 향적봉으로의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출사 여행이었다. 하얀 눈 속에서 셔터를 눌러대며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설렘을 느꼈다. 물론 초보니 사진은 건질 게 별로 없었지만, 렌즈를 바꿔가며 찍어본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송샘은 지극히 열심이었다. 나지막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와 설명도 어찌 그리 잘하시는지….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있어 정말 나무랄 것이 없었다. 카메라에 대한 설명은 내가 모르는 부분인데다가 기계에 관한 것이라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단지 용어를 몰라 좀 답답했다는 것 외에는….

송샘은 배우는 우리보다 더 열정적이고, 하나를 물어보면 서너 가지를 가르쳐줬다. 5일의 연수는 금방 끝났다. 그리고 봄이 돼 내가 근무하는 학교 여기저기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나는 꽃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재밌고 즐거운 면도 있지만, 카메라는 참 무거웠다. 'DSLR 사진 찍기는 여성이 가질 취미로는 좀 버겁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한두 시간 찍고 나면 팔이 뻐근했다. 훗날, 나이를 지긋이 먹고 나서도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당시 렌즈 구입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다시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저렴한 접사 렌즈를 샀다. 좋은 것으로 사기엔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기 때문이다.

노란 산수유 꽃을 담기 위해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찍어보고, 화단의 자그마한 '꽃마리(정말 깨알만한 아주 작은 꽃)'를 찍기 위해 땅바닥에 주저앉다시피하며 렌즈를 들이대 찍었다.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흔해 빠진,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들꽃으로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사진을 찍지 않고 걸어다기만 했다면 전혀 눈에 띄지 않을 꽃이었다. 그러나 렌즈를 통해 다시 살아난 꽃은 정말 예뻤다. '세상에 이런 꽃도 있었나' 할 정도로 작은 꽃이었다. 보이는 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었구나.'

사진을 찍어서 카페에 올리면 송샘은 꼭 댓글을 달아줬고 평도 해줬다. 그런 송샘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 연수 중에 이런 얘기도 해줬다. 처음 입사 했을 때 선배가 해준 얘기가 오늘의 그를 있게 해줬다고 했다.

"사회 첫 출발을 했는데 직업 외에 자신만의 특기나 흥미를 가져봐. 자기만의 특기가 있어야지. 교직에 있는 긴 시간 동안 뭔가 하나를 잡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거야."

그래서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는 사진을 가르쳐 주는 곳이 별로 없어서 사진작가들이 운영하는 학원에 다녔단다. 그들은 생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인지라 직업이 있으면서 취미 삼아 사진 찍는 송샘이 달갑지 않았는지 친절하지도 않고, 잘 가르쳐 주지도 않았단다. 어쩌다 한 가지 가르쳐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가르쳐 준 것을 잘 못하면 "그것도 못해?"라며 핀잔을 줬다고 한다.

그는 사진을 참 어렵게 배웠다고 한다. 결국, 스스로 공부하고 사진에 관한 책을 읽고, 많이 찍어보면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게 됐다. 나중에는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사진을 찍게 됐다고 한다. 이제는 직업으로 삼아도 될 상황인데, 아직도 열심이다.

그는 사진 대회 심사위원 활동도 한다. 그는 일전에 자신이 속상했던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전에 어떤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갔는데, 다른 사람들이 송샘을 초등학교 교사라고 하대했다고 한다. 실력으로 상대를 봐야지, 직업이 무슨 관계가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런지 우리 같은 제자(?)들에게 더 열정을 쏟는 듯하다. 자신과 같은 어려움이나 설움을 겪지 않도록 연수 기회를 많이 만들고, 그를 필요로 하고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스크랩 방지'를 설정해 놓지도 않는다. 누구든 내려받을 수 있게 해놨다. 얼마든지 배우고 익히라고. 나아가 자신을 뛰어넘으라고. 송샘 덕분에 사진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됐다. 정기적인 출사도, 번개 출사도 열일 제껴두고 따라다녔다. 송샘은 잘하지도 못하면서 그냥 열심히 따라만 다니는 나를 아껴줬고,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나를 칭찬해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송샘의 수제자, 애제자가 됐다.

출사를 따라다니면서 송샘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사진 외에도 배운 게 많았다.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있다면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보이는 것 뒤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마음의 눈을 열어줬다.

시계방향으로  왼쪽 위 사진은 창녕 우포늪 저녁 노을 무렵의 억새, 오른쪽위사진은 구리시민공원의 코스모스, 아래는 주산지의 가을 모습들.
▲ 가을 사진 시계방향으로 왼쪽 위 사진은 창녕 우포늪 저녁 노을 무렵의 억새, 오른쪽위사진은 구리시민공원의 코스모스, 아래는 주산지의 가을 모습들.
ⓒ 송진숙

관련사진보기


물론 아직도 초보라 쉽게 보이진 않지만, 적어도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최대한 노력하게 됐다.

"나만의 사진을 찍으세요. 똑같은 꽃을 보고도 꽃만 예쁘게 찍을 것이 아니라, 나만의 특징을 표현하세요. 예쁘게만 찍을 게 아닙니다. 그리고 베푸세요. 카메라와 렌즈만 좋다고 해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송샘같이 세상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사람이 있어 앞으로 세상은 좀 더 살만할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됐다.


태그:#사진, #여백, #아름다움, #비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