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계절이 가을과 겨울 사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을이 가는 아쉬움과 겨울이 빨리 왔으면 하는 기대감 속에서 그렇게 세월에 순응해가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참으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문뜩하게 됩니다.

처음, '내가 뽑은 올해의 인물' 기사공모를 접했을 때 전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올해라는 단어를 빼면 여러사람을 놓고 고민을 했을테지만, 적어도 올해는 '나의 아내' 딱 한 사람이었습니다.

공처가는 절대 아니고 애처가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부끄러운, 보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대한민국 40대 후반 가장의 잘못된 전형인 제가 많은 사람이 보는 지면을 통해서 이런 고백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합니다. 당사자인 아내가 보게 되면 비웃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진실입니다.      

23살 때부터 나와 함께 걸어온 아내... "무뚝뚝한 남편이어서 미안해요"

스물 셋 어린나이에 보잘 것 없는 저에게 시집와 순탄하지 않은 여정을 지금껏 함께 해온 아내. 숱한 파고를 넘나들고 많은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아내는 단 한번도 선을 넘어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적반하장으로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해서 아내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전 여태껏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표현 한번 제대로 해준 적이 없습니다. 표현 안해도 알 거라고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많이 미안합니다.

특히나 올해 같은 경우는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로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가정과 직장까지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이끌어 온 아내입니다. 수능 당일, 아내가 준 감동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아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가슴이 뜨거워지고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느 엄마들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온갖 정성을 다해 수험생용 도시락을 싸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지만 물은 뜨거우니 천천히 마시라는 둥 밥, 국, 반찬 등 각각에 작은 메모지를 써붙인 것을 보니 이게 바로 아빠들이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구나 싶어 감동했습니다. 

왜 19년을 함께 하면서 여태껏 아내의 참 모습을 들여다 보려 노력하지 않았는지 한심할 따름입니다. 아이 또한, 그런 엄마의 사랑을 먹고 바르게 자라줄 거라 믿습니다.

수능이란 대사를 치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의 성적이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며칠 동안 허탈함에 빠져 있던 아내가 다시금 기운을 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역시 내 아내구나'하는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합니다.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지만 살면서 지금보다는 더 잘할 겁니다. 늘 마음만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던 이기적인 모습을 버리고 행동과 말로 표현할 겁니다. 지금 이 글은 아내에게 진심을 담아 전하는 사랑고백이자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이젠 속이 너무도 후련합니다. 오늘 저녁엔 아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기분 좋은 밀어들을 속삭여야 겠습니다.

☞ [기사 공모] '내가 뽑은 올해의 인물' 자세히 보기

덧붙이는 글 | '내가 뽑은 올해의 인물' 응모글입니다.



태그:#봉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는 즐거움도 좋지만 보여주는 즐거움도 좋을 것 같아서 시작합니다. 재주가 없으니 그냥 느낀대로 생각나는대로 쓸 겁니다. 언제까지 써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무모하지만 덤벼들기로 했습니다. 첫글을 기다리는 설레임. 쓰릴있어 좋군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