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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19일)에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아이가 가정통신문을 가져와서 표시를 해달라고 했다. 내용을 보니 주5일제 찬성여부이다. 그걸 본 순간 기가 막혔다.

학교에서 주5일 수업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온 가정통신문입니다. 이런 가정통신문은 주로 수익자부담 체험학습을 가려고 할 때나 쓰이는 내용입니다. 주5일제 전면"자율"도입 꼼수에 전국적인 사안을 개개학부모에게 묻는 이런 황당한 통신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주5일 수업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온 가정통신문입니다. 이런 가정통신문은 주로 수익자부담 체험학습을 가려고 할 때나 쓰이는 내용입니다. 주5일제 전면"자율"도입 꼼수에 전국적인 사안을 개개학부모에게 묻는 이런 황당한 통신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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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이걸 찬반 표시하게 하다니?"

이게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아이는 빨리 표시해 달라고 재촉한다.

"넌 토요일에 학교 나가는 게 좋아? 안 나가는 게 좋아?"
"안 나가는 게 좋아."

일단 찬성 표시를 해서 보낸 다음에 다른 학부모에게도 물어보았다. 당연히 내년부터 주5일 수업을 하는 줄 알았다가 이번 통신문 때문에 황당하다고 했다.

"아니, 반대하는 사람 많으면 우리 학교만 안하는 건가요? (2학기) 시범학교 할 때도 반대가 많았다던데 "
"글쎄요, 저도 학교에 있어 교과부가 책임전가 하는 건 알았지만, 안할 수 있다는 얘기는 못들어 봤는데요."

주5일 수업이 무슨 체험학습 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학부모에게 이런 것까지 요구하게 되었을까? 이건 바로 교과부가 주5일 수업제를 이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발뺌하는 교과부, 학교로 책임 전가하는 시도교육청

교과부는 지난 6월에 주5일 수업 전면도입을 발표하면서 수업일수는 현재 204일 이상에서 190일 이상으로 바꾼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수업시수는 줄이지 않고 전면도입 앞에 "자율"을 붙였다. 즉 "자율" 도입이란 초중등교육법에 의해 주5일 수업제를 하면서 실시 여부는 학교에서 결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말이 안된다.

교과부에서 주5일수업을 시행하기 위해 제시한 역할분담과 정책과제들입니다. 이걸 보면 분명 주5일수업을 하겠다는 이야기인데, 지금 진행되는 과정은 정말 주5일수업을 하려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교과부는 제도적기반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책임을 전가하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교과부에서 주5일수업을 시행하기 위해 제시한 역할분담과 정책과제들입니다. 이걸 보면 분명 주5일수업을 하겠다는 이야기인데, 지금 진행되는 과정은 정말 주5일수업을 하려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교과부는 제도적기반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책임을 전가하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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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1000명이상 일하는 기업부터 주5일 노동제를 실시해왔고, 이제 전면 실시에 들어갔지만, 지금까지 회사에서 찬반투표를 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 학교에서도 2005년 월1회 토요휴업일, 2006년 월2회 토요휴업을 해왔는데 학부모 투표를 거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전면실시에 들어가는 마당에 갑자기 왜 설문조사가 등장해야 하는가?

게다가 6월에 발표할 때는 모두 실시하되 결정만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치는 것처럼 하더니 10월에 개정된 법안을 보면 주5일제 '실시 안함', '월2회 주5일제', '주5일제' 시행 세 가지로 내용을 바꿔놓았다. 수업일수도 190일 이상이라더니 205일이상, 220일 이상 가지각색이다. 그렇다면 이건 전면도입이 아니지 않는가?

시도교육청에서는 학교마다 이런 양식을 보내 신청을 하라고 하자, 학교는 학부모에게 신청여부를 묻고 있습니다.
 시도교육청에서는 학교마다 이런 양식을 보내 신청을 하라고 하자, 학교는 학부모에게 신청여부를 묻고 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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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가 이렇게 나오는 배경에는 수년간 주5일제를 대비했다면서 저소득층을 비롯해 토요일에 방치된 학생들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거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교육비 경감"을 내세웠기에 "사교육비 증가" 발언에 후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마련해야 하지 않는가?

시도교육청의 행태도 문제다. 시도교육청은 누구보다 이런 식으로는 주5일제가 오히려 학생들의 교육이나 학교를 후퇴시킨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면 교과부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아도 문제 많은 2009개정교육과정을 비롯해 수업시수를 줄이는 등의 교육과정 개편을 하라고 요구하면서 교육감권한으로라도 주5일제를 전면 도입해야 하지 않는가? 명색이 지역주민들에 의해 뽑힌 자치교육감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뒷말은 할지언정 교과부에 정면대결하지 않고 슬그머니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러자 힘없는 학교는 주5일제를 구걸하듯이 학부모들에게 선택하라고 한다. 결국 문제 생기면 선택한 학부모와 학생이 책임지라는 건가? 이러니 중등에서는 학교에서 알아서 주5일제를 안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관련기사: 주5일 수업 앞두고 교육현장은 시끌)

2009개정교육과정은 주5일 수업 교육과정이 아니다?

교과부가 2009개정교육과정을 주5일제 교육과정이라고 선전을 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교과부가 2009개정교육과정을 주5일제 교육과정이라고 말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초등 3-6학년 수업시간을 1시간씩 줄인 것이다.(3학년은 국어, 4-6학년은 창의적 체험활동) 그런데 이건 원래 주5일제로 만들다가 포기한 2007개정교육과정에다가 이명박 정부가 어륀지정책으로 3-6학년 영어시간을 주당 1시간씩 늘려놓은 걸 다시 원위치 시켰을 뿐이다. 그것도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가장 자랑하는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을 축소시켜서.

여기에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하더라도 학생들의 학습부담은 전혀 줄지 않는다. 공부할 날은 주는 데 공부시간은 줄이지 말라니 토요일 수업이 그대로 평일로 전가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초등학생이 발달 수준에 맞지 않는 어려운 내용을 공부하느라 힘든데 전학년 수업시간이 5-7교시로 길어지니 학생과 교사가 녹초가 된다. (관련기사: 초등생도 일주일 절반은 7교시, 최악 시간표 나오나?)과연 이런 학교가 핀란드같은 "하고 싶은 공부, 가고 싶은 학교"(2009개정교육과정의 모토)의 모습인가?  

창의적체험활동 사라지고 교과만 살아남은 삭막한 시간표

교과부에서 제시한 시간표를 보자. 아래 시간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주5일수업연구자료에서 나온 것인데, 교과부의 주5일제가 발표된 뒤에 연구한 자료이다. 교과부가 정책연구과제에서 수업시수편성방안을 제시한다고 해서 나온 자료이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 자료를 보면서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한다.

이걸 보면 교과수업시간은 겨우 만들어내는 데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창의인성 교육방안이라고 자랑하는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이 사라졌다. 이대로 하면 주당 2-3시간이나 부족하다. 부족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은 학교행사나 체험학습, 학교특색활동을 해서 시간을 보충하라고 한다. 평일에는 교과 공부만 줄줄이 하고 가끔 행사 때나 숨을 쉬라는 것인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업일수 190일을 기준으로 만든 초등시간표예시안입니다. 수업시수를 줄이지 않다보니 평소에는 교과수업만 하고 금요일 6교시만 창의적체험활동시간, 그것도 동아리활동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예시안을 짰습니다. 1학년은 1시간도 넣기가 어려워 금요일 3, 4교시에 격주로 번갈아가면서 운영하게 되어있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업일수 190일을 기준으로 만든 초등시간표예시안입니다. 수업시수를 줄이지 않다보니 평소에는 교과수업만 하고 금요일 6교시만 창의적체험활동시간, 그것도 동아리활동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예시안을 짰습니다. 1학년은 1시간도 넣기가 어려워 금요일 3, 4교시에 격주로 번갈아가면서 운영하게 되어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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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은 2009개정교육과정이 아니라 1992년도에 만들어진 6차교육과정의 특별활동운영방식과 별 차이 없다. 주5일제를 맞아 새로운 교육모델을 만들었다는 것이 20년 전으로 후퇴하는 셈이다. 이건 내년만이 아니라 새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수년 간 지속되는 현상이다. 이렇게 엉터리같은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하고도 교과부는 여전히 앵무새처럼 2009개정교육과정이 주5일제에 적합한 교육과정이라고 발표하고 있으니 학교현장은 답답할 따름이다.

수업시수 줄이고 교육과정 전면 개편해야

지금 상황을 보면 주5일 수업은 도입취지와 달리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삶의 질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학습부담이나 교육과정을 후퇴시키는 등 도입 취지와 반대로 가고 있다. 한마디로 전혀 먹지도 못할 감을 던져준 셈이다.

그럼 주5일 수업을 제대로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초중고 수업시수를 주5일 수업이 가능하도록 줄여야 한다.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의 공동연구로 학년별, 급별 교육내용검토를 거쳐 재구성방안을 마련하면 교사차원에서 이걸 바탕으로 수업을 해나갈 수가 있다. 학기말쯤 가면 진도가 거의 끝나기 때문에 시수를 줄여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교육내용이 조절되면 학생들이 훨씬 다양하고 발달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2009개정교육과정을 다시 수정고시(내용을 바꿔 다시 고시하는 것)해야 한다. 어차피 수업시수를 줄이려면 교육과정편제를 손봐야 한다. 또 2009개정교육과정(총론)은 도입 당시에도 졸속개정으로 비판이 많았고 올해 적용과정에서도 국영수 몰입교육이 심화되어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8월에 고시된 2009개정교육과정에 의한 교과교육과정(2013년부터 시행예정)은 자유민주주의논쟁과 5․ 18 민주화운동 삭제에 따른 논란, 중학교 3년치 교과서를 6개월간 만들어야 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폐지주장이 높다.

셋째, 학교에 편중된 돌봄교실, 방과후교육을 지역사회로 확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지금처럼 주5일수업이 시행된다면 교사와 학생 피로도가 높고 오후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방과후 교육활동도 하기 어렵다. 사회 전반이 주5일제를 하는데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학교로 불러들일 필요도 없다. 특히 도입 당시부터 지역에 기반을 잡지 않고 학교를 이용해 활동한 각종 청소년단체는 학교에서 폐지하고 지역에서 터를 잡아야 한다. 

또 이 기회에 지역사회에서 지역아동센터를 확대하고 지역주민들이 활동할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 벌써 일부  지역자치단체들은 주5일제수업에 맞춰 교원단체등에도 적극적인 제안을 하거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 문화예술체육 인프라를 활용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등 고용정책측면에서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넷째, 교과부와 정부는 주5일 수업제 도입에 맞춰 우리 나라 모든 국민이 주5일 근무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2004년부터 주5일제가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늘 사각지대는 있어왔다. 학교에서 당분간 돌봄교실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주5일 근무와 무관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노동시간 단축 및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데 앞으로도 이들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교과부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으로 수 년만에 시행되는 주5일 수업제가 학교마다 지역마다 변형되고 왜곡된 모습이 아니라 전면도입되어 우리 사회를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위에 제시된 시간표는 현재 초등학교 상황과도 맞지 않고, 주당수업시간계산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방법입니다. 5,6 학년은 내년에 2009개정교육과정이 아니라 2007개정교육과정이기 때문에 저보다 수업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학교는 당장 내년도 교육과정에 골치를 앓고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는 다음 기사에서 다루겠습니다.



태그:#주5일수업, #2009개정교육과정, #돌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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