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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제일루라고 자랑하는 광한루
▲ 광한루 호남제일루라고 자랑하는 광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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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썼다. 글마다 광한루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광한루는 조선조 세종 원년인 1419년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천경계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에는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이라는 '항아'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 후 광한루는 1461년 부사 장의국에 의해 보수가 되고, 1582년에는 전라도 관찰사인 정철이 광한루를 크게 지었다. 현재의 광한루는 정유재란 당시 불에 타 사라진 것을, 인조 16년인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광한루원 전체는 명승 제33호로 지정이 되어 있지만, 광한루만은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었다.

광한루는 황희가 처음으로 짓고 광풍루라고 불렀다
▲ 광한루 광한루는 황희가 처음으로 짓고 광풍루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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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을 놓은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은 조선조 말에 놓은 것이다
▲ 계단 3단을 놓은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은 조선조 말에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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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제일루'라 명성을 얻은 광한루

'호남제일루', 광한루는 그런 명성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누각이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누각을 말한다. 밑으로는 사람이 서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높인 전각이다. 11월 5일 찾아간 광한루의 규모는 정면 5칸에 측면이 4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누마루 주변에는 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4면 모두 문을 달아 놓았는데, 여름에는 사방이 트이게끔 안쪽으로 걷어 올려 걸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한 누의 동쪽에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날개채인 부속건물을 들였다. 주위로는 툇마루와 난간을 둘렀고 안쪽은 온돌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뒷면 가운데 칸에 있는 계단은 조선 후기에 만든 것이다. 춘향전의 무대로도 널리 알려진 광한루. 앞으로는 넓은 인공 정원과 인공 섬, 그리고 정자들이 서 있어 한국 누정의 대표가 되는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 끝에는 계관이라는 편액이 보인다.
▲ 계단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 끝에는 계관이라는 편액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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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의 한편에 달린 부속건물. 온돌로 꾸몄다
▲ 날개채 누각의 한편에 달린 부속건물. 온돌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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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속건물의 아랫부분. 온돌에 불을 때기 위한 아궁이가 있었을 것이다
▲ 날개채 밑 부속건물의 아랫부분. 온돌에 불을 때기 위한 아궁이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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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 뒤집어 보기, 문화재 관리의 양면성

누구나 광한루를 가면 그 누정에 올라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을 한번쯤 흉내를 내보고 싶어한다. 한 때는 광한루를 개방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소중한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어째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존 관리는 공무원들의 사고에 의해서 멋대로 바뀌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출입을 시켰을 때는 문화재 보호가 되지 않았다는 것인지.

그렇게 문화재 관리를 통제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입장료 받고 광한루원에도 출입을 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정작 광한루원은 돈을 받고 출입을 시키고, 광한루는 보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출입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광한루의 주추는 특이하다. 밑에는 네모난 돌을 놓고 그 위에 막 다듬은 장초석을 올렸다. 다시 원형의 기둥을 놓고 누마루를 받치게 하였다. 일부는 장초석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동편에 붙여 지은 날개채는 온돌방이다. 그런데 그 밑에는 네모난 장초석으로 받쳐놓고 있다. 그 날개채 밑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러나 온돌방 밑에 있어야 할 아궁이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 돌담으로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동편 측면에서 본 광한루
▲ 측면 동편 측면에서 본 광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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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석을 이용한 주추는 특이하다
▲ 주추 정초석을 이용한 주추는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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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관리의 양면성을 본다. 한편에서 보존이라는 허울 아래 출입을 통제시키면서, 정작 온돌방의 밑 부분은 모두 돌담을 쌓아 막아버리다니. 이런 양면적인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하다. 아마도 저 막아버린 돌담 안에는 한편을 높게 싼 아궁이가 있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광한루, 월궁의 선녀인 항아가 노닐만 하다는 곳. 그리고 춘향전의 무대가 되었던 곳. 그 무대 주위를 맴돌다가 결국엔 위로 붙들어 맨 창틀만 찍고 말았다. 느껴야만 하는 문화재를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단절시키는 이런 행위, 이것만이 정말 보존일까? 제대로 된 문화재 정책이 아쉽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광한루, #보물, #남원, #광한루원, #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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