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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우리역사를 왜곡하는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한 이후 그 후유증이 날로 더해가고 있습니다. 집필위 책임자 사퇴에 이어 역사학계는 물론 5·18 관련단체와 진보진영에서 연일 이를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반면 '뉴라이트' 등 보수진영, 특히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에서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다시피 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보기 나름으로 이번 사태는 '역사전쟁'이라고도 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이미 보도된 대로 교과부는 지난 9일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새 역사교과서에서 이승만·박정희의 독재정치를 쏙 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 노력은 물론 광주 5·18 민주화운동도 삭제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반면 학계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고, 또 UN의 한국 승인과 관련해서는 역사적 사실(fact)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를 표기하기로 정했습니다. 일각에서 이번 사태를 '폭거'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집필기준 발표 후 이에 대한 비난과 논란이 증폭되자 관계기관의 책임자 한 분이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주인공은 이태진(68)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 위원장은 지난 11일 교과부 출입기자들을 만나 집필기준 마련 배경 등을 '해명'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 위원장의 해명은 수습은커녕 오히려 논란을 가중시킨 데다 중진 역사학자로 불리는 그 자신의 '허술함'마저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정희 독재 비호하려는 그의 모습, 측은하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이 11일 오후 정부중앙청사 교육과학기술부 기자실에서 새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5.18 민주항쟁 삭제 논란 등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이 11일 오후 정부중앙청사 교육과학기술부 기자실에서 새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5.18 민주항쟁 삭제 논란 등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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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위원장은 "박정희 정권도 처음부터 독재를 하진 않았다"라고 말해 이번 논쟁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의 이 발언은 기자들이 이전 집필기준에 포함돼 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대한 언급이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빠진 이유를 묻는 데 대한 답변을 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가 과연 중진 역사학자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궤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발언과 관련해 부연할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그의 발언 중에 '독재화'라는 낯선 표현이 들어간 것과 관련해 기자들이 "독재정권과 독재화는 의미가 뭐가 다르냐?"고 묻자 이 위원장은 "정권이 장기집권을 하려다 보니 독재화되는 거지, (박 정권이) 출발할 때부터 독재였던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독재화'라는 말도 생전 처음 듣는 말이거니와 애써 '박정희 독재'를 비호하려는 듯한 그를 보면서 측은하다 못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더군요.
 
백번 양보해서 이 위원장의 말대로 박정희가 처음에는 독재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칩시다. 그러나 박정희 일파는 5·16군사쿠데타 후 '혁명공약' 제6조 '원대복귀'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로 독재의 시작인 셈입니다. 박정희는 권좌에 눌러앉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혁명'에 동참한 군관학교 선후배들을 '반(反)혁명사건'으로 몰아 내쳤으며, 이후 장기집권을 위해 체육관 선거를 통한 유신헌법 제정 등 갖은 독재를 자행했습니다. 이는 천하가 다 아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도둑인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살인자인 사람도 없고, 또 독재자도 없습니다. 평생을 잘 살아온 사람도 한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사람을 죽이면 그 때부터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에 대한 평가(혹은 규정)는 결과로 말하는 것입니다. 박정희가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한국경제를 부흥시켰다고 해서 그가 '독재자'라는 평가마저도 비켜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는 역사서술의 기본이지요.
 
'자유민주주의' 논란의 진원지, 이태진 위원장
 
그리고 이번 집필기준에서 논란이 됐던 사안 가운데 하나는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라는 것입니다. 기존의 '민주주의'라는 표현 대신 새 역사교과서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도록 강요했습니다. 이날 이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로 쓰면 검정을 통과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체 이들 두 용어의 차이는 뭐며, 또 보수진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고집하는 배경은 대체 뭘까요? 우선 보수-진보 양측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한국현대사학회 등 뉴라이트 측은 이에 대해 "인민민주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으로 한정짓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진보진영의 이인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역사학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곳은 (뉴라이트 계열인) 한국현대사학회 하나뿐"이라며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였습니다. 뉴라이트 측은 '자유민주주의'가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이게 사실일까요?
 
 법제처 홈페이지 '영문법령정보' 편에 실린 영문 헌법 가운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관련 부분
 법제처 홈페이지 '영문법령정보' 편에 실린 영문 헌법 가운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관련 부분
ⓒ 법제처 홈페이지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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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 홈페이지의 '영문법령정보'편에 따르면, (헌법 전문의 표현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영어 표기는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나와 있습니다. 이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뜻하는 것으로, 뉴라이트 측이 주장하는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와는 내용상 차이가 있습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의 "19세기에나 민주주의가 맞고 오늘날에는 자유민주주가 맞다면 우리 체제를 민주주의로 설명하는 현행 교과서가 다 틀렸다는 것이냐"는 항변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논란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이태진 위원장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위원장은 이날 교과부 출입기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최종적으로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은 자신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역사교과서 편찬 책임자 가운데 한 사람인 국사편찬위원장이 논쟁의 합리적인 조정은커녕 오히려 논쟁의 불씨 역할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이 위원장이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면서 판단 근거로 '위키피디아'를 들었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들어가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말하자면 '다국적 온라인 백과사전'이랄 수 있습니다. 흔히 '집단지성'으로 불리는 위키피디아는 다양한 견해를 수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특장점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사편찬의 책임자이자 역사학회 회장을 지낸 원로 역사학자가 새 역사교과서 기술의 한 축이 될 핵심용어를 이곳에서 채택했다는 것은 그의 역사학자로서의 기본자질을 의심케할 만한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도 전문 역사학자들의 논의 결과를 깡그리 깔아뭉개면서까지 말입니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디피아' 한국어판 초기화면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디피아' 한국어판 초기화면
ⓒ 위키피디아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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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진 위원장은 역사학자로서 자질이 없다
 
한편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이 위원장은 '대강화(大綱化) 원칙'을 거론했습니다. '대강화 원칙'이란 교과서 집필자들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집필기준에서는 큰 틀만 제시한다는 것으로, 역사학계에서도 동의하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이번 집필기준에서 '대강화 원칙'이 적용된 부분은 '5·18 민주화운동' 등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면 보수진영에서 고집하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 등의 부분은 당초보다 길어졌고 또 원래 없던 북한 인권 문제는 새로 포함됐다고 합니다. 이 위원장이 "새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쓰지 않을 경우 검정에 통과할 수 없다"고 말한 걸 두고 한 언론은 "이 위원장이 말하는 '자율성'과 '대강화'는 특정 방향을 향해서만 가능한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위원장처럼 국사 편찬에 책임(혹은 관여)을 지고 있는 사람이나 역사학자, 언론인들은 조선시대로 치면 '사관(史官)'에 해당합니다. 사관은 정확한 직필(直筆)로써 국가적인 주요 사건, 왕이나 백관의 언행이나 잘잘못, 사회상 등을 기록하는 것을 임무로 하였습니다. 당시 사관에게는 일종의 면책특권 같은 게 주어져 사관이 매일 기록한 원고인 사초(史草)는 시비를 가리지 못할 뿐더러 수정도 가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게다가 왕이라도 함부로 이를 볼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연산군 시절의 '무오사화'나 명종조의 '을사사화' 둘 모두 사초 때문에 비롯됐으며 사관은 사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작금 대명천지에 버젓이 역사왜곡이 자행되고 있음에도 목숨을 걸고 이를 막는 사관 한 사람이 없습니다. 목숨을 바치기는커녕 이 위원장 같은 분은 앞장서서 역사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역사는 특정 정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추만대에 길이 전할 민족사의 기록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재자를 미화함은 물론 원로 역사학자로서 제대로 된 역사관조차도 갖추지 못한 이 위원장은 국편 위원장직에서 마땅히 물러나야 합니다. 그는 역사학자로서의 자질은 물론 국사편찬위원회 수장으로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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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친일청산 등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갈망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