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여름, 일본 오사카 시내에서 전철로 두 구간 거리에 있는 나카자키초의 작은 동네를 일 주일간 다녀왔다. 젊은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았다. 성미산마을이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10여 명의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미산마을의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주었다. 그리고 홍대 앞 독립예술가들과 성미산마을과의 유쾌한 만남의 가능성을 보았다. 총 3회로 나눠 게재할 예정입니다. <기자 말>

앞선 기사 보기 : <한 달 지나면 사라지는 돈... 빨리 쓰세요>

열린 네트워크, 느슨한 관계가 있는 아만토마을

아만토마을에서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자기 점포를 운영하고 싶은 20대 청년, 동네 주민들, 50대 후반의 평범한 아주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욕구와 방식으로 아만토와 인연을 맺고 활동한다. 활동의 방식도 유급근무를 하든, 자원봉사로 참여하든 스스로 원하는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

이것이 아만토마을에서 불문율로 통하는 원칙이다. 아만토마을에 오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올 수 있다. 어떤 기준을 정해 들어오지 못하게 막지 않으며, 스스로 나가기 전에는 결코 나가라고 하지 않는다. 신입회원 면접이 있지만, 누군가를 걸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돕기 위한 정보제공 절차다. 오히려 오는 사람이 아만토마을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성미산학교에서도 교사를 선발할 때 전형위원이 면접을 보지만 상호면접임을 미리 밝히고 시작한다. '맞선보기'인 것이다. 그래서 교사응시자의 질문을 보장한다.

그러니 아만토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유동이 잦다. 마을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다소 방해가 될 법도 하다. 좀 익숙해질 만하면 헤어지게 되니 맥이 빠질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생활의 호흡을 맞춰가기가 쉽지 않고, 또 꽤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열린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가 뭘까?

첫째. 열린 관계는 '구성원의 다양성'을 가져다준다. 마을에 사람들의 유동을 엄격히 통제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어렵다. 마을에서 다양성은 풍부함의 원천이다. 풍족한 자원을 돈이나 조직의 형태로 따로 비축하고 있거나, 권력으로 동원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함께하는 사람들끼리의 협동'은 바로 생활의 직접적인 자원이다.

둘째. 열린 관계는 단기적으로 보면 관계의 지속성을 엷게 해 공동체 안정감을 약화시키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안정성과 지속성을 쌓을 수 있는 터전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 네트워크의 연결망들이 확장되고, 연결 관계의 위치변화가 자유롭고, 관계의 강도가 강화돼야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열린 관계에서만 가능한 네트워크의 작용이다.

지역사회를 넘어 세계로 나가는 야만토마을

지진피해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나선 아만토들
 지진피해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나선 아만토들
ⓒ 유창복

관련사진보기


지진피해현장 중 정부나  NGO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오지마을을 찾아 복구작업을 하는 아만토마을의 대원들
 지진피해현장 중 정부나 NGO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오지마을을 찾아 복구작업을 하는 아만토마을의 대원들
ⓒ 유창복

관련사진보기


지진피해 현장의 주민을 위로하는 아만토대원들.
 지진피해 현장의 주민을 위로하는 아만토대원들.
ⓒ 유창복

관련사진보기


아만토는 일본에서는 물론, 세계 공동체에서의 활동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만토는 일본 동북지역의 지진 피해지역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 버스투어를 몇 차례나 조직했다. 지진피해로 붕괴 위기에 처한 일본 동북지역의 조선학교를 지원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피해지역 중에서 NGO(비정부기구), NPO(비영리민간단체)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역을 스스로 찾아 복구활동을 벌였다.

아만토마을의 주민들은 외국과의 예술교류도 자주 진행한다. 여력이 생길 때마다 동남아를 비롯한 유럽 등지로 아만토마을 예술가들이 공연하러 다닌다. 이런 국내외 공연활동을 다니면서 신세진 사람들도 많고, 아만토마을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성미산마을과 아만토마을의 차이점은 '가족'

성미산마을 거리를 막고 벌인 축제, 도로위에 주저앉아 많은 주민들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성미산마을 거리를 막고 벌인 축제, 도로위에 주저앉아 많은 주민들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 유창복

관련사진보기


아만토마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미산마을과 닮았다. 우선 그들은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한다. 카페를 만들고, 식당을 만들고, 영화관과 공연장을 만들어 직접 운영한다. 둘째, 마을주민의 자격이 특별히 없다. 접속하면 바로 주민이 된다. 접속하는 만큼 자신의 마을이 된다. 그 누구도 접속을 강요하지 않는다. 셋째, 지리적으로 서로 모여 있기 때문에 수시로 오프라인에서 연결되는 커뮤니티라는 점이다.

하지만 다른 점을 따져보면 대번에 드러나는 것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성미산마을은 아이들의 육아를 협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고, 그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마을살이의 다양한 인프라들이 만들어져 왔기 때문에, '가족'이 마을의 중심적인 구성단위다. 그러므로 주민의 연령대가 30대 초반부터 50대 초반까지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중반이 중심적으로 활동하는 연령대다. 반면, 아만토마을은 20~30대가 대부분이고 또한 거의 미혼상태다. 40대와 50대의 주민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기혼 가정은 한 두 가구뿐이다.

궁상스럽지만 지역사회에 녹아드는 부족, 아만토들

그러나 이러한 비교는 좀 밋밋하고 단순하다. 나는 아만토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여러 주민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퍼뜩 <가난뱅이의 역습>이 떠올랐다. 이 책에는 일본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주류사회의 진입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탐사한 사람들, '하지메'들이 등장한다.

아만토마을 사람들과 하지메는 '궁상스럽지만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무진장 노력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만토 카페를 보아도 그렇고, 백 년이 넘은 건물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개보수한 영화관과 공연장을 보면 더욱 그렇다. 동네에서 버려진 폐건축자재와 가구들을 주워 만들었으니 그 꼴이 말 그대로 궁상스럽다. 그래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사실 궁상스럽다거나 어떻다거나 하는 말은 그들의 기준에 적합한 언어는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누린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내, 아만토마을 사람들은 하지메들과는 다른 부족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메들이 게릴라 같은 유목민의 유전자를 가졌다면, 아만토들은 정주(停住)적인 삶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아만토들은 철저하게 지역사회에 밀착하려 애쓴다. 지역의 아이들과 소통하고, 동네의 어르신을 존중하고, 그들로부터 삶의 지혜와 공감을 구하려고 노력한다. 해마다 열리는 마을축제에서 기획이나 스태프 역할을 자진해 맡는 등 마을의 궂은 일에 적극으로 나선다. 의식주는 물론 놀이와 문화를 마을에서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함께 나눈다.

젊은 네트워크와 성미산마을은 반드시 만나야 한다

성미산마을에서 자란 큰아이, 강산이와 상현이의 성인식 모습
 성미산마을에서 자란 큰아이, 강산이와 상현이의 성인식 모습
ⓒ 유창복

관련사진보기


성미산마을은 이른바 386세대 주축이 돼 시작된 마을이다. 공동육아와 대안학교를 비롯해 마을산인 성미산 지키기와 다양한 마을기업 만들어 운영하기까지…. 그들이 지나온 과정은 대안적인 삶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했던 과정이다. 그들은 절차적 수준이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한 경험이 있는 세대다.

한편, 그들은 한국경제 산업화의 혜택이라면 혜택을 누린 세대다. 최소한 취업 걱정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로서 중산층의 신화를 꿈꿀 수 있었던 세대였던 것이다. 결국, 성미산마을은 386세대가 누린 '민주화의 정치적 경험'과 '중산층 신화라는 경제적 혜택'을 밑천 삼아 '대안적인 삶의 터전으로 마을'을 꾸려온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성미산마을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색다른 부족이 서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20~30대의 연령에 미혼인 젊은이들이 마을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을이 신기한 듯, 재미있다는 듯 툭 건드려 보기도 하고 조심스레 접속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는 이내 실망하고는 "여기는 우리가 놀 자리가 아니야"라며 포기하고 떠나기도 했다. 홍대 부근의 독립예술가들이 마을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하면서 이들 색다른 부족이 성미산마을에서 더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이들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성미산마을극장에는 젊은 싱글들 여럿이 스태프로 활동하고 있다
 성미산마을극장에는 젊은 싱글들 여럿이 스태프로 활동하고 있다
ⓒ 유창복

관련사진보기


'이들과 함께할 길이 무엇인지'가 고민된다. 나름의 생존의 길을 탐색하는 젊은이들이 성미산 마을에 제대로 안착하고, 뿌리내려 살기 바란다. 그들을 볼 때마다 '지금 젊은이들이 지고 갈 멍에의 일정 부분은 우리 세대가 이미 써버린 탓도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난 아만토마을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봤다. 개별로서 마을에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문화와 네트워크를 가지고 그 네트워크의 확장과 연장으로 마을과 연결되는 것이 바로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미산마을의 마을살이가 '씨실(가로방향으로 놓인 실)'이라면 이들의 네트워크가 '날실(세로방향으로 놓인 실)'로 가로질러 얹혀서 서로에게 파고들어 얽힐 때 비로소 함께 공존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지속하는 마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알림] 아만토마을의 주민들이 서울에 놀러온답니다!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아만토마을의 몇몇 주민들이 서울을 방문합니다. 참여연대에서는 지진으로 피해를 당한 조선학교 어린이들을 돕는 전시회를 하고, 성미산마을에서는 워크숍을, 그리고 한국의 독립예술가들과 함께 공연도 하고 토론회를 벌입니다.

<지진피해 일본 어린이, 조선학교 어린이 돕기 그림전>
- 11월 11일(금)~11월 18일(금) 오전 10시 ~ 오후 6시 (토·일 휴무) / 참여연대 1층 갤러리 '통인'
- 참여작가 : 박재동, 김형배, 김병수, 고경일, 이하, 윤정원, 이해광, 이혜림, 박소영, 김건, 유수경, 박지혜, 진재원, 주은경, 안정우, 이미영, 박비나, 박수인, 김지현, ByeN YooN
- 전시회 오픈 행사 : 11월 11일(금) 오후 7시 / 그림 경매 이벤트, 아만토 사람들의 평화 메시지 전달 및 공연

<한일 지역예술교류 포럼 "지역예술 공동체, 도시에서의 정주">
- 11월 15(화) 오후 7시 ~ 오후 10시 30분 / 성미산마을극장
- 1부 공연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만드는 축하무대",
댄스워크숍 참가자, 아만토 예술가, 한받 등이 만드는 무대

- 2부. 토크 "지역예술 공동체, 도시에서의 정주"
아만토 공동체의 삶과 예술 (니시오 준, 아만토마을)
두리반에서 맺은 문화연대와 회생 (한받, 자립음악생산조합)
문래동의 철제공장과 예술가의 동거 (김윤환, 랩39)


태그:#성미산마을, #아만토마을, #독립예술가, #지역사회, #마을공동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