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여름, 일본 오사카 시내에서 전철로 두 구간 거리에 있는 나카자키초의 작은 동네를 일 주일간 다녀왔다. 젊은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았다. 성미산마을이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10여 명의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미산마을의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주었다. 그리고 홍대 앞 독립예술가들과 성미산마을과의 유쾌한 만남의 가능성을 보았다. 총 3회로 나눠 게재할 예정입니다. <기자 말>

앞선 기사 보기 : <카페에 극장까지... '문어발' 사업확장, 이유 있었네>

아만토마을의 촌장, 준과 아만토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아만토마을의 촌장, 준과 아만토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유창복

관련사진보기


준, 불새마을의 촌장!

준은 아만토마을과 같은 공동체에 대해 10대 후반의 청소년시절에 어렴풋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20대 청년시절에 그는 체육을 전공했다. 그때 서로 다른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협력하자는 취지로 '상호협력회'라는 대학 내 조직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사회로 나와서는 우리 세대만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때 그는 위아래 세대와의 연대와 협동이 필요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동산 컨설팅회사에 다니던 친구를 만나 색다른 제안을 받게 된다. 호리에 지역에 있는 건물 활성화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호리에 지역은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내온 아메리카무라(村)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당시 일본은 버블 경제의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던 때였다. 매각도 임대도 불가능해진 건물을 예술가들에게 헐값에 임대해줌으로써, 건물주는 불황을 통과하는 시간을 벌고자 했다.

준은 흥미를 느끼고 수락했다. 방이 52개나 되는 건물이었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임차계약을 맺고 주변의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다. 작업실이 아쉬웠던 젊은 예술가들은 앞 다투어 몰려들었고 이 건물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각 층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입주시키고 장르 간의 협동 작업을 유도하면서 거리축제를 기획하였다.

호리에 거리는 젊은 예술가들로 북적였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약 5년 동안 준은 '불새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건물의 촌장으로 불리며 총기획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이 건물주는 임대계약이 끝나자 재계약을 거부한다. 예술가들이 북적이면서 임대료가 올라가고, 이 지역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자 바로 건물을 매각해버린 것이다.

성미산마을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홍대 앞 사정과 매우 유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홍대 앞에 젊은 독립예술가들이 북적이고 젊은이 문화의 메카로 자리 잡으면서 음식점, 술집, 다양한 점포들이 속속 늘어난다. 인근 건물의 임대료는 치솟고, 정작 예술가들은 비싼 임대료 때문에 작업실을 유지할 수가 없어, 하나둘 쫓겨나 성미산마을과 같은 외곽지대로 밀려나고 있다. 준은 값진 교훈을 얻게 됐다고 한다.

"나는 내가 태어난 고향에 좋은 일을 한 것인가, 결국 내가 고향을 망가뜨린 것은 아닌가? 책임을 느끼게 되었다. 기업의 자본에 기대서는 안 된다. 예술가들 스스로 자립적인 기반을 쌓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다시 마을에서 시작한다

아만토마을의 마을극장 입구. 허름한 건물 한 켠에 꾸며놓은 극장, 마을에서 소중한 공간이다.
 아만토마을의 마을극장 입구. 허름한 건물 한 켠에 꾸며놓은 극장, 마을에서 소중한 공간이다.
ⓒ 유창복

관련사진보기


준은 나카자키초로 발길을 돌렸다. 나카자키초는 도심 한복판이지만, 개발이 정체되어 오래된 일본 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거의 공짜에 가까운 싼 임대료로 빈 가게 하나를 얻는다. 그리고 아만토마을의 시초가 된 아만토 카페의 공사를 시작했다.

이때 공사 가림막을 둘러치지 않고 안이 다 보이게 하고, 지나가는 동네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고 한다. "뭐하는 거냐?"고 물어오면, 퍼포먼스를 한다며 망치를 건네주었다. 주민들은 신기해하면도 망치를 받아들고 망치질을 해보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공사도 무척 오랫동안 천천히 했다. 공사에 필요한 모든 자재를 동네에서 주워다 썼고, 버리는 가구나 허문 집의 폐건축자재를 재활용했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공사를 준 혼자서 했으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사용하였다. 이 오랜 공사를 지켜보던 동네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뭐인지 묻고 뭐든지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가게의 가구들은 모두 모양이 제각각이다.

지역사회와 가까이 하면서 동네의 아이들과 어르신과 살갑게 지내면서 생활의 지혜는 물론이고 물심양면 다양한 지원을 얻고 나누며 살아간다. 이는 경쟁적인 시장에서의 생존과는 아주 다른 삶의 감수성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아만토마을의 자립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것이 아닐 거다.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만토마을의 자립문화, 지역통화와 1일1선제도

채식인을 위한 식당, 민트. 실내는 작지만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소담스런 분위기이다.
 채식인을 위한 식당, 민트. 실내는 작지만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소담스런 분위기이다.
ⓒ 유창복

관련사진보기


아만토의 자립적 생활의 기초에는 독립채산제를 보완하는 지역통화가 있고, 지역통화를 보완하는 1일1선(1日1善)제가 있다. 아만토마을에는 그 마을에서만 통용되는 화폐인, 아만토화폐가 있다. 점포에서 근무하는 스텝들에게 지급되는 급여, 레슨이나 워크샵의 수강료, 공간대여료 등으로 아만토화폐가 사용된다.

그래서 아만토마을의 주민들은 현금(중앙통화로서의 엔화)이 없어도 끼니를 해결하고, 차와 술을 마시고, 필요한 강좌를 수강할 수 있다. 아만토마을의 주민은 서로 소비하면서 동시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른바 아만토마을 내부의 순환적인 자급자족적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굳이 엔화가 없어도 아만토 내에서는 필수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아마토화폐는 다른 지역통화와 다른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다. 유효기간이 1개월이다. 지역통화가 발행된 지 1달이 지나면 자동으로 그 효력이 없어진다. 이른바 '역이자'다. 쌓아둔다고 이자가 붙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손해가 되므로 지역통화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순환을 촉진시킨다.

한편 지역통화제도와 함께 1일1선제가 시행되고 있다. 하루에 1번 선행하자는 취지이고, 1번 선행(善行)을 하면 1아트(art)를 지급한다. 선행은 아만토마을에 유익하고 고마운 일을 한 경우 시간에 관계없이 인정된다. 결국 아만토화폐와는 달리 아트는 교환가치가 없는 무상의 증표이다. 물질이나 돈을 대가로 하지 않는 공동체적인 선행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제도이다. 

언젠가 동네의 노인으로부터 다급한 도움을 받고는 고마운 마음에 선물을 하려하자, 그 노인은 "대가를 바라고 한 게 아니다"며 극구 사양을 하더란다. 돈이나 물질을 바라지 않는 선의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공동체적 선의를 마음으로 보상하고 감사하기 위하여 아트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트는 아만토마을에서 신용도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알림] 아만토마을의 주민들이 서울에 놀러온답니다!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아만토마을의 몇몇 주민들이 서울을 방문합니다. 참여연대에서는 지진으로 피해를 당한 조선학교 어린이들을 돕는 전시회를 하고, 성미산마을에서는 워크숍을, 그리고 한국의 독립예술가들과 함께 공연도 하고 토론회를 벌입니다.

<지진피해 일본 어린이, 조선학교 어린이 돕기 그림전>
- 11월 11일(금)~11월 18일(금) 오전 10시 ~ 오후 6시 (토·일 휴무) / 참여연대 1층 갤러리 '통인'
- 참여작가 : 박재동, 김형배, 김병수, 고경일, 이하, 윤정원, 이해광, 이혜림, 박소영, 김건, 유수경, 박지혜, 진재원, 주은경, 안정우, 이미영, 박비나, 박수인, 김지현, ByeN YooN
- 전시회 오픈 행사 : 11월 11일(금) 오후 7시 / 그림 경매 이벤트, 아만토 사람들의 평화 메시지 전달 및 공연

<한일 지역예술교류 포럼 "지역예술 공동체, 도시에서의 정주">
- 11월 15(화) 오후 7시 ~ 오후 10시 30분 / 성미산마을극장
- 1부 공연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만드는 축하무대",
댄스워크숍 참가자, 아만토 예술가, 한받 등이 만드는 무대
- 2부. 토크 "지역예술 공동체, 도시에서의 정주"
아만토 공동체의 삶과 예술 (니시오 준, 아만토마을)
두리반에서 맺은 문화연대와 회생 (한받, 자립음악생산조합)
문래동의 철제공장과 예술가의 동거 (김윤환, 랩39)


태그:#성미산마을, #아만토마을, #독립예술가, #지역사회, #유창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