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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 ; 젊은이들에게 미지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가 간의 상호이해를 높이고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별히 마련된 예외적 제도 (네이버 백과사전)

말 그대로 일하고(Working), 쉬는 것(Holiday). 젊은이들에게는 쉰다는 행위 자체가 배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잡지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청춘의 시간들은 딱히 무어라 정의 되지 않으며, 그 시간을 온전히 경험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가 쌓여갈 뿐이다. 돈을 덜 버는 대신 시간을 얻는 것, 돈을 덜 쓰는 대신 시간을 얻는 것이 먼 미래를 위해서 더 현명한 판단이 될 수도 있다." (G콜론/이정혜)

이 글을 읽자마자 내 노트에 옮겨 적으며, "그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시간'이야"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시간을 잘 쓰는 것, 나에게 집중하는 것,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것. 그때의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가장 중요했다. 주변의 여건들이 받침이 되어 주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여유 정도는 늘 주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를 가장 잘 파악하고 계실 부모님들께서는 늘 이렇게 어디로 튈 지 모를 딸에게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고 계셨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나는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스스로 선택해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삶을 가지기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 일일까. 그래서 이 좋은 전제 조건을 손에 쥐고서도 나는 항상 버거워 선택의 갈림길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결정을 내리곤 했었다. 내 인생에서 제법 큰 결정이었던 호주도 그렇게 가게 됐다. 

막상 비자가 나온 것을 확인했을 때의 기분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막상 비자가 나온 것을 확인했을 때의 기분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 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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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받던 날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호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호주 워킹 홀리데이에 대한 몇몇 정보들을 듣고 그다지 큰 비용이 필요치 않다는 말에, '아, 그러면 나도 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혼자 일본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넘쳐나고 있던 시기였다.

그렇게 호주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다가 어느 날 가족과 친구들에게 서서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빠를 제외한 사람들은 한번쯤 다녀와도 괜찮지, 라는 반응을 보였고 나는 신이 나서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먼저 인터넷으로 비자를 발급받으려 이것저것 검색해보았다. 내 주변에는 호주로 워킹을 간 사람은 없었지만 친구의 친구, 아는 언니 등등 워낙 주변에서 많이 가던 상태라 정보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도 별 무리가 없었다. 일단 검색창에서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 방법'을 치면 수많은 페이지가 뜨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알기 쉽고 잘 정리해 놓은 것을 보고 순서대로 따라해 가며 비자를 신청했다. 나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영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니, 꽤 컸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영어에 목을 매야하는지에 대한 이유조차 모르던 때라 그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본격적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승인이 되었다는 메일이었다. 당연하게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마음속 깊숙이 '혹시?'라는 생각이 감돌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불안감이 말끔히 가시고 나자 정말 '이제 현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감정 속에서, 나는 그렇게 나의 입국을 허락하는 메일을 받아들었다.

전혀 모자란 것은 없지만
무언가를 길거리에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

다 잘 되어 가고 있어.
나는 잘 할 수 있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조심스럽게 한 걸음,
내딛어 볼 거야.

호주로 가기 전, 친구가 선물해 주었던 시계.
 호주로 가기 전, 친구가 선물해 주었던 시계.
ⓒ 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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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싸기

이제 정말 시작이다. 비자를 받아들고, 어렵게 인터넷에서 항공편을 구하고 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호주는 더운 나라니까 일단 가볍고 빨기 좋고 자주 입는 옷들을 위주로 챙기고, 한국에서는 입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수영복도 샀다.

어떻게 보면 나는 조금 독특하게 짐을 싼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호주로 떠나기 한 달 전부터 내 방 안에 트렁크를 열어놓고 어떤 물건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무조건 던져 넣었다. '아, 이 옷을 가져가면 잘 입겠다', '거기는 학용품이 비싸다는데 이것도 가져갈까?' 하는 식으로.

평생 살아왔던 익숙한 나라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사실 상상만으로는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처음 겪어보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충분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짐을 꾸리기를 바란다. 열 시간도 넘는 머나먼 나라에 가서 '아! 그거 가져올 걸!' 하고 후회해 봤자 집에서 부쳐주는 소포를 기다리고 있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러기에는 현지에서 사는 편이 나으니까. 또 생각날 때마다 노트에 목록을 적어놓고, 준비를 한 뒤에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보편적이고 특별한, <호주 준비물>
- 1년 생활용 -
좋은 볼펜과 연필 등 필기도구가 가득 담긴 필통, 노트(넉넉히, 호주는 문구류가 비싸고 질도 별로 좋지 않다), 다이어리 전용 크라프트지 노트 1권, 손톱깎이, 수저세트, 뚜껑 있는 컵, 반팔 티(인터넷에서 색만 다른 무지 티셔츠를 여러 장 구매했다), 긴팔 카디건, 청바지 몇 벌, 가벼운 재킷(호주의 겨울은 쌀쌀한 편이므로 약간 두께 감 있는 옷도 한 벌쯤 가져가는 것이 좋다), 캐논 400D 카메라, 펜탁스 필름 카메라, 노트북(넷 북 아닌 초대형. 어깨 빠질 뻔했음), 라디오 가능한 MP3, 각종 전자기기 USB와 충전기, 코닥 필름 20통, 소형 스피커(혼자 있을 때 MP3와 연결해서 음악 감상), 자료 정리용 파일, 잘 읽는 책 몇 권, 론리 플래닛(여행안내서는 주변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이 주고 가므로 굳이 사가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꼭 가져가고 싶다면 '론리 플래닛'을 추천한다. 구석구석 세밀한 여행에는 이 책이 최고다) 베이직 그래머 인 유즈 1권, 발음 기능 있는 전자사전(사촌 언니의 선물), 네이비 하이 컨버스, 조리 한 벌, 플랫 슈즈, 땡땡이 수영복, 호주 전기 콘센트 커넥터(일명 돼지코, 동네 철물점에서 500원에 샀다), 처음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줄 복 주머니와 각종 엽서들(인사동 등지에서 구매. 나중에 헤어질 때면 친구들에게 뭔가 막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럴 때 아주 유용하다) 기초 화장품(선물 받음. 그런데 유리병), 기능성 좋은 선크림(자외선 차단, 중요하다. 호주에서도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살 수 있다), 선글라스, 여성용품, 수건 세 장 정도(스포츠 타월은 빨리 말라서 좋다), 속옷 여러 벌과 목욕용품(샴푸와 칫솔, 치약 등. 처음 도착해서 쓸 정도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구입해도 된다), 소형 우산, 손목시계, 김, 미역, 과자, 라면 등의 가벼운 식품(한국 식품은 거의 대부분 현지의 한국 마트에서 살 수 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하지만 김과 미역은 가벼우니 최대한 많이 가져가자),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 (캔버스 / 가죽으로 하나씩) 여권 복사본과 사진이 들어있는 파일 등등을 29인치 캐리어와 검정색 배낭, 옆 가방 하나에 채워 넣었다. 


생각해 보면 호주도 사람 사는 곳이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물건이든 찾을 수 있다. 그러니 다른 나라에 가서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될 수 있는 대로 가방을 가볍게 하고 떠나기를 바란다. 필요한 물건을 그 곳에서 직접 찾고 사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줄 테니까.

공항 가는 날

공항으로 가는 날의 기분. 건드리면 후두둑, 쏟아질 것 같았다.
 공항으로 가는 날의 기분. 건드리면 후두둑, 쏟아질 것 같았다.
ⓒ 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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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자정이 지나지 않았으니, 내일.
이곳을 벗어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의 이 생활도 좋지만,
솔직히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계획이 있을 때는 신속하게, 얼른 해치우고
나는 움직이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간다.

냉소적인 말만 내뱉을 줄 알았지,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24살 나이만 먹은 막내다.
엄마는 난 독한 년이라 안 울 거라 얘기하지만
진정 그러기를 원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인 걸.

소중한 것에 얽매이지 말고 벗어나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행복한 것이었는지,
위험하고 불안하지만 그 끝을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떠난다.

드디어 '그 날'이다.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엄마,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제 앞으로 일 년 동안 멀리 떨어져 있게 되면, 그렇게 당연하게 여겼던 부모님과의 시간도 내 것이 아니게 된다니. 뒷자리에 앉아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엄마와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착잡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엄마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나에게 준다며 종이 한 장을 꺼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장난스럽게 대꾸를 했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에 필요한 수속들을 끝내고, 저녁 시간이 다 되어 마지막으로 간단히 요기나 할까 해서 식당을 찾았을 때였다. 엄마는 음식을 주문하러 잠깐 자리를 비우셨고, 아빠와 단 둘이 테이블에 마주앉아 있던 그때부터 나는 마음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혼자가 된다는 느낌, 자꾸 불효를 하고 있다는 생각, 나는 단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고 하는 이기주의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들 때문에.

그렇게 복잡한 마음들을 채 정리도 하지 못한 채, 헤어져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짐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미안해서, 너무나 죄송해서.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엄마 아빠께 뒷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게 너무나 죄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한바탕 울고, 그런 나 때문에 결국 엄마도 울고. 입국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엄마 아빠의 모습을 조금 더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뒤를 돌아다보았다. 가방 검사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훌쩍이던 나는 비행기의 자리를 찾아 앉고 나서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으로 이제 집으로 가시는 부모님과 짧은 통화를 했다. 그리고는 길게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앞으로 일 년간 이 전화를 쓸 일은 없겠지. 스쳐 지나가는 짧은 생각들을 주체하지도 못하고 나는 가만히 어두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렴한 비행기를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나는 홍콩에서 내려 다시 호주행 비행기로 갈아타야만 했다. 무거운 배낭과 카메라 두 개를 짊어지고 처음 보는 공항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게이트를 찾아가는 길에 발견한 이것은, 누구나 사용가능하다는 '프리 인터넷 존'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이메일이라도 쓸까 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바로 이게 화근이었다.

결과적으로 인터넷은 하지 못했다.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따로 지정된 핀 넘버가 필요한 것 같았는데 나는 여권번호니 비행 좌석 표 번호니 숫자와 문자는 다 눌러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랜 비행시간에 대비하여 세수나 할까 해서 화장실에 갔다가 나온 참이었다. 갑자기 뭔가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가방을 뒤져본 나는 순간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여권과 그 속에 끼워진 보딩 패스가 사라진 것이다. 얼굴에 열이 확 오르며 순식간에 울상이 되고 말았다. 어쩌지, 어떡하지. 난 아직 호주에 내려 보지도 못했는데. 당혹스런 표정을 짓던 나는 문득 그 인터넷 존이 생각나 그쪽으로 마구 달려갔다.

마침 내가 도착하자 공항 직원과 얘기를 하고 있던 외국 남자분이 다행이라는 듯 내게 'Your passport?'라고 물으시는 것이 아닌가. 아아. 그때의 안도감이라니. 나는 엉망이 된 얼굴로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했고, 힘이 빠진 다리로 터덜터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마터면 국제 미아가 될 뻔했다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해야 하나 마나를 고민하면서.

덧붙이는 글 | 지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했던 내용입니다. 이 '나의 호주'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됩니다. 사진이나 이외의 글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블로그 http://blog.naver.com/hyukibyul 로 오세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태그:#나의 호주, #호주 워킹홀리데이, #호주 생활기, #출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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