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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를 통해 가볍고 즐거운 정치를 보여주고 있는 정봉주 민주당 전 의원.
 <나는 꼼수다>를 통해 가볍고 즐거운 정치를 보여주고 있는 정봉주 민주당 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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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저격수'가 가카(각하)의 '꼼수'를 겨냥하고 나섰다. 딴지 총수(김어준), 시사돼지(김용민), 누나전문기자(주진우)도 그분의 꼼꼼함 밝히기를 거든다. '국내 유일의 가카헌정방송', 딴지라디오의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다. 가카 덕분에 <나꼼수>의 인기도 하늘을 찌른다.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닙니다", 방송을 듣는 내내 '빵빵' 터지는데 끝나고 나면 그 웃음이 정치의 허상을 찌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궁금했다. 스스럼없이 자신을 "천성이 가볍고 품행이 방자하다"고 소개하면서도 끝에는 꼭 '위대한 정치인'으로 마무리하는 이 정치인의 방송 밖 모습이. "노원구 공릉동·월계동을 지역구로 하는" 정봉주(50) 민주당 전 의원이다. 'BBK 저격수'에서 '나꼼수'까지 진화해온 그의 정치 역정을 거슬러 올랐다. 지난 9월 20일, 외벽 공사 중인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정 전 의원을 만났다. 다리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은 그는 당사 앞마당에서 지나가는 민주당 당직자들과 악수하고 서로 소식을 전하기 바빴다. <나꼼수>에서 "현역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고 했던 그다.

"팬들 몰려와서 사인해 달라는 정치 상상했다"

"2005년인가 국회의원 초창기에 공항에서 나오는데 150~200여 명의 여성팬들이 모여 있는 겁니다. 순간, 착각을 했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나 때문에 온 건가?'하고. 근데 저를 쑥 지나쳐서 제 뒤에 나오는 동방신기한테 가더라고요. 그걸 보고 무척 맘이 상했어요. '국회의원 중에 정말 이렇게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자부심으로 저는 무척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왜 정치인들은 만날 욕만 먹고 저런 환대를 못 받을까, 하고요. 그때 마음속으로 결심을 했어요. '팬들이 몰려와서 사인해달라고 하는, 20,30대 유권자가 열광하는 정치를 만들겠다'고."

며칠 전, 그의 부인이 그에게 "너무 떠서 이상하지 않냐?"고 했을 때, 6년 전의 이 이야기를 했단다. "유권자가 열광하는 정치가 뭔지도 모르고 영원히 불가능할 것도 같았지만 이 상황을 계속 머릿속으로 그려왔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런 결과"라고. 또 "이 상황은 계속 갈 것"이라고.

처음부터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결코 얄밉지는 않다. 그 이유를 인터뷰가 끝날 때쯤 알았다. 그 이유는 이후에 밝히고, 우선 <나꼼수>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함께 방송을 했었고, 최근엔 "다음 세대 미디어는 뭐냐, 다가온 개인 미디어시대를 준비하자"는 고민을 함께 해오던 참이었다고 설명하던 그가 솔직한 심정을 전한다. "그도 나도 다 잘려서 '억울해서 못 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고. 이명박 정부 들어 두 사람 다 고정출연했던 방송에서 물러난 상태였던 것.

두 사람은 우선 작년 2월, 한겨레 하니TV에서 김 총수가 진행하던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정봉주의 PSI' 코너를 만들면서 의기투합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고정 열혈팬들을 양산했다. 그가 한겨레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한다.

"위에서 자꾸 뭐라고 한다는 거예요. 제가 민주당 소속이니까 특정 정파를 대변한다고…. 근데 저는 민주당을 칭찬한 방송을 별로 한 적이 없거든요. 그건 핑계고, 날선 발언이 싫은 거라고 봐요. 두려웠던 거지. 발언이 아픈 거지. 그걸 눈치 채고 김어준 하고 제가 스마트폰미디어 등을 고민했던 거죠."

고민이 <나꼼수>란 결과물로 세상에 나온 데는 PD와 교수직을 모두 잘린 김용민 씨가 PD로 결합하고부터다. 기조는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해보자. 좀 더 적나라하게 가자. '뉴욕타임스'처럼 욕 등에 삐~소리 넣지 말고….'였다. 구체적인 상도 정하지 않고 우선 두세 달 시험용인 베타버전으로 가자고 했던 게 바로 히트를 쳤다. 방송 2,3주 만에 팟캐스트(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을 합친 말로, 이용자들이 '구독' 등록만 해두면 PC나 스마트폰, 엠피3 플레이어 등 지정한 단말기로 자동 전송해주는 서비스) 국내 순위권에 들더니 세계 정치부문 1등까지 했다.  

그도 이렇게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 못했단다. 사회를 보든 정치를 하든 아웃사이더, 비주류로 살아온 인물들이 만들어낸 돌풍이다. "지금은 비주류가 주류를 잡아먹는 형국 아니냐?"고 예상 밖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한 그는 "이 정도로 언론이 망가졌구나"를 깨달았단다. 팟캐스트 1등도 방송은 다루지 않았다. 인터뷰 요청도 주류언론에서는 들어오지 않는다. 얼마 전,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연락이 왔단다. 그가 묻는다. "이게 다큐멘터리용인가요?"

정봉주 전 의원은 동방신기처럼 "팬들이 몰려와서 사인해달라고 하는, 20,30대 유권자가 열광하는 정치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봉주 전 의원은 동방신기처럼 "팬들이 몰려와서 사인해달라고 하는, 20,30대 유권자가 열광하는 정치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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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에 나가 까불고 싶어

연예인 못지않게 이미지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정치인 정봉주가 너무 가벼운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을까. 그가 단번에 "전혀 두렵지 않고 우려도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형식은 가볍지만 내용은 무척 무거운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제가 나꼼수에서 얘기하는 정책들을 보면 한 10명의 국회의원이 각자 자기 분야를 심층적으로 연구해야만 나올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김어준이 말하는 '깔대기 정봉주'가 이런 건가? 반갑다.

"미국에서 여성과 흑인한테 투표권을 준 게 불과 몇 십 년이 안 돼요. 그때는 '흑인한테 투표권을 주자'고 하면 다 '정신 나갔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말자, 투표권을 뺏자'고 하면 '미친 놈' 소리를 듣잖아요.

세상은 변화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오고 있어요. 처음엔 저한테 '가볍다'고 했던 주위 정치인들도 지금은 그런 얘기를 안 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니까. 또 저 스스로 '가볍다'는 얘기를 피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품행이 방자하다'고 먼저 치고 나가죠. '정치는 무거워야 한다'는 통념이 깨지는 시점이 제 손에 의해 온다니까요. 너네는 계속 무겁게 있어라. 무겁게 정치하는 사람들은 단명하고, 가볍고 행복하고 즐겁게 정치하는 사람들은 롱런하다는 패러다임을 만들어 놓을 테니까."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를 '폴리테이너'라고 칭했다. 연예인 출신 정치인을 일컫던 단어를 연예인처럼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정치인으로 바꾸어놓는다. 그 기점을 열어준 게 <나꼼수>다. 그가 <나꼼수>에서 한 일은 "정치를 깨뜨린 것"밖에 없다.

"정치를 깨뜨리고 내가 망가지고 그냥 내가 살고 싶은 삶대로 간 거죠. 앞으로 정치는 그렇게 가야한다고 봐요."

이미지가 고정되는 게 걱정이 아니라 오히려 좀 굳어지면 좋겠단다. 그러면 진지한 토론회에 나가 이런 걸 해보고 싶다고.

"막 데이터를 들이대면서 얘기하다가 '어, 이게 제 본모습이 아닌데…. 다시 까불겠습니다' 하는 거죠. 또 한나라당이 계속 얘기하면 '제가 점잖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해요. 상대방이 무슨 말인가 하겠죠. 그때 '시끄러워요' 한 마디 하는 거죠. 그러면 또 저쪽은 '무례하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과하세요'라고 할 테고, 제가 '사과'라고 하는 거죠. 그러면 안 돼요?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했잖아요. 그걸 보는 국민들이 '아, 저런 정치도 있겠구나' 하겠죠. 그렇게 가지 않은 길을 터놓고, 그 터놓은 영역으로 국민들이 들어오는 거예요. 지금은 정치에 국민들이 들어올 수 있는 영역이 없어요."

여백이 없는 책은 사고 싶지 않듯이 정치에서의 유머는 편집이나 예술의 숨구멍과도 같다고 그가 말했다. 현역 국회의원 시절, <백분토론>이나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쌈닭 같은 논객으로 자주 등장했던 그가 변했다. 표현방식은 바뀌었지만 그가 품고 있는 내공은 변하지 않았다.

"내 몸엔 교육DNA가 있어"

"초선 때, 다음에 또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사실 없었어요. 이번이 끝일지 모르니까 이 순간에 다 불살라야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제가 늘 농담처럼 얘기하잖아요. '3선급의 일을 한 초선'이라고. BBK 때도 지금이 끝이라고 보면서 싸웠던 거죠."
 "초선 때, 다음에 또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사실 없었어요. 이번이 끝일지 모르니까 이 순간에 다 불살라야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제가 늘 농담처럼 얘기하잖아요. '3선급의 일을 한 초선'이라고. BBK 때도 지금이 끝이라고 보면서 싸웠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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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렸을 적 꿈과 지금의 꿈은 같다. '가장 성공한 정치인.' 정치인을 꿈꾸게 된 계기를 물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남보다 앞서서 어떤 상황을 얘기하는 것에 흥미가 있었어요. 사람들과 뭉치고 비비고 그런 삶 자체를 좋아했고요. 그러다 보면 조금 더 의미 있는 쪽으로 가는 데 대한 고민도 하게 되고…. 지나고 보니까 그게 정치였더라고요. 중학교 때부터 학교 정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정치인 정봉주에게 정치란 더 나은 길에 대한 모색이란다. 그렇게 더 나은 길을 따라 오다보니 학생운동도 하고 재야운동도 했다. 그걸로는 부족한지 그가 한마디 한다.

"넓게 보면 우리 삶은 다 정치 아니에요? 집안에서의 모든 의사결정도 정치이고. 좁은 의미의 정치를 우리 정치인들이 전면에서 하는 거고요. 다만 정치하면서 참 잘했다 싶은 게, 정치가 모든 분야의 정점에 서있구나를 알게 됐다는 겁니다. 삶과 우리가 바꾸려는 모든 것의 정점에 있고, 또 모든 것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정치죠."

삶의 모든 영역에 뻗어있는 정치 중 그가 자신의 분야로 꼽는 건 바로 '교육'이다. "제가 사교육을 해봤잖아요. 교육DNA가 있는 것 같아요." 웃으며 그가 말했지만 먹고살기 힘든 운동권 출신이 많이 택하는 일이 바로 학원강사다. 중고등학생 대상 학원을 하면서 "칼만 안 들었지 강도짓을 하는 것 같아서" 너무 고통스러웠단다. 20살까지의 삶은 온전히 저당 잡힌 청소년들을 바로 옆에서 바라봤던 시간이었다.

"교육이 미래 희망과 비전을 담보할지라도 이렇게 고통을 주면 안 돼요. 교육은 미래 비전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툴(도구)도 되지만 그 순간의 삶도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청소년기의 삶을 20세 이후로 유예해 버려요. 이들의 행복권은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 청소년 자살률이 최고이고…. 전 청소년기에 행복한 아이들이 나중에도 행복하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10대의 정봉주는 행복했다. 중학교 때는 축구를, 고등학교 때는 쿵푸를 했다. 그의 팬카페,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에는 180도로 다리를 쫙 벌리고 있는 사진도 올라와 있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거의 안 했다는 그는 정규교육에서 배운 교훈보다 땡땡이치면서 배운 교훈이 훨씬 더 많다고 힘주어 말한다.

일탈도 해보고 자유롭게 놀고 행동하는 여유로움 속에서 뭔가 나올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지금의 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 통할까? 답은 부정적이기 쉽다. 그는 그걸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고등학생들을 마음껏 놀려보자

교육정책의 기본적인 총론은 '학생들을 고통 속에서 행복한 쪽으로 끄집어내기'가 될 터이다. 이는 대학교육만 흔들어놓으면 된단다.

"대학은 뺑뺑이하면 안 되나요? 대학 가서 공부하라고 하죠. 성인이 됐으니까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실제로는 다양한 삶이 있는데 우리 사회는 공부 잘하는 사람을 위한 획일적인 삶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마흔 넘어서 봤더니 공부 잘했던 부류에서 성공했던 비율과 대체로 못했던 부류에서 성공한 비율이 똑같아지더라는 겁니다."

자신의 교육관을 설파한다.

"중고등학교 때 마음대로 놀아봐라. 공부할 애들은 공부하고. 놀 애들은 놀고…. 대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니까 독서도 열심히 하고, 술, 담배는 몸에 안 좋으니까 그런 건 하지 말고…. 그래도 하겠다는 놈들은 어쩔 수 없고…."

공부 말고 다른 능력을 타고 난 애들을 낙오자 취급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그에겐 있다. 그러기 위해선 고시제도도 깨버려야 한단다. 우리 사회엔 깨뜨려야할 교육제도들이 너무 많다.

한때 '놀아본' 그가 당시 후기대학으로 꽤 유명했던 한국외대의 영어과에 들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래서 3수를 했죠." 재수학원에서 공부하기로 결심을 했다.

"전날 놀다가 만날 학원에 늦게 갔어요. 월말 고사를 보는 날이었는데 그날도 늦었어요. 햇볕이 무척 따사로운 날이었죠. 조용히 들어가야 하는데 학원 교실 앞문을 쾅~ 열고 들어가니까 50명쯤 되는 애들이 다들 저를 쳐다봐요. 참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게 섬뜩하더라고요. 그날 저녁에 시험 끝나고 이후에 저의 멘토가 된 애가 얘기를 좀 하자고 해요. 둘이 소주 한 잔 하는데 걔가 그러더라고요. '네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데 불쌍하더라. 대학에 떨어지고도 저렇게 철이 안 나서 저러나. 너무너무 불쌍해 보였다. 네가 쌈도 잘하니까 나를 때릴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얘기는 너한테 꼭 해줘야 겠다'고."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다음날부터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공부를 했다. 첫 번째는 '애들한테 피해를 주지 말자'는 마음이었다. 자신한테 피해를 받으면서도 한달 동안 입을 다물었던 반친구들한테 미안했다. 애들이 공부할 때 같이 공부하고 조용히 할 때 같이 조용히 하자, 싶었다. 두 번째는 공부를 못해 애들이 무시하는 것 같으니까 저들만큼 하면 될 것 아니냐, 싶었다. 아침 6시에 학원에 도착해서 공부만 했다. 그렇게 2년을 공부했다.

절실한 열망이 운명을 만들어

"대학은 뺑뺑이하면 안 되나요? 대학 가서 공부하라고 하죠. 성인이 됐으니까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실제로는 다양한 삶이 있는데 우리 사회는 공부 잘하는 사람을 위한 획일적인 삶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잖아요."
 "대학은 뺑뺑이하면 안 되나요? 대학 가서 공부하라고 하죠. 성인이 됐으니까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실제로는 다양한 삶이 있는데 우리 사회는 공부 잘하는 사람을 위한 획일적인 삶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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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하게 된 건 '운명' 같단다. 그가 두 가지의 운명론을 펼친다. 하늘이 대강의 틀을 잡아놓는 운명도 있지만 적극적인 열망과 의지가 모이면 새로운 운명이 만들어진다고.

지방자치가 막 부활하던 1991년, 그는 선배들의 권유로 시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졌다. 사업하려고 부모님과 주변 분들한테 빌렸던 2억 원을 다 날렸다. 지금으로 따지면 20억은 쓴 셈이다. '내가 돈을 벌어서 돈 쓸 수 있을 정도가 된 다음에야 정치를 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손을 털었다. 그러고선 학생운동 같이 하던 후배 대여섯을 묶어서 학원을 시작했다. 그렇게 사업에 뛰어들었고 그 생활에 적응해갔다.

"국회의원 나오기 한, 두해 전인 마흔 둘쯤 됐을 때에요. 그땐 이미 내 인생은 내가 원했던 정치쪽이 아니라 사업하는 삶으로 고착됐구나, 라고 생각하던 차였죠. '어차피 사업하면서 살 건데….' 하면서 학생운동 때 가졌던 정의로움이라든가 민주적 의식과는 무관하게 잘 놀러 다니고 대강대강 살았어요. 어느 날, 부천에서 학원 하는 후배와 술을 마시고 집에 오는데 택시를 탔어요. 택시에서 자다가 눈을 떴는데 눈앞에 딱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거예요. 의사당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요.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혹시 종교가 있다면…. 하느님, 다시 태어나면 꼭 저기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렇게 비는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는 거예요. 너무나 원했는데 다시는 갈 수 없는 삶에 대해서 처절할 정도로 슬퍼지더라고요."

그날 이후 한동안 가슴앓이를 했단다. 그리고선 '근면성실하게 잘 살아서 사업으로 한 획을 긋고 보람찬 삶을 살자'고 마음을 털었단다. 그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기존 기득권 세력들로 진입장벽이 높았던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되던 때였다. '이제 돈 안 쓰는 정치를 할 수 있겠구나.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열린우리당에 들어가게 됐다.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던 날, 그가 유세로 사람들을 뒤흔들어 놨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도입한, 유권자가 자신이 선호하는 순으로 후보들에 등수를 매기는 선호투표제를 적극 활용했다. 2등은 자신을 뽑아달라고 설명했다. 결국 떨어진 후보들의 표에서 상당수가 2등으로 그를 뽑아서 1차에서 3등을 했던 후보가 국회의원 후보가 되는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다. 선호투표제도 있었지만 그는 "43년을 꼭 해야겠다고 벼르고 왔던 일인데 얼마나 절실했겠나. 나의 절실함이 승부를 가른 거"라고 했다.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흘렸던 눈물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게다.

그토록 절실했던 열망과 의지로 국회의원 배지를 가슴에 달았던 그다. 그런 그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압도적 1위인 이명박 후보와 BBK 주가조작 사건의 관계에 대해 계속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정치인생을 걱정했을 법도 한데 그는 거침없었다.

"그렇게 절실했기 때문에 나중 생각을 안 하면서 정치를 했어요. 초선 때, 다음에 또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사실 없었어요. 이번이 끝일지 모르니까 이 순간에 다 불살라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떨어졌을 때도 그래서 별로 후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늘 농담처럼 얘기하잖아요. '3선급의 일을 한 초선'이라고. BBK 때도 지금이 끝이라고 보면서 싸웠던 거죠."

주인 따로 있는 권력에 왜 목숨 거나

18대 국회에 들어가지 않은 것도 운명 같단다. 다시 국회의원이 됐으면 오만하게 정치했을 것 같다고. 오만함으로 정치하다가 정치자금과 관련된 사고로 중도에 낙마했을지도 모른다고. 사업으로 돈도 벌어보고 부도 직전까지도 가봤던 그다. 정치인에게 돈의 유혹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그가 초연하게 말했다.

이제 그는 정말 돈 한 푼 없어도 정치를 할 수 있게 됐다. <나꼼수> 덕분에 수많은 팬들이 생겼다. 미권스 회원이 3만7천명(9.25 기준)이 넘어섰다.

김어준은 정치란 국민들에게 쌓아놓은 빚을 찾아오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단다. 정봉주는 국민에게 갚아야할 빚이 많은 셈이다. 그가 국회의원을 정의한다. "국민이 '내가 국회의원을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바빠서 난 안 한다. 니가 좀 대신 해줘라'는 게 국회의원 아니냐"고. 그렇게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정치인들은 자기 권력으로 착각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거는 투쟁도 하고.

"국회의원 떨어지면 20~30%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거 모르죠?"라고 국회의원에 떨어져 본 그가 설명한다.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게 정치라면 정치하는 사람한테 정치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내 게 아니니까'라며 언제든 놓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정치는 즐거워질 수 있다"고. "나는 내년 4월 11일에 꼭 다시 당선돼서 국회에 진입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를 보여줘야 하지만 내 뜻과 달리 하늘이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그때는 내려놔야죠." 평생 정치를 가슴에 품었던, 하지만 국회의원은 딱 한 번 해봤던 그가 생각하는 정치다.

정치부흥사인 그, 정치인들한테 권력을 위임해준 권력의 주인, 국민한테도 한 마디 덧붙인다.

"정치에 무관심한 여러분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그 과거는 사실은 보수진영에서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놓은 인식의 조작된 틀인 겁니다. 그걸 깨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삶이 바뀝니다."

그의 정치 예언이 잘 적중한다고 해서 '봉도사'인 그다. 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한다"던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그가 안타까운 듯 말한다.

"제가 얘기한 건 단순히 그들의 수를 본 게 아니라 당위성을 얘기한 거죠. 통합이 왜 안됐는지의 차이는 본인들만 알아요. 국민들은 모르죠. 지지자들도 모르고. 상대방의 결점을 찾기 전에 먼저 자기 결점을 봐야죠. 그게 아량이거든요. 나에 대해선 혹독하고, 차이점은 최소화하고 같은 점은 극대화해서 볼 줄 아는 정치적 포용력이 너무 아쉬워요.

진보진영이 정치적 순결을 많이 따져요. 그런데 정치적으로 순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는 1급수가 아니라 2급수쯤 되는 정치인이다. 3급수까지 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이다.' 저는 그 말이 너무나 맞다고 생각해요. 자기는 2급수이면서 상대는 1급수가 되기를 요구하기만 하면 통합 못할 것 같아요. 손해 보면서 같이 하려는, 그런 여유가 많이 없어요. 숨구멍이 있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진보정당, 너무 진지모드 아닌가요?"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원외에서 바라본 민주당에 대한 아쉬움을 물으니 "그것만으로도 2시간 짜리인데…"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지금 우리 정치는 정당정치에서 변화하고 있어요. SNS를 통한 무서운 혁명의 시대가 오고 있죠. 정당정치에서 국민은 청중, 대상자일 뿐이었어요. 여론을 모니터링하고 피드백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민들은 정당에서 주는 메시지로 정치적 판단을 했죠. 반면 SNS시대에는 국민은 청중이 아니라 이 연극무대의 주인공입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쓴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과 RT수를 보고 열광해요. 모두 그곳에서 주목받는 주연인 거죠. 이 주연을 대변할 수 있는, 우리 주연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안철수, 박경철, 박원순이 뜬 거죠. 주연의 정치로 넘어간 겁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 변화를 읽고 새패러다임에 적응해 갈 것인가? 지금은 못하고 있죠. 그렇게 되면 도태된다고 봐요. 그분들의 토태는 제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정봉주 전 의원은 SNS와 정당정치가 공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봉주 전 의원은 SNS와 정당정치가 공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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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도 없애고 권위도 털어낸 새로운 민주당이 필요하다고 정봉주 전 의원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해 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강의와 팬클럽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포항으로 날아가야한다는 그를 잡지는 못했다.

18대 때 떨어져서 다행이라고 정봉주 전 의원은 말했지만 기자는 인터뷰 장소가 불안정해서 힘들었다. 민주당 정책연구원장실에서 시작했던 인터뷰는 대회의실에서 마쳤다. 2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그의 보좌관은 주차해둔 차 안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작년에 쓴 100문 100답 중 '가장 부러운 사람'에 김두관 경상남도지사를 꼽았다. 맹목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단다. 하지만 이제는 김 지사가 안 부럽단다. 정치인에게 무엇보다도 큰 자산인 아무 이유 없이도 도와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도 생긴 게다. 그들의 힘을 빌려 내년 4월에 그가 다시 국회에 들어갈 수 있을까? 다시 국회의원이 되면 마음 맞는 국회의원과 함께 '신나는 민주주의' 콘셉트로 정치콘서트를 열고 싶다는 정봉주. 그가 아직 오지 않은 반년 후의 포부를 밝혔다.

물론 그 전에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아직 남아있는 BBK 관련 대법원 판결이 고법 판결대로 징역 1년형으로 확정된다면 그는 내년 총선은 물론 앞으로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당한다. 9월 22일, <나꼼수> 녹음 전에 잠깐 만난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매일 4시간 정도밖에 못 자서 늘 피곤하단다. "감옥 가면 이게 가장 큰 걱정이에요. 요즘은 밤 10시만 되면 전부 소등한다면서요? 난 새벽 1, 2시 전엔 잠이 안 오는데…."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스튜디오로 향하는 그의 다른 손엔 여러 가지의 서류뭉치가 들려있었다.

덧붙이는 글 | 월간 <노동세상> 10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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