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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현정부 인사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이 회장은 신 전 차관이 사용했다는 SLS그룹의 법인카드 전표 등 증빙자료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이국철 회장을 소환해 조사했었다.
▲ 이국철 회장, 판도라의 상자 여나...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현정부 인사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이 회장은 신 전 차관이 사용했다는 SLS그룹의 법인카드 전표 등 증빙자료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이국철 회장을 소환해 조사했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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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처음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사건은 커져 버렸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폭로한 'MB정부 실세 스폰서 의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애초 이 회장에게는 두 가지 '폭로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SLS조선과 SLS중공업 워크아웃 등 매출 2조 원대 'SLS그룹 해체'의 진실을 밝히라고 압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MB 검찰이 겨냥했던 것처럼 자신이 '열린우리당 자금줄'이 아니라는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수단'이 필요했다. 이 회장은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정권 실세인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선택했다. 자신이 신 전 차관에게 수년간 10억 이상의 금품을 제공해왔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 회장에게 신 전 차관은 '약한 고리'였던 셈이다. 그는 '신재민 스폰서 의혹' 폭로로 'SLS그룹 사건'을 환기시키는 데 성공했다.

신재민 전 차관(자료사진).
 신재민 전 차관(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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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재민 스폰서 의혹' 사건은 '왕의 남자들'로 불리는 정권 실세들에게 번졌다. 이 회장의 입에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임재현 대통령실 정책홍보비서관의 이름이 거명된 것이다.

신 전 차관이 곽 위원장과 임 비서관에게 준다며 총 5000만 원어치의 상품권을 이 회장에게 받아갔고, 임 비서관은 이 회장으로부터 세 차례 향응접대를 받았으며, 박영준 전 차관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시절 일본 도쿄 현지에서 SLS그룹 일본법인장으로부터 500만 원 상당의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판단하기에 이들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인사들이었다. 하지만 여론의 판단은 달랐다. 이들이 MB정권의 실세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실제 상품권이 건네졌는지, 접대가 이루어졌는지 등을 두고 계속 의문이 제기됐다.

이들이 스스로 사건을 확대시킨 측면도 있었다. 이들이 함께 이 회장을 상대로 총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사실과 다르게 해명하거나 나중에 말을 바꾸면서 진실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영준의 말바꾸기, "접대받을 시간 없었다"에서 "술자리에 동석해"

모처에서 며칠간 휴식을 취한 뒤 서울로 다시 올라온 지난 9월 29일 오후, 기자는 이 회장을 직접 만났다. 기자가 박영준·곽승준·임재현 등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을 언급하자 그는 아주 덤덤한 얼굴로 이렇게 대꾸했다.

"명예훼손 소송? 신경 안 쓴다. (증거들을) 까면 큰 일 날텐데 왜 그러는지 몰라. 신재민도 못빠져 나오지만 박영준도 세게 걸렸다."

이 회장은 "박영준도 세게 걸렸다"는 주장의 근거로 지난 2009년 일본 접대 내역이 담긴 노트를 검찰이 압수해갔다는 것과 계열사 사장이 박 전 차관에게 '회사가 어려우니 도와 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사실을 추가로 폭로했다.   

"내가 손해볼 일은 전혀 없다. 박영준은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인데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 (박 전 차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는) 박아무개 사장(계열사)이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니다."

이 회장은 진실 논란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게다가 이날 기자와 전화로 연결된 박 전 차관조차 최초 해명했던 것과 달리 2009년 5월 일본 도쿄에서 문아무개 SLS그룹 일본법인장을 술자리에서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박영준 전 차관(자료사진).
 박영준 전 차관(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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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차관은 지난 9월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내가 국무차장 시절에 한일총리회담 등을 수행했는데 총리를 밀착해서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잠시도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며 "그런데 어떻게 내가 500만 원어치의 접대를 받을 수 있었겠나?"라고 접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내가 (공직에 있을 때) 43개국을 돌아다녔는데 (해외에 만난 사람들에게) 고생한다며 다 밥을 샀다. 이 회장이 악에 받쳐 아무나 끌고 들어가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날 박 전 차관의 해명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박 전 차관의 해명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시절이던 2009년 5월 총리 일정을 수행하고 저녁을 먹은 뒤, 도쿄 현지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 

"내가 일본에 간다니까 대한항공 동경본부장이 사전에 전화와서 '시간내서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했다. 그는 10년 된 지인이다. (일본에 가서) 총리 일정을 수행하고 저녁을 먹고 (약속장소에) 갔다. 그 자리에는 내가 아는 다른 공직자도 왔는데, 그가 데려온 사람을 나에게 소개하더라. 삼성물산에 근무한 적이 있는 친구라고 소개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이 SLS그룹 일본 동경법인장이었다."

그날 술자리에서 박 전 차관과 그의 지인 2명, 문아무개 SLS그룹 일본법인장 등 총 4명이 어울린 것이다. 하지만 박 전 차관은'500만 원 상당'의 접대 의혹만은 거듭 부인했다. 

"저녁을 먹고 선술집에서 만났다. 내가 다음날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는 일정이 있었다. 그 일정이 부담돼서 가볍게 술 한잔 하고 헤어졌다. 일본 선술집에서 4명이 마셨기 때문에 술값도 얼마 안나왔다. 그날 술값은 내 지인(대한한공 동경본부장)이 냈다. (최근에) 내 지인에게 확인해보니까 당시 술값을 낸 자료가 있을 것이라고 하더라."

박 전 차관은 "SLS그룹 일본법인장이 나와 동석하게 된 것을 이 회장에게 어떻게 보고했는지 모른다"며 "이 회장은 일본에서 보고한 내용만 듣고 나를 접대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억울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최초 "총리를 밀착해서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잠시도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가 나중에 "술자리에서 SLS그룹 일본법인장을 만났다"고 말을 바꿈으로써 박 전 차관의 '결백'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게 됐다.

임재현 비서관의 무역진흥회의 관련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나

사실과 다르게 해명한 임재현 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그림자 측근'으로 꼽힌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7년간 이 대통령을 보좌했기 때문이다. 그는 올초 대통령실 제1부속실 선임행정관(수행비서)에서 정책홍보비서관으로 승진했다.

임 비서관은 이 회장으로부터 강남의 술집에서 3차례 정도 접대를 받았고, 신재민 전 차관을 통해 상품권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임 비서관은 이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강남의 술집에서 만나 당선 축하파티를 여는 등 세 차례 만났고 세 차례 모두 2차(성접대)까지 나갔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 2008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무역진흥확대회의에서 이 회장이 이 대통령과 가장 먼저 악수할 있도록 배려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하지만 임 비서관은 지난 9월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 회장이 주장한 내용들을 대부분 부인했다. 먼저 그는 "신재민 전 차관의 소개로 술자리에서 이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며 "이 회장은 몇 차례 만났다고 주장하는데 딱 한 번 만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청와대에 들어오기 전 신재민 전 차관이 맥주 한 잔 더 하자고 해서 술자리에 따라 갔다가 이 회장을 만났다. 하지만 (이 회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만나 (당선 축하파티를) 한 적이 없다. 2차를 나간 적도 없다."

임 비서관은 신 전 차관으로부터 상품권을 건네받았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그는 "신 전 차관과 친한 사이지만 상품권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다"라며 "신 전 차관으로부터 백화점 상품권을 건네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임 비서관은 "무역진흥회의 때 이 회장을 맨앞으로 배치했다는 주장도 말이 안 된다"며 "그때 그분이 와 있길래 1년 만엔가 인사한 적은 있지만 장관과 경제5단체장이 오는데 내가 어떻게 그분을 맨 앞으로 배치할 수 있겠나"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YTN에 보도된 당시 화면을 보면 임 비서관의 해명은 사실과 달랐다. 이 회장이 주장했던 대로 이 회장은 대통령 영접행렬 맨앞에 있었고, 이 대통령과도 가장 먼저 악수했다. 이 회장이 회의석상 가장 앞줄에 앉아 있는 사실도 영상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이는 이 회장이 지난 9월 21일 <오마이뉴스>와 단독으로 만나 주장한 내용과 다 일치한다.

"지난 2008년 11월엔가 코엑스에서 대통령 주재 무역진흥회의가 열렸다. 내가 (회의석상의) 제일 끝에 있었는데 임 비서관이 나를 알아보더니 행사 진행자에게 얘기해서 나를 제일 앞으로 배치해 줘 제일 먼저 이 대통령과 악수했다. 쟁쟁한 그룹 회장들도 있는데 중견 그룹의 오너를 제일 끝에서 제일 앞으로 배치한 걸 보면 임 비서관이 힘을 쓴 것 같다. 당시 YTN에서 촬영한 동영상도 있다."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차관은 해명한 지 1주일 만에 말을 바꾸었고, '그림자 측근'이라는 임재현 비서관은 뒤늦게 '거짓해명'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왕의 남자들'의 이러한 행보는 그동안 이 회장이 감행해온 '폭로'의 신빙성만 높여주고 있다. 지난 9월 29일 기자와 만난 이 회장은 이렇게 '자신감'을 내보였다.

"(진실이) 다 드러날텐데 왜 (나를) 고소하는지 모르겠다. (박영준·임재현 등 정권 실세들이) 나를 흔들면 흔들수록 좋다. 나는 진실만 얘기하니까."


태그:#이국철, #박영준, #임재현, #SLS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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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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