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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대표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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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병원은 많다. 하지만 환자의 마음까지 보듬어주고, 치료해주는 곳은 없다. 병원신세를 지게 된다면, 대부분 환자는 약자가 되기 쉽다. 이런 약자를 대변이라도 하듯 환자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를 맡고 있는 안기종씨. 그는 최근 이슈가 된, 탤런트 고 박주아씨 사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병원에 환자안전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환자를 맡기기엔 불안합니다. 그래서 환자가 적어도 자기 질환이나 치료과정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박주아씨 같은 경우엔 로봇수술에 대해 조금만 더 정확히 알았더라면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국립암센터에서 초기인 신우암 치료를 잘 받다가 로봇수술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굳이 옮겨서 수술을 받았고, 십이지장에 천공(구멍)이 발생해 중환자실로 옮겨졌는데 여기서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되어 다시 1인 무균실로 옮겨 치료받다가 이번에는 산소호흡기가 빠져서 돌아가신 거잖아요? 의사들이 아무리 '화타' 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의료사고를 100% 안 낼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의료사고를 인정하고 보상하고 사과를 하면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의사들은 치료뿐만 아니라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양심으로 임해야 합니다."

아내의 백혈병 진단으로 이어진 환우회

안기종씨가 백혈병환우회와 인연을 맺은 사연은 우연이 아니다. 청송교도소에서 군복무를 할 때, 재소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을 보면서 제대 후 법대 학사편입을 준비해서 한양대 법대에 들어갔다. 2001년 2월 졸업하면서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하고 2차 시험을 한창 준비중인 11월에 아내가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때, 아내는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마침 그때 기적의 신약이라고 불리던 표적항암제(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항암제) 글리벡이란 약이 개발되었다. 문제는 글리벡 약값이 한 달에 삼백만 원에서 육백만 원이나 했다. 아내는 상태가 너무 심해졌지만, 다행히도 임상시험에 참가해 글리벡을 10개월 동안 무료로 먹을 수 있었고, 골수이식도 받아 건강해졌다.

아내와 같은 백혈병 환자들이 글리벡을 먹을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로 참가하다가, 그것이 인연이 되어 2005년부터 백혈병환우회 간사,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에는 대표로 일하고 있다. 막상 환우회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환자권리가 밑바닥 수준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변호사로 인생을 사는 것보다 백혈병환우회에서 환자들과 환자권리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우리에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용기와 문화가 필요하다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거나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나라 병원에 가면 로비에 '우리 병원은 환자중심 병원입니다'라고 쓴 푯말이 붙어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되지만, 정작 진료실, 휴게실이나 원무과조차도 환자 중심이 아니에요. 우리가 병원에 가면 돈을 내고 치료를 받잖아요? 우리는 당당한 소비자예요. 우리가 내는 돈으로 병원에서 시설도 구입하고, 의사 월급도 주는 거예요. 환자가 먹여 살리는 거지요. 병원에 있어서 왕은 우리 환자예요.

하지만, 병원에 가면 의사가 우리 생명줄을 잡고 있다는 것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데, 내가 의료소비자로서 병원을 이용하는데 있어서 나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판단했을 때에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안 되면 환자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그래도 안 되면, 정부나 국회 등에 개선을 요구해야 합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는 의료소비자로서 병원에 대해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거예요."

의료소비자로서, 환자로서 주어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용기나 문화가 되어 있지 않아, 그는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환자단체가 다른 소비자단체보다 열악해요. 정부에서 환자단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해요. 그 사람들이 국가나, 정부를 대신해서 환자들에게 상담도 하고, 권리나 정책에 대해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해요. 그런 지원을 병원이나 제약사들이 하니까 환자들이 병원이나 제약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거고, 약가와 같은 문제들이 있을 때, 국민입장보다, 오히려 제약사나 병원 눈치를 보는 거예요. 그래서 개선이 필요해요."

2011년 7월1일 부터 한마음혈액원에서는 헌혈기념품으로 헌혈기부권제도를 시행한다. 기부처에 한국백혈병환우회도 포함되어 있다.
 2011년 7월1일 부터 한마음혈액원에서는 헌혈기념품으로 헌혈기부권제도를 시행한다. 기부처에 한국백혈병환우회도 포함되어 있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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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생명의 버팀목이 되어 함께'

백혈병환우회는 투병정보를 제공하고 상담하는 사업과 투병환경을 개선하고 환자권리를 증진하는 사업을 한다. '서로가 생명의 버팀목이 되어 함께'라는 백혈병환우회 슬로건에 걸맞게 환우회에는 다양하게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완치된 백혈병 환자들이 그룹을 만들어 신규로 백혈병 진단을 받은 환자들을 지원하는 '버팀목'과 헌혈문화운동을 전개하는 '붉은천사단'과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서포터즈 '반딧불이', 그리고 '빅아이즈'라는 언론영상 미디어그룹이 있다.

2002년에 창립된 백혈병환우회는 백혈병,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등 '피가 아픈' 환자와 환자가족, 그리고 자원봉사와 후원금으로 돕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NGO환자단체이지만, 백혈병 환자들을 제외한 전체 환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했다.

대한민국에 환자 중심의 보건의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질병, 이념, 국경을 넘어 환자 복지, 권리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환자단체들의 연대체이고, 2010년 2월 4일 창립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현재 5개 환자단체(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카노스' 암시민연대)로 구성되어있고, 10만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개별 환자를 돕는 것은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이지만, 정책, 제도, 법률을 바꾸면 전체 환자들에게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적인 혜택을 줄수 있더군요"라며 그는 연합회가 하는 일을 짧게 설명하였다.

2011년 6월 15일 한국백혈병환우회 창립 9주년 후원의 밤 행사.
 2011년 6월 15일 한국백혈병환우회 창립 9주년 후원의 밤 행사.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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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젠다 세일즈맨으로서의 안기종

그는 자칭 세일즈맨이라고 한다. 백혈병환우회에는 환자의 투병을 제공하거나 개선하는 사업을 하는데, 환자단체연합회를 한 뒤로부터 환자권리 증진을 위한 다양한 정책, 제도, 법률을 개선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 제가 해야 될 역할은 환자입장에서 의제나 이슈들이 사회적 관심을 받도록 만들 필요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백혈병 환우회나 환자단체는 약해요. 돈 많고 조직도 튼튼한 의사협회, 약사회 등은 정부에 로비(좋은 의미)도 하지만, 우리는 돈도 없고 조직도 약해서 결국은 언론이나 방송이나 국회나 정부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의제나 이슈를 잘 포장해야 돼요. 잘 설득해야 되는 거예요.

즉, 국회엔 환자권리에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 법을 바꿔 달라. 정부에게는 환자권리에 이런 침해가 있으니 제도를 바꿔 달라. 언론에는 이것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방송해 달라. 설득하는 거죠. 환자들을 직접 만나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제도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잘 입혀서 국회의원, 정부 공무원, 기자들 만나서 설득하는 거예요. 환자권리나 보건의료에 관련된 중요한 아젠다(Agenda)를 판매, 세일즈하는 거예요. 그게 제 역할인 거죠. 의제가 될 수 있는 것을 발굴하여 실현가능한 것으로 포장해서 팔아야 되는 거예요."

최근 그는 <나는 가수다>라는 TV프로그램 꼭 챙겨본다고 한다. 일주일 동안 노래 한 곡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무대에서 3~5분 동안 최선을 다해 공연하는 가수를 보며, 자신도 환자권리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아젠다 하나를 맡더라도 대충하는 것이 아닌, 최선을 다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하나의 아젠다를 정성스럽게 준비해 환자 전체에게 혜택이 가는 정책이나 제도로 바꿀 수 있도록 확실히 해야겠다는 소명감, 사명감을 느끼죠. 그래서 저의 모든 능력과 경험들을 다 동원해서 계획하고 추진하려고 합니다."

덧붙여, 의료계와 정부에게 당당하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Listen to patients, Speak to change라는 말을 좋아해요. 환자에게 들어라, 그러면 변화를 위해서 말하겠다. 이 말처럼, 의료계나 정부나 국회가, 정책, 제도, 법률을 바꾸고 변화되도록 환자가 말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의료계와 정부와 국회, 그리고 환자가 소통할 수 있도록 환자단체연합회는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있고, 10월 중에 오픈 예정이라고 한다.

하루에 주어진 시간이 초로 따지면 8만6400초라고 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말도 있다. 백혈병환우회 환자들을 보면서,
"오늘 지금 여기서의 삶이 소중하고, 자기 자리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말은 좀 빠르지만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나직한 음성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든다. 세상에는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환자들을 위해 묵묵히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정직하고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다. 그에게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낸다.

못다한 이야기

안기종은?
1970  경남 울산 출생
1989  경남 울산 학성고등학교 졸업
1997  대구 영남대 식품가공학과 졸업
2001  서울 한양대 법학과 졸업
2005  한국백혈병환우회 간사
2006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
      보건복지부 혈액관리위원회 위원 (~현재)
2010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 (~현재)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현재)
      국민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공동대표(~현재)
2011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이사 (~현재)

○ 단체
- 한국백혈병환우회   www.hamggae.net 
          1688-5640     e100479@naver.com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www.kofpg.kr 
          02-780-0068    kofpg@naver.com

1. 좌우명은?
- '밑에서부터 처음부터 다시' 나도 실패, 절망, 배신 등에서 예외일 수는 없어도 '새 포도주는 새 포대에 담듯' 언제나 어디서나 밑에서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2. 나의 멘토는 누구?
- 박원순 변호사. 그가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를 주도해서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역량을 키운 것처럼 나도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을 주도해 우리나라에 환자권리운동의 역량을 키워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3. 20년 후 나의 모습은?
- 아들이 나 하나라서 경주에서 사슴농장을 하는 아버님의 뒤를 이어 사슴농장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에 환자 중심의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강연이나 저술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4. 환우회 일을 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은?
- 2007년 이전에는 백혈병 환자들이 골수이식을 받기 위해 혈소판 헌혈자 20명의 명단을 병원에 제출해야 했다. 혈액이 폐기되면 그 비용을 병원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들은 관행적으로 환자가족들에게 헌혈자를 구해오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환자가족들은 환자 간병보다는 헌혈자 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고 헌혈자 차비, 식사비, 사례비 등으로 엄청난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참다못해 2006년 8월에 백혈병 환자들을 이끌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15일간 점거(?)농성을 했다. 이를 계기로 혈소판 사전예약제가 도입되었고, 2007년부터 백혈병 환자가족들이 혈소판을 구하는 관행이 없어지게 되었다.

5. 삶이 힘들고 지칠 때 힘이 된 한마디는?
- '눈이 게으르지 손은 부지런하다.' 농장일을 하시는 아버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다. 산더미같이 일이 쌓여 있을 때 우리 눈은, 저 일이 언제 끝나지라며 게으름을 부리지만 막상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시작하면 금방 끝난다는 의미이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늘 아버님의 이 명언을 생각한다. 

6. 최근에 눈물나도록 크게 웃었을 때는?
- '달인' 김병만이 대한적십자사 헌혈홍보대사로 위촉되었을 때, 소감을 묻는 인터뷰에서 헌혈홍보대사외에 다른 어떤 홍보대사를 하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원효대사 아니면 신진대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7.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일곱자로 표현한다면?
- 나로 남이 기쁠 때.


태그:#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아젠다세일즈맨, #백혈병, #환자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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