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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 돈 때문에 목숨을 저울질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바로 무상의료다. 영국은 국가가 재정을 조달하고 의료 서비스를 관리하는 대표적인 무상의료의 나라다. 의료 서비스의 질과 재정 문제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60년 넘게 무상의료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 불평등과 의료시장 민영화 등 한국사회 의료 문제의 해법을 영국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의 구급대원 리차드 웹-스티븐스(Richard Webb-Stevens)는 긴급 환자가 발생하면 우선 응급처치를 한 후 NHS(National Health Service)와 연결되는 병원으로 후송하는 역할을 한다.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의 구급대원 리차드 웹-스티븐스(Richard Webb-Stevens)는 긴급 환자가 발생하면 우선 응급처치를 한 후 NHS(National Health Service)와 연결되는 병원으로 후송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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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순옥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서늘하다 못해 추웠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찾은 영국 런던의 워털루로드에 위치한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 본부.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한 콜센터는 작전본부를 방불케 했다. 취재진도 최소 인원만 입장이 허락됐다. 어두운 조명에 서늘한 공기,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 소리와 분주하게 안내하는 상담원들. 이곳이 바로 응급환자를 살려내는 1차 관문이었다.

하루에 4000콜... 자유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하 본부

런던은 응급환자를 위해 '999' 앰뷸런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응급 환자가 999로 전화하면 이곳 콜센터와 연결된다. 콜 센터는 크게 2곳으로 나뉜다. 전화만 받는 곳과 전화 상담을 해주는 곳. 상담원과의 전화 내용은 모두 녹음되며 전화를 건 사람의 위치 또한 즉시 포착된다. 위급한 환자의 경우 즉시 앰뷸런스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받는 전화 횟수는 하루에만 4000통 정도 된다. 연간으로 치면 1백만 건 정도다.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바쁜 앰뷸런스 서비스 센터이며 응급 환자의 생명이 달린, 중요한 임무를 맡은 곳이다."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의 트라우마(Trauma) 디렉터인 피오나 무어(Fiona Moore)씨가 12일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의 트라우마(Trauma) 디렉터인 피오나 무어(Fiona Moore)씨가 12일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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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무어(Fiona Moore)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 외상 국장의 말이다. 1890년대 말 시작된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런던을 동, 서, 남으로 나눠 관할하는 앰뷸런스 서비스에는 의사와 응급구조사, 상담원 등 총 5000여 명의 스태프가 일한다. 이곳 워털루로드에 위치한 본부에서 일하는 사람만 500여 명에 달한다.

콜센터는 환자의 상태를 파악, 얼마나 위급한 상태인지, 응급실로 보낼지 중증 외상 센터로 보낼지, 앰뷸런스를 보낼지 헬기를 보낼지 결정한다.

"우리는 앰뷸런스를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에 무척 엄격하다. 전화를 통해 환자의 부상 정도를 파악한 다음 출동하는 앰뷸런스의 75퍼센트 정도가 8분 이내에 도착한다. 아주 심각한 경우에는 지원 자동차와 앰뷸런스를 동시에 보낸다. 약간 경미한 경우에는 앰뷸런스만, 아주 경미한 경우에는 전화로 어드바이스한다." (피오나 무어)

응급 환자 때문에 헬기 띄울 수 있나... 그것도 공짜로?

장거리에서 위급한 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헴(Helicopter Emergency Medical Service, HEMS)'이라 불리우는 헬기(에어 앰뷸런스)를 띄우기도 한다. 1989년 도입된 이 에어 앰뷸런스는 출동 콜을 받은 후 2~3분 이내에 이륙할 수 있으며 12분이면 관할구역 어디라도 도착할 수 있다. 초기에 말이 앰뷸런스를 끌었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에어 앰뷸런스에는 조종사 2명과 응급구조사, 의사가 탑승한다.

에어 앰뷸런스는 오전 8시부터 해질 무렵까지만 운영한다. 날이 어두워지면 시야 확보가 어렵고 도로에 차량이 적어 앰뷸런스를 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1년간 에어 앰뷸런스에서 일한 적 있는 카림 브로히(Karim Brohi) 로열 런던 병원 교수는 "헬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아주 먼거리 혹은 최고의 응급 상황일 때만 헬기를 보낸다"고 밝혔다. 일반 앰뷸런스 차량도 약 45분이면 현장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응급 헬기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띄운다"는 것.

우리나라는 최근까지도 응급 전용 헬기 없이 소방청의 헬기를 이용해 왔으며 이륙까지 최대 3시간이 소요돼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도 "헬기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거점 병원 등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런던의 에어 앰뷸런스가 빛을 발하는 것도 중증 외상 센터 등 특성화된 병원 서비스가 갖춰져 있고 앰뷸런스 서비스가 적재적소에 환자를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앰뷸런스 서비스의 효과는 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98년에는 심장마비 환자의 4.8퍼센트가 목숨을 구한 반면 2010년 현재는 22.8퍼센트로 올라갔다. 심정지(Cardiac Arrest)의 경우 회생률은 8퍼센트에 달한다. 이러한 데이터 집계가 가능한 것도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기 때문이다.

12일 영국 런던 시내에서 불의의 사고로 머리를 다친 긴급 환자가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를 받으며 후송되고 있다.
 12일 영국 런던 시내에서 불의의 사고로 머리를 다친 긴급 환자가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를 받으며 후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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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서비스는 무료다. 물론 무어 국장 표현에 따르면 'free on delivery(이용하는 순간에 무료)'다. 앰뷸런스 서비스가 속한 NHS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완전 무료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 버진과 HSBC 등의 기업들이 에어 앰뷸런스를 후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NHS는 재정 적자로 예산 절감을 요구받고 있다. 앰뷸런스 서비스 또한 예외는 아니다. 무어 국장은 "우리 예산은 년 2억8300백만 파운드다. 그런데 향후 5년간 5300만 파운드의 예산을 절감해야 한다. 올 한해에만 1500만 파운드를 줄여야 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산 절감은) 우리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서비스의 질 저하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지금도 의료팀은 예산 절감이 환자에게 영향을 준다며 반대하고 있다. 우리에겐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콜센터에서 내보내는 응급차량의 수도 줄여야 한다. 물론 불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다. 지금도 응급실을 찾는 환자 중 50퍼센트 정도는 다른 처치를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 또한 급하면 '999'를 누르고 보는 환자들이 있다. 무어 국장은 경증의 환자의 경우 앰뷸런스 서비스가 아닌 GP나 워크 인 센터(2차 병원에 있는 GP)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앰뷸런스 서비스를 꼭 필요한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그래도 무사하니 다행"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 본부 근처에는 항시 출동 가능한 앰뷸런스와 자동차, 오토바이가 대기 중이다. 리처드 웹-스티븐스씨는 오토바이 응급 구급대원이다. 그가 구급대원으로 일한 지는 13년째, 오토바이에서는 4년째다. 복장만 보면 우리나라의 퀵 서비스 종사자와 비슷하다. 고충도 마찬가지다.

"일이 무지하게 힘들다. 날씨 영향도 상당히 받는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하지만 그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그의 오토바이에는 응급처치에 필요한 각종 약품들과 기구 등이 빼곡히 실려 있다. 웹-스티븐스씨는 기자들에게 가방을 일일히 열어보이며 "이건 기도를 확보할 때 쓰는 거고, 이건 혈당 떨어진 사람에게 쓰는 거고..."라며 설명해 줬다.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의 구급대원 리차드 웹-스티븐스(Richard Webb-Stevens)는 긴급 환자가 발생하면 우선 응급처치를 한 후 NHS(National Health Service)와 연결되는 병원으로 후송하는 역할을 한다. 리차드의 오토바이엔 응급처치에 필요한 각종 약품과 의료장비가 비치돼있다.
 런던 앰뷸런스 서비스의 구급대원 리차드 웹-스티븐스(Richard Webb-Stevens)는 긴급 환자가 발생하면 우선 응급처치를 한 후 NHS(National Health Service)와 연결되는 병원으로 후송하는 역할을 한다. 리차드의 오토바이엔 응급처치에 필요한 각종 약품과 의료장비가 비치돼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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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달려가 보니 '워털루로드' 지하철역 앞에 서있다. 방금 전 만났던 웹-스티븐스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철역 앞에 도착한 그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를 기다렸다. 혹 큰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마 후 웹-스티븐스씨가 나타났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한 여성과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였다.

"여성 분이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다. 응급처치를 해 지금은 괜찮다. 큰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부상당한 환자는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리고 웹-스티븐스씨는 또다시 오토바이를 부릉부릉 거리며 어디론가 떠났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  남소연·박순옥 기자, 송주민 시민기자


태그:#유러피언드림, #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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