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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 돈 때문에 목숨을 저울질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바로 무상의료다. 영국은 국가가 재정을 조달하고 의료 서비스를 관리하는 대표적인 무상의료의 나라다. 의료 서비스의 질과 재정 문제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60년 넘게 무상의료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 불평등과 의료시장 민영화 등 한국사회 의료 문제의 해법을 영국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영국에서 의사는 존경받는 직업 1위로 꼽히지만, 로열 프리 병원(The Royal Free Hospital)에서 인턴의로 일하고 있는 문희선씨는 "한국처럼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대 가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전했다.
 영국에서 의사는 존경받는 직업 1위로 꼽히지만, 로열 프리 병원(The Royal Free Hospital)에서 인턴의로 일하고 있는 문희선씨는 "한국처럼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대 가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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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주민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NHS에선 전문의 급여가 평준화돼 있다 보니, 적성에 따라 진로를 정해요."
"돈 많이 벌려는 목적에서 의사할 심산이면 1~2년 안에 관두고 딴 길 알아볼 것 같아요."

환경의 차이는 개인의 사고는 물론 행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과 영국, 의료 환경의 차이만큼이나 의대생들의 생각과 생활도 크게 달라 보였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은 지난 14일 저녁(현지 시각) 런던 햄스테드(Hamstead)에 위치한 로열 프리 병원(Royal Free Hospital)을 찾아 인턴의를 만났다. 그들은 일과를 마치고, 병원 인근의 펍에서 맥주를 즐기고 있던 터였다. 주인공은 영국인 매튜 제임스 파웰(Matthew James Pywell, 24)씨와 한국인 문희선(26)씨였다. 이들은 6년(혹은 5년) 의대 과정을 갓 마치고, 올해부터 인턴 과정을 밟고 있다.

[의대가기]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대? 그건 아니죠   

"영국에서도 의대가 인기 많고 경쟁률도 세지만, 한국처럼 공부 잘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의대에 가는 분위기는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영국에서도 의대 진학은 쉽지 않아 보였다. 영국에서 의사는 안정적인 수입(영국인 평균수입의 약 2.5배 정도)은 물론 사회적인 존경(부동의 존경받는 직업 1위)과 보람을 갖는 직업이기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문씨의 말대로, 한국처럼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대 가는 분위기는 아니다.

영국 로열 프리 병원(The Royal Free Hospital)에서 인턴의를 하고 있는 매튜 제임스 파웰(Matthew James Pywell)씨.
 영국 로열 프리 병원(The Royal Free Hospital)에서 인턴의를 하고 있는 매튜 제임스 파웰(Matthew James Pywell)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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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이나 흥미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의대에 오는 경우는 적은 것 같아요. 친구들을 보면, 의학에 관심이 있거나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며 보람을 찾고 싶어 하는 동기로 의대에 오는 경우가 많아요." 

파웰씨는 왜 의대에 진학했을까.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대답을 내놨다.  

"어릴 적, 어머니가 사고로 머리를 다쳐 뇌가 손상돼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어요. 10살쯤이었는데, 그때부터 항상 의사를 꿈꿨어요. 당시 치료해준 분들이 친절히 잘해줬던 기억이 있고, 나도 아픈 사람들을 도와 치료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문씨는 "확실히 돈을 생각하고 오진 않는다"며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무조건 '공부 잘하니까 의사해야지'하는 경우도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의대에 가기 위해 공부는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겸손인진 모르겠으나, 파웰씨는 "영국 분위기는 '공부할 땐 공부하고 놀 땐 노는' 식이라 나도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문씨도 "한국친구들처럼 '미친 듯이' 공부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며 "의대 다닌다고 그러면, 그냥 '공부 좀 잘했네'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의대생활] 시험은 1년에 딱 1번...  '직접체험' 형태 교육 많아

문희선씨는 "한국 의대생은 도서관에서 지식을 연마하는 시간이, 영국 의대생은 병원에서 직접 경험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친구들은 무지하게 바쁜데, 주로 쪽지시험, 교과서 지식 암기 등에 따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영국에선 성적에 들어가는 큰 시험이 1년에 딱 1번뿐이죠. 나머지는 현장실습, 환자대면, 팀 프로젝트 등 다양한 과제들을 수행하는 데 시간을 보내죠."    

실제 영국 의대과정에는 '환자 만나기'(학생 1명당 환자 1명 지정해, 질환뿐 아니라 병과 삶의 관계 등에 대한 심층관리학습 진행), '타 분야 전문가와 일하기'(NHS 특성상 간호사, 사회복지사, 약사, 조산사 등과 협력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등의 실습과정이 많다. 문씨는 "알아서 몸소 배우고 경험하라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또 영국에선 개인평가보다는 그룹작업, 팀 프로젝트 등의 교육이 많다고 전했다. 문씨는 "등수를 매기고 경쟁을 시키기보단 함께 도와주며 그룹을 이뤄 공부하라는 요구가 많다"며 "팀 리더십이나 환자와의 대화, 실습 등을 중시하고, 거기서도 함께 연습해서 함께 발전하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파웰씨도 "여러 직접적인 경험과 실습을 하면서, 배움은 물론 진로결정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처럼 매일 밤새고 '코피 쏟으며' 예비의사과정을 밟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초과근무하는 걸 오히려 비효율적이라 여겨요. 당직이면 딱 그 시간동안만 일하죠. 정해진 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그 후엔 집에서 쉬는 게 당직 서는 포인트라고 교수들이 항상 강조해요. 너무 오래 일하면 다음 날 지장이 크니 휴식할 땐 확실히 하란 식인 거죠."

[진로선택] 적성이 최우선... 쏠림 현상은 찾기 힘들어

한국 의대에선 성형외과, 피부과 등이 고수익 직종이라 인기가 많고, 외과 등은 우려스러울 정도로 기피가 심하다. 영국 의대에도 '쏠림 현상'이 있을까?

파웰씨는 "약 50퍼센트는 GP(일반의), 나머지 50퍼센트가 전문의가 되는데, 내과 외과 불문하고 모든 진료 과가 경쟁이 심한 편"이라고 전했다. 그 이유는 "NHS 하에서 전문의들의 월급 수준이 평준화돼 있으므로, 돈보다는 적성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기 때문"이란다. 또한 의사가 되려는 후보군들이 많아, 어느 과든 경쟁은 피할 수 없다고 전했다.

외과나 외상의의 경우, 힘들어서 기피하는 현상이 없냐는 질문엔 "외과도 경쟁이 높다"며 "성형외과도 흉터재건 등 치료 목적의 경우는 인기가 많고, 미용의 경우는 (병원 자체가 적다보니) 거의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같은 날 오후 로열 런던 병원에서 만난 외상 전문의 카림 브로히(Karim Brohi) 교수도 "의사가 되려는 목적 자체가 도전적인 일을 통해 보람을 얻는 것"이라며 "영국에서는 외과의사 후보들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파웰씨는 "어머니의 뇌 사고를 겪었기 때문에, 관련 분야인 신경외과 쪽에 가장 관심이 많다"며 "나는 아프고 불편한 사람들을 도우며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고 전했다. 

3분 진료에 '깜짝'... 의사라면 영국 선호할 듯
영국 의대생, 한국병원에서 실습해 보니

영국 로열 프리 병원(The Royal Free Hospital)에서 인턴의로 일하고 있는 문희선씨가 13일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영국 로열 프리 병원(The Royal Free Hospital)에서 인턴의로 일하고 있는 문희선씨가 13일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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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살고는 싶은데, 의사생활 하기는 솔직히 꺼려져요."

모국인 한국에 대한 문희선씨의 복잡한 심경이다. 그는 지난 겨울 실습 차 한국에 와서 2달 반 정도 머물렀는데, 가족과 함께 한 순간이 좋아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살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단다. 그러나 실습하면서 한국 병원의 현실을 겪어 보니, 의사라는 직업으로 살기엔 매력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그는 소위 '빅4'로 불리는 서울의 유명 3차병원 산부인과에서 6주간 실습을 했다.

우선 그는 한국 병원의 수직적이고 경직된 문화에 답답함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교수한테 직접 물어보면 '버릇없다'는 분위기였어요. 한국에서 배우고 싶은 것도, 경험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물어보면 레지던트가 와서 '그러면 안 된다'고 충고하는 식이니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흥미도 떨어지더라고요."

또 그는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며 "영국에선 수술 시에 현장 동참도 하고, 애도 받아보고 하는 과정들을 몇 번 이상 했다는 사인까지 받아야 했는데, 한국에서는 수술도 제대로 못 보는 경우가 많았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정신없이 환자를 회전 시키며 '3분 진료'를 하는 모습에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한 진료소를 가보니, 방이 4개가 연결돼 한 의사가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진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짧은 진료를 마치면 간호사들이 붙어서 뒷정리하고. 오후 시간에만 거의 200명을 진료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빠른 시간에 환자 얼굴도 잘 못보고 대충 진료할 수밖에 없고, 증상만 살피고 결론만 말하고 약 처방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문씨는 "시스템적으로 한국 의사들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며 "영국은 진료 1회당 최소 10분은 할애하는 편이다. 내가 환자라면 영국에서 치료를 받고 싶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영국 NHS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고 장단점이 다 존재하지만, 의사로서는 한국보다 더 만족감이 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  남소연·박순옥 기자, 송주민 시민기자


태그:#영국 NHS, #NHS, #영국 의대생, #무상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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