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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 돈 때문에 목숨을 저울질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바로 무상의료다. 영국은 국가가 재정을 조달하고 의료 서비스를 관리하는 대표적인 무상의료의 나라다. 의료 서비스의 질과 재정 문제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60년 넘게 무상의료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 불평등과 의료시장 민영화 등 한국사회 의료 문제의 해법을 영국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영국 런던 근교의 아머샴 헬스 센터(Amersham health center)에서 일하고 있는 우이혁 정신과 전문의가 14일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글 : 송주민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환자 진료는 영국처럼, '돈벌이'는 한국처럼 하고 싶다(웃음)."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북서부에 위치한 아머샴(Amersham)에서 만난 우이혁 정신과 전문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과 영국, 양국에서 의사 생활을 한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말에는 양국의 의료 시스템을 몸소 체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었다. 그는 아머샴 헬스 센터(Amersham health center, 3차병원급 정신보건진료기관)에서 NHS(National Health Service)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한편 그는 1996년부터 부곡 국립정신병원, 마산동서병원 등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근무했다. 2000년 영국에 건너와 유학 생활 후 2006년부터 NHS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그와의 만남은 저녁 늦게까지 계속됐다. 고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할 말이 많은지 쉴 새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이 "이제 그만"을 외칠 정도였다. 그는 NHS에 대한 찬양보다는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현실을 영국 NHS와 비교할 땐,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병원 경영은 매니저가... 의사는 환자만 잘 보면 된다

 

- 영국과 한국, 경험해 보니 의료와 병원을 보는 관점이 많이 다른가?

"기본적으로 영국 병원은 공공기관이다. 한국은 민간병원이 대부분이다. 거기서 나오는 차이다. 영국은 병원이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이라는 성격이 강하고, 한국은 아무래도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크다."

 

- 의사들의 생각도 양국이 많이 다른가?

"영국에서 의사는 사회봉사나 기여의 개념으로 일하는 경향이 강하다. 돈 많이 벌려고 하면 의대에 가지 않는다. 돈 많이 벌려는 의사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도 있다. 의대 과정에 정부지원도 많기 때문에, 의사가 된 이들은 국민 세금으로 자신들이 만들어졌다는 의식이 있다. 한국은? 의대 졸업하기까지 모든 노력과 비용을 개인이 짊어진다. 의사가 되고 난 후, '나에게 투자한 본전은 뽑아야!'란 인식이 강할 수밖에 없다."

 

- 한국과는 다른, 영국 의사생활의 특별한 점이라도 있나?

"소신대로 진료할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은 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물론 여기서도 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순 없으나, 한국에 비하면 훨씬 덜하다. 일단 직접 환자한테 받는 돈이 없지 않나. 확실히 한국이나 미국보다 영국 의사들이 돈은 적게 버는 것 같다.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한다. 진료는 영국처럼, 돈벌이는 한국처럼 하고 싶다고(웃음)."

 

- 한국처럼 성과나 실적을 요하는 분위기는 없는가?

"여기는 역할 분담이 철저해, 나에게 무슨 경제적인 실적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 그거는 병원 매니저들이 하는 역할이다. 나는 내 전문 과목만 전문적으로 진료하면 된다."

 

하루 4명 환자 진료, 한국에서 보면 기분 나빠할 것

 

- 근무 환경에도 차이가 있나?

"나의 경우, 환자를 많이 보는 날에는 4명 본다. 한국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하면 굉장히 기분 나빠할 것이다. 그러나 환자 한 번 볼 때마다 보통 1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보기 전에는 다른 의사들과 사전연락을 하고, 학교 교사, 사회복지사 등과도 연락하며 상태를 살피는 등 준비 작업이 길다. 그리고 환자 상담 외에 할 일도 많다."

 

- 의료진들의 전반적인 수준이나 서비스 질은 차이가 있는가?

"의료진의 수준이나 기술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 물론 확실히 의료장비는 미국이나 한국이 좀 더 빨리 신식으로 들여오는 경향은 있다. 신식 장비가 많다고 반드시 의료 수준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영국은국가가 운영하다 보니  확실히 그런 면에서는 좀 느리다."

 

- 환자로서 영국 의료기관을 이용해 본 느낌은 어땠나?

"한 번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라'고 하더라. 의학적으로 적절한 처방일 수는 있다. 여하튼 영국은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의료제도다 보니, 불필요한 검사는 최소화 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 약 처방이나 검사가 매우 잦은 한국과 정반대란 말인가?

"한국의 경우 병원들이 고가의 장비를 들이고, 최대한 많이 이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검사를 많이 시키는 쪽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게 어떨 땐 환자를 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과잉진료로 볼 수도 있다. 반면, 영국은 오히려 검사나 장비를 적게 돌릴수록 이익이다. NHS(National Health Service) 예산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필요한 검사는 거의 하지 않으며, 때론 환자들이 불만을 표하기도 하는 것이다."

 

 영국 런던의 한 병원에 비치되어 있는 NHS(National Health Service) 헬스케어 프로그램 홍보물 옆으로 환자 이송 라운지가 보인다.

 

병원 많이 가는 한국, 되도록 병원 안 가는 영국

 

- 병원을 적게 이용할수록 이익이라는 관점이 생소하다.

"입원의 경우를 보자. 한국은 어떻게든 입원 환자를 많이 받고 오래 머무르도록 해야 수입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영국에선 그렇게 마구 환자를 받았다가는 다른 급한 환자를 입원 못 시키는 경우가 생긴다. 책임져야 하는 환자를 입원 못 시키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방법이 없으면 사립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할당된 NHS 예산이 사립병원으로 가버린다. 입원실이 없는 부담을 우리가 다 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병실을 가용 가능하게 해야 하므로, 되도록 입원을 적게 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 입원을 적게 시키면 치료를 잘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영국의 경우 정신질환은 되도록 지역사회에서 해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같으면 정신병원에 있을 사람이, 영국에선 밖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따져보면 꼭 병원에 있어야 좋다는 증거도 없다. 한국에서 우울증이 좀 심하다 싶으면 입원을 시킨다. 그러나 영국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비유하자면, 한국은 증상이 조금 있으면 이것저것 다 시키는 '종합학원' 같다. 영국은 필요한 것만 하는 '단과학원' 같다. 그런데 꼭 종합학원 가는 학생이 단과학원만 간 학생보다 공부를 잘하는가?"

 

- 그래도 병원(병실)이 부족하면 더 지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조건 병원에 입원하는 게 좋은 걸까? 병원에 있다고 더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병원에 있든 지역사회 서비스를 받으며 집에서 치료하든 효과가 비슷하다면, 환자를 위해서 어떤 환경이 더 낫겠나? 나 같으면 가족과 함께 집에서 서비스를 받는 쪽을 택할 것 같다. 약 처방도 마찬가지다. 나는 환자들에게 약을 소개할 때, 1시간씩 설명한다. 한국에선 환자들이 무슨 약을 먹는지도 모르지 않나. 사실, 약 처방은 부작용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영국은 약을 최대한 신중하게 사용하므로, 남용을 굉장히 무섭게 생각한다."

 

- 그렇다면 한국은 왜 검사나 약 처방이 횡행하는 건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 그런 경향이 강한 게 사실이다. 또 한국의 경우 일단 무엇이든지 '처방'을 내리지 않으면 환자들이 굉장히 불만을 표한다. 소아정신과의 경우 '특별한 약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환자들이 다 떨어진다. 그래서 불필요한 과잉진료를 한다. 단순히 의사들이 탐욕스럽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성형이나 치과는 한국이 훨씬 발전, 이유는?

 

- 검사를 너무 안하는 것도 문제 아닌가?

"실제 영국에선 '한 번 확인해 보자'는 식으로 검사를 하지 않는다. 필요할 시에만 한다. 그래서 이용자들은 답답해 한다. 왜 검사를 잘 안 해주느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 등등. 그런데 내가 암에 걸리면 치료비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죽어야 한다? 아니면, 아픈 사람은 국가가 확실히 책임져 준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소한 경험 하나하나를 보면 불만이 많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시각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 영국이 한국보다 선진적인 부분은? 또 그 반대의 경우는?

"정신건강은 사회복지적인 개념이 강하다. 정신과진료와 사회적인 돌봄(social care)를 분리해 생각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은 영국이 잘 갖춰져 있다. NHS 시스템적으로도 연계해 환자들을 보살피기가 유리하다. 그러나 성형외과나 치과 같은 경우, 영국은 경쟁력이 없다. 그 쪽은 한국이 훨씬 더 뛰어날 것이다. 아마도 서울의 압구정이 런던의 할리 스트리트(Harley Street. 사립병원 밀집지역)보다 성형은 훨씬 더 잘할 거다."

 

- 성형외과나 치과 등은 왜 한국이 더 발전했을까?

"한국은 어찌됐든 돈만 있다면 자유롭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환자들도 돈 내고 서비스를 받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영국에는 돈을 내고 치료를 받는다는 개념이 없다. 미리 세금을 통해 (치료비를) 낸다는 생각이 강해서, 돈 내고 치료 받는 걸 사치로 여긴다. 성형이나 치과는 치료 목적도 많지만 미용이나 삶의 질 측면에서 접근되는 '사적 진료'란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성형외과나 치과 등은 한국에 비해 주목이 덜하고 발전도 더딘 듯하다."

 

사람 욕심 끝이 없는데... NHS 계속될 수 있을까

 

- 한국은 수도권 유명병원 쏠림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영국도 그런 현상이 있나?

"쏠림현상은 개개인이 좋은 병원을 찾고자 하는 욕망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이다. 영국의 경우에는 지역 격차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한국에 비하면 거의 없는 편이다. 어디에 살든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 질을 받게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땐, 인구가 없거나 가난한 지역에 의료기관을 설치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NHS이기에 가능한 모습이기도 하다."

 

- 영국의 한인 신문에 NHS에 대한 글을 연재한 걸 봤다. 한국 사람들이 영국에서 의료 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보이던데, 어떤 계기에서 글을 쓰게 됐나? 

"답답해서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여기 의료제도를 모르더라. 그래서 의료 서비스를 잘 이용하고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번은 이웃에 사는 3살짜리 애가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다. 영국 병원에 갔더니 '큰 문제는 없다. 금방 붙을 거다'라고 말을 해주더란다. 기겁한 부모가 결국 한국까지 비행기 타고 날아가 물리치료를 받고 오더라. 내 입장에선 '과연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

 

- NHS에 문제점은 없나?

"공공조직 특유의 '탁상행정'이 발생할 소지가 크고 실제 비판도 많다. 직원들이 '자기 보호'를 하려는 식으로 일하는 경향도 있다. NHS의 경직성을 해결해 보겠다며 사립병원에서 쓰는 '고객 만족도'와 같은 지표를 가져와 쓰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점점 병원들이 경영을 잘 못해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인근 병원과 합병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경쟁' 개념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 그 밖의 문제점은?

"실제 NHS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게 과연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특히 내 심신과 관련된 의료 서비스는 집 기둥을 뽑아서라도 양질의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한다. 개개인별로 서비스에 대한 욕구도 다양하다. 그러나 NHS에서는 이런 욕구 하나하나를 다 충족 시켜주는 건 구조상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NHS?... "솔직히 어려울 것 같다"

 

- 그렇다면 영국에서 NHS가 없어질 수도 있나?

"그런 경우는 없을 거다. NHS를 없앤다? 그런 정당은 다음 선거에서 필패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게 너무 익숙한 제도이고 생활이다. 한국에서 국민건강보험을 없앨 수 있겠나? NHS는 60년이 넘은 제도다. 또 영국 사람들은 돈 내고 의료 서비스를 받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의사 볼 때마다 얼마씩 내라? 아마 전 국민의 적이 되는 선택이 될 것이다."

 

- 한국도 NHS와 같은 국가의료를 시행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한국에서 온 분이, 한국에서 NHS를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더라. 나는 (현재로선)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첫째로, NHS를 하려면 의료 이외에 다른 사회(복지)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무상의료를 한다? (아픈 사람들이) 다들 병원에 드러누워 있을 것이다. 환자들이 집에 돌아가면 해줄 수 있는 사회 서비스가 있나? 지역사회에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나? NHS는 병원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연계망 없이 NHS만을 단독으로 시행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는 국가 시스템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서로 간의 신뢰가 어느 정도 쌓여 있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국가운영기관에 대한 신뢰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시스템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고 그 안에서 일이 이루어진다는 신뢰보다는, 시스템을 이용해 어떻게 이득을 취할까 하는 인식이 여전하다. 변하지 않으면, NHS와 같은 제도는 운영되기 힘들 것이다."

 

- 한국이 영국 NHS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직접 겪은 사례를 말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한 탈북자 할머니가 영국에 왔다. 불안증상이 심했다. 북한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도망쳐 나온 마음의 짐이 얼마나 컸겠나. 그런데 그 할머니가 영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추방 당할 위기에 처했다. 나는 그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심하니, 여기에 머무르며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서를 냈다. 그러자 모든 추방 절차는 멈춰졌고, 치료가 시작됐다. 이게 영국이다. 전문가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거기에 따라 치료가 필요하면 외국인이라도 함부로 내보낼 수 없다.

 

영국에서 의사 생활 중 가장 보람된 순간으로 남아있는 기억이다. 한국은 어떨까?"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  남소연·박순옥 기자, 송주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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