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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왜군을 피해 의주로 몽진했던 선조가 돌아와 임시로 거처했던 월산대군 후손의 집에 세웠던 중층 건물. 훗날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던 곳이며 광해군이 반정군에 무릎을 꿇었던 곳이다. 궁전이지만 수수한 민간 건물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월산대군 후손 집은 수양대군 잠저 명례궁의 후신이다.
▲ 석어당 임진왜란 때, 왜군을 피해 의주로 몽진했던 선조가 돌아와 임시로 거처했던 월산대군 후손의 집에 세웠던 중층 건물. 훗날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던 곳이며 광해군이 반정군에 무릎을 꿇었던 곳이다. 궁전이지만 수수한 민간 건물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월산대군 후손 집은 수양대군 잠저 명례궁의 후신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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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과 승정원 개편에서 눈여겨 볼 인물이 신숙주다. 지금까지는 한명회의 꾀주머니로 족했다. 허나, 앞으로는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기에는 한명회의 역량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부족하다.

한명회. 그는 수양의 장자방으로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능력자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역발상과 순발력은 가히 천하일품이었으나 신중하지 못한 데에 아쉬움이 있었다. 즉, 한명회가 불이라면 물 같은 인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 재목으로 떠오른 인물이 신숙주다.

'좌숙주 우명회', 그림 좋다..."신숙주를 끌어들여라"

지난해, 수양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떠나기 전, 집 앞 솟을대문 앞에서 정수충을 배웅하고 있을 때 신숙주가 지나갔다. 정수충은 그의 아버지 정제가 사헌부 감찰에 있으면서 호조의 관인을 위조하여 군자감에서 미곡을 실어낸 혐의로 장죄(贓罪)의 벌을 받아 과거를 볼 자격마져 박탈당하고 있을 때 수양의 뒷배로 출사한 위인이다.

"신 수찬!"

신숙주의 현 직책은 종3품 직제학이다. 수찬은 정6품으로 한참 아래다. 수양은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하여 수찬으로 불렀다. 신숙주가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 작업할 때 부왕의 부름을 받은 수양대군이 집현전을 자주 출입했다. 그때 조우했던 구면이다. 나이도 동갑내기다. 하지만 어느 안전이라고 신숙주가 말에서 인사를 받겠는가. 말에서 내려 예를 갖췄다.

"어찌 과문불입(過門不入) 하는가?"

집 앞을 지나면서 왜 들어오지 않느냐는 반 농 반 핀잔이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신숙주는 종실의 실력자 수양대군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으로 대해왔다.

"옛 친구를 찾아와 보지 않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지 않는가? 어여 들게."

수양이 신숙주의 손을 끌었다. 두 사람이 사랑에 마주 앉았다.

"우리 집 가양주가 괞찮다는 소문 신수찬도 들어봤겠지? 수찬이 쎈가 술이 쎈가 한 번 겨뤄보세. 하하하."

물가풍경무늬 청자 주전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주전자 물가풍경무늬 청자 주전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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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사저 가양주는 명성이 자자했다. 소국주(小麴酒)라 이름 붙여진 명례궁 가양주는 들국화 향이 은은해 풍류객들의 목마름의 대상이 되었다. 한명회가 명례궁을 처음 방문했을 때, 목 넘김이 부드러워 자꾸 마시다 보니 과음하게 됐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니 일어날 수가 없다. 일어나려다 주저앉고 일어나려다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이 술이 곱사등이를 아예 앉은뱅이로 만드는구나."

한명회가 넋두리하며 다시 주저앉았다. 사실 한명회는 곱사등이가 아니다. 자신을 그렇게 낮춰 부르는 것이다. 그 후부터 명례궁 소국주는 '앉은뱅이 술'이라는 귀여운 악명을 얻었다.

"여봐라, 여기 술상을 내오도록 하라."

하인들의 발바닥에 불이 붙었다.

"아직 해가 저물지도 않았는데요."

신숙주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와 내가 술 한 잔 하는데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하하."

권(勸)커니 작(酌)허니 적잖은 잔이 오고 갔다.

"신 수찬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취기가 오른다. 소국주의 희생양이 되면 안 된다. 하지만 자꾸만 자세가 흐트러진다. 신숙주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사람 목숨이 중하다 하나 사직에는 초개같이 버릴 수 있어야 사내이지 않겠는가?"

많은 내용이 포함된 사나이들의 언어다. 수양이 신숙주를 응시했다. 숙주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장부가 집에서 아녀자의 손을 잡고 죽는다면 그것은 '재가부지(在家不知)'라 하겠습니다."

신숙주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사나이 대장부가 부인의 곡소리를 들으며 죽어간다면 세상에서 쓸모없는 졸부(拙夫)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중국이나 다녀오세."

수양이 신숙주의 손을 잡았다. 숙주 역시 손에 힘을 주어 수양의 손을 꼭 쥐었다. '명례궁 결의'다.

"자네가 이겼네."

술에 지지 않고 정신줄을 놓치지 않았다는 치하다.

"송구합니다. 술에 장사 없읍죠."
"하하하."

수양대군 잠저 명례군 표지석
▲ 명례궁 수양대군 잠저 명례군 표지석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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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명례궁에 울려 퍼졌다. 수양은 신숙주가 꼭 필요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그의 신중함을 사고 싶었다. 수양대군이 명나라 사신을 마음먹으면서 신숙주를 서장관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이유는 그의 재목됨을 점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쌓아놓은 명나라 인맥과 면을 트기 위한 포석이었다. 신숙주는 훈민정음 작업할 때 세종의 명을 받고 명나라를 13번이나 왕래하며 명나라 조야의 실력자들과 교분을 쌓아놓았다. 헌데, 명나라 사신 길에 암초가 불거졌다. 안평대군이다.

안평대군의 책사 이현로가 안평을 부추겼다.

"공은 빼어난 용모와 기품 있는 수염을 가지셨고 시문과 서화에 능하시니 북경에 가면 그 명성이 가히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중원에 드높아진 명예와 인망(人望)을 후일의 기반으로 삼으소서."

이에 고무된 안평대군은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황보인의 딸이자 권은의 아내를 초청하여 귀한 비단의복을 주면서 그 아버지에게 청하게 하고 이현로를 황보인과 김종서 집에 보내 간곡히 청하게 했다. 사은사 자리를 놓고 형과 아우가 때 아닌 각축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형님이 북경에 가기를 청하였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안평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고명(誥命) 사은은 국가 대사인데 황보인은 최근 중국을 다녀왔고 김종서는 늙었고 남지는 병이 들었으니 하관(下官)을 보낸다면 중국 조정에서 어떻게 보겠느냐? 때문에 내가 가겠노라고 전하께 말씀드렸다."

형과 아우가 벌이는 사신쟁탈전

조선은 중국에 정기적으로 보내는 3대 사절 즉, 동지에 보내는 동지사(冬至使). 새해맞이 정조사(正朝使), 황제와 황후 생일에 보내는 성절사(聖節使) 외에 수시로 중국에 사신을 파견했다. 정치 외교적으로 청할 일이 있을 때 부정기적으로 보내던 주청사(奏請使). 중국이 은혜를 베풀었을 때 답례로 보내는 사은사(謝恩使). 황제의 칠순이나 팔순잔치에 가는 진하사(進賀使). 황제나 황태자의 상에 가는 진향사(進香使), 황실이 상을 당했을 때 가는 진위사(鎭慰使)로 조선 조정은 밤이 새고 졌다. 심지어 오가는 사신이 노정에서 만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문종이 승하하고 새로운 임금이 즉위했으니 고명사은사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형님은 국론이 따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조정대신들이 반대할 것이라는 우회적인 겁박이다.

"나는 국정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또 여러 재상이 있으니 비록 두어 달 중국을 다녀오더라도 무에 안 될 일이 있겠느냐? 지금 임금이 어리신데 내가 명을 받아 간다면 중국 조정에서도 우리나라의 체통을 얕잡아 보지 않을 것이다."

안평대군이 가려는 고명 사신자리를 꿰어 찬 수양은 신숙주를 서장관으로 임명하고 중국으로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정사와 서장관은 정했으나 부사 인선에 난항을 거듭했다. 수양은 민신을 찍었다. 김종서의 심복 민신을 데리고 가 안평대군 진영을 교란시켜보고  싶은 복안이었다. 허나, 상대 진영이 수양의 복심을 읽었다. 민신이 건강을 이유로 사양하면서 허후를 천거했다. 허후 역시 늙은 모친을 핑계로 고사했다.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안평대군의 밑그림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모두가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있었다. 이 때였다.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이 경성(鏡城)의 무기를 한성으로 밀반입한다는 첩보가 접수 되었다. 수양대군 사신 길을 권람이 극구 만류했다. 수양대군이 없는 사이 안평대군이 변란을 꾀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갈등이 생겼다. 소인배들은 고을을 품으려고 자신과 안평집 문전을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사나이 가슴에 조선을 새겼다면 중원의 공기를 마셔보고 싶다. 금년 아니면 시간이 없다. 이 때 한명회가 계책을 내놓았다. 황보인의 아들 황보석과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를 데리고 가면 딱이라는 것이다. 절묘한 계략이었다. 그들을 데리고 가면 천하의 김종서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태그:#수양대군, #안평대군, #신숙주, #한명회, #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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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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