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직 시차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새벽 2시경에 눈이 떠졌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안에 들어가 숨을 들이켰다. 아내도 한국시간에서 아직 풀려나지 않았다. 아내는 3시에 일어났다가 다시 자서 5시 30분에 일어났다. 신영이는 6시에 깨웠다. 시차적응은 첫날부터 잘 되고 있다.

날씨는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이다. 런던 해머스미스(Hammersmith)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남서쪽으로 달렸다. 아내가 깜빡 잊고 멀미약을 먹지 않아 살짝 걱정되었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빗방울이 조금씩 차창을 때린다. 아침에 BBC에서 본 날씨 예보에 의하면 계속 비가 온다고 해서 살짝 걱정이 된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지면서 안개 속에 구릉이 나타나고 구릉의 능선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여행의 출발 시간에는 영국의 하늘에 해가 나왔다.
▲ 맑게 개인 하늘. 여행의 출발 시간에는 영국의 하늘에 해가 나왔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우리의 차는 계속 길을 갔다. 서쪽 하늘에 푸른 하늘이 나오더니 갑자기 햇살이 쏟아진다. 그래서 나는 햇살을 가리는 모자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걱정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차창 밖으로 구름이 몰려온다. 차창에는 빗물이 내리고 윈도 브러시가 바쁘게 움직인다. 이곳 영국에서는 날씨 예측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변덕이 심한 영국 날씨. 영국의 여름 날씨는 뭐라고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영국에 단기간 여행을 하고 간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날씨가 영국의 여름 날씨라고 믿게 된다고 한다.

무심하게도 다시 비가 내린다.
▲ 찌푸린 하늘. 무심하게도 다시 비가 내린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양이 노니는 초원이 지나고 수채화를 그린 듯한 노란 밀밭이 굽이굽이 지나간다.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130km, 2시간을 달려 솔즈베리(Salisbury) 평원에 들어섰다. 약간 구릉진 널따란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 그 넓은 평원 위 저 멀리서 스톤헨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원한 녹색의 초원 위에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신비하게 서 있었다.

스톤헨지 가는 길은 널따란 평원이 깊게 펼쳐져 있다.
▲ 스톤헨지 가는 길. 스톤헨지 가는 길은 널따란 평원이 깊게 펼쳐져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우리 차를 주차장에 주차한 후 부푼 마음으로 스톤헨지를 만나러 걸어갔다. 스톤헨지를 둘러싼 철조망 펜스 안으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이 필요했다. 입장권을 사지 않으면 펜스 안으로 들어설 수 없고 스톤헨지를 멀리서밖에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입장권을 사야 스톤헨지 바로 앞의 정해진 참배로 잔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펜스 밖에서는 사진기로도 웬만큼 줌을 하지 않고는 스톤헨지를 찍을 수 없을 정도이다. 원래 툭 트인 초원 위에 남겨진 거석 유적인데, 후세들이 돈을 받기 위해 거석 주변에 울타리를 둘러친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돈 절약한다고 멀리서 스톤헨지를 보고 가는 것도 마음 상하는 일이다.

스톤헨지의 거석을 세우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 스톤헨지 상상도. 스톤헨지의 거석을 세우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입구부터 만나게 되는 기념품 가게를 지나 신영이가 들을 오디오 가이드를 하나 빌렸다. 아쉽게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없다. 스톤헨지가 있는 구릉을 가기 위해서는 U자형의 경사로를 오르는데 벽면마다 스톤헨지를 만들 당시의 상상화가 그려져 있다.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밑에 나무기둥을 깔고 거석을 나르는 그림은 우리나라 고인돌을 만드는 상상도와 너무나 흡사하다. 스톤헨지 그림은 둥그런 동심원이 거대한 제단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둥그런 동심원이 거대한 제단을 만들고 있다.
▲ 스톤헨지 원형. 둥그런 동심원이 거대한 제단을 만들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스톤헨지가 점점 가까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평원 위에 큰 돌덩어리 몇 개가 서 있는 것 같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도 그럴까봐 살짝 걱정은 됐었다. 하지만 스톤헨지가 점점 가까워지자 그런 우려는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직접 거대한 바위 아래에 서니 한 장의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묘한 신비감이 감돌고 내가 신비한 영역 안에 들어왔다는 짜릿함이 생겨났다. 거대한 바위가 위용을 자랑하며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톤헨지를 둘러싸던 도랑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 스톤헨지 도랑. 스톤헨지를 둘러싸던 도랑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스톤헨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속으로 들어섰다. 잔디밭 위에는 스톤헨지를 둘러싸던 바깥 도랑과 둑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고인돌보다 훨씬 큰 몇 층 높이의 거석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탑돌이 성지순례를 하듯이 스톤헨지 주변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이곳에는 가이드 이어폰을 귀에 대고 있는 영국인들이 많았다. 스톤헨지 각 구역별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는 번호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스톤헨지'라는 이름은 색슨어로 '매달린 돌'이라는 뜻의 '스탄헨제스(Stanhengest)'이니 당시 사람들 눈에는 거대한 바위가 하늘에 매달린 돌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스톤헨지의 거석이 이곳에 세워진 것이 무려 4천 년 전이니 지금까지 많은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스톤헨지가 어떠한 목적으로 세워져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다양한 추측만이 왕래하고 있을 뿐이다. 광활한 평원에 뜬금없는 거대한 바위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에 세워졌으니 외계인이 스톤헨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하지가 되면 힐스톤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해가 떠오른다.
▲ 스톤헨지 힐스톤. 하지가 되면 힐스톤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해가 떠오른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다만 스톤헨지의 거석들이 하지(夏至) 때 태양의 움직임과 줄을 맞추고 있어서 이 스톤헨지가 고대의 태양신앙과 연결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에 해가 뜨면 바위들의 그림자가 해와 일직선 방향이 되었을 것이다. 아! 하지의 태양이 스톤헨지 유구의 동쪽, 힐스톤 위에 떠올라 중앙제단을 비추면 이 평원 일대가 아주 장관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거석이 이루는 고리 모양 써클은 지름이 114m나 된다. 이 써클의 북동쪽으로 들어서니 힐스톤(Heelstone)이라는 큼지막한 바위가 마치 고인돌을 세워놓은 것 같이 세워져 있다. 이 서 있는 바위는 마치 사람 얼굴을 닮아서 오늘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날 태양이 이 힐스톤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떠오른다고 한다. 하지의 태양이 힐스톤 위에서 솟아서 중앙의 석조제단을 비추었던 시기가 천문학적으로 서기전 2000년 무렵으로 계산되어 스톤헨지의 건립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이 힐스톤만 보아도 스톤헨지가 천체관측과 관련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인 것 같다. 스톤헨지 주변에서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데 이곳이 태양을 관측하고 소원을 빌며 제사를 하던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보게 되면 거석의 신비함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 스톤헨지. 실제로 보게 되면 거석의 신비함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이 광활한 평원에서 살았을 영국의 선사시대 사람들은 하지날 떠오르는 태양이 스톤헨지에 비치는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상상을 했을 것이다. 지금 당시 사람들을 눈앞에서 볼 수 없어서 어느 추측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태양을 숭배하며 스톤헨지에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스톤헨지 내부의 제단석에서 병마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치료해 달라고도 빌었을 것이다.

대유적 순례를 하는 도중에 신비하게 잠깐 햇살이 나왔다가 들어갔다. 온통 초원과 구릉으로 둘러싸인 곳에 세워진 거석은 전혀 실망스럽지 않고 뭉클한 감동을 전하고 있었다. 나는 햇살이 비친 거석들을 보며 누가 이런 거석들을 이곳까지 끌고 왔을지 생각해 봤다. 나는 이곳에서 느끼는 감흥으로 인해 실로 오랜만에 독사진을 찍어달라고 신영이에게 부탁을 했다.

아쉽게도 스톤헨지의 바위를 만지며 바위의 숨결을 느낄 수는 없었다. 여행자들로 인한 유적의 훼손을 막고 낙서를 막기 위해 20여m 거리 바깥까지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는 스톤헨지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스톤헨지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스톤헨지 인근에서 스톤헨지를 이루고 있는 거석들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스톤헨지의 바위들은 스톤헨지에서 북서쪽으로 무려 217km나 떨어진 웨일즈의 프리셀리(Preselly) 산맥에서 옮겨온 것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유적 앞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있다.
▲ 스톤헨지 듣기. 많은 여행자들이 유적 앞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엄청난 거리도 거리지만 이 집채만 한 바위를 어떻게 여기까지 운반해 왔는지도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강화 역사관의 고인돌 전시관에서 보았듯이 통나무를 엮은 운반체 위에 바위를 올린 후 끌고 왔을 것 같다. 그리고 바위를 끌 때는 밧줄로 묶은 후 끌고 왔을 것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석을 끌고 이토록 먼 거리를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스톤헨지 주변에서 웨일즈까지는 드넓은 평원 지대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수많은 시간이 걸려서 평원지대를 관통하며 이곳까지 거석들을 끈질기게 옮겨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사시대의 인간들은 옮겨진 바위들을 세우는 방법을 궁리했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이라면 아마도 평지 위에 흙을 쌓은 후 구멍을 내서 바위를 집어넣고  다시 흙을 제거하여 바위를 세웠을 것이다.

스톤헨지는 이중의 고리 모양을 하고 우뚝 서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중의 고리를 이루던 바위들은 군데군데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웅장함이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바위들은 무너지고 사라져서 이가 빠진 듯이 서 있다. 수직으로 용케도 긴 세월 동안 서 있는 2개의 바위 위에 1개의 바위가 마치 수평으로 얹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지금은 고립된 모습의 바위들이 각자 서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서기전 2천년에는 눈앞의 바위들이 모두 연결형으로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순례 하듯 스톤헨지 주위를 돈다.
▲ 스톤헨지 여행자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순례 하듯 스톤헨지 주위를 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바깥쪽 고리를 이루던 입석 바위들은 원래 30개였지만 지금은 16개만 남아 있다. 입석 14개가 4천 년의 세월 동안 사라져갔고 입석위에 수평으로 걸려 있던 들보도 사라졌다. 나는 남아있는 석재도 대단하지만 사라진 바위들도 다 어디로 갔을지 궁금했다. 높이가 7m나 되고 45톤이 넘는 거대한 바위들을 일부러 치우기도 힘 들었을 텐데 말이다.

내 머리 속에는 중학생 때 보았던 한 영화의 잔영이 스톤헨지의 모습 위에 겹쳐졌다. 영화 '테스(Tess)'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테스가 안개 낀 평원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스톤헨지의 작은 입석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몽환적 이미지가 내 머리 속에 오랜 시간 남아 있었던 스톤헨지였다. 나는 흐린 날 제 모습을 명확히 보여주는 스톤헨지를 보며 저 거석 위에 안개가 스며들면 정말 신비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스톤헨지 울타리 바로 밖의 초록빛 솔즈베리 평원은 넓게 이어지고 있었다. 평원 위에서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스톤헨지도 경이롭지만 평원의 적막한 고요함이 너무나 좋았다.

나는 스톤헨지 울타리 밖으로 나오면서 기념품 가게에서 스톤헨지가 그려진 회색 후드티 하나를 샀다. 옷에는 스톤헨지 자신의 나이가 4천살이라고 숫자로 찍혀 있었다. 여름인데도 스톤헨지는 깊은 가을 날씨였다. 여행 짐가방에는 온통 반팔 옷만 가져 왔었다. 예상 외의 서늘한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나는 긴팔 옷 후드티를 입고 영국의 가을같은 여름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70편이 있습니다.



태그:#영국, #솔즈베리, #스톤헨지, #거석, #태양숭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