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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공탑
 등공탑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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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는 염불선의 도량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787년 발징화상과 수행승 31명이 염불을 통해 극락으로 인도되었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758년 발징화상은 31명 수행승, 신도 1820명과 함께 아미타 만일염불회를 결성하고 만일 동안 신행을 닦기로 서원한다. 그들은 만일동원 염불수행을 하면서 극락왕생할 것을 기원했고, 그 소원이 이뤄져 살아있는 육신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오르면서 해탈한 상태로 극락세계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처럼 육신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오르면서 몸은 벗어버리고 마음만 부처님의 연화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등공(騰空)이라고 한다. 이러한 일을 기념해 스님들이 등공한 자리에 탑을 세우고 이곳을 등공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절에서 2㎞쯤 떨어진 등공대에 오르기로 하고 함께 길을 걷는다. 여름이라 땀이 흐르지만 그렇게나 역사적인 장소를 가지 않을 수 없다.

 등공대 이야기
 등공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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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공대 가는 길은 마음을 비우는 해탈의 길이다. 모두 마음을 비우고 뭔가를 염원하며 가는 듯하다. 등공대 오르는 길은 주변경치를 조망할 수 있어 산책로로도 안성맞춤이다. 건봉사 스님들의 말에 의하면 건봉사가 연꽃모양을 하고 있고, 등공대가 연꽃의 꽃술자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15분 정도 길을 오르니 등공탑이 나타난다. 탑에는 '삼십일인 등공유적 기념지탑'이라고 쓰여 있다.

이곳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니 DMZ 철조망이 보인다. 그렇다면 그 너머가 바로 북한 땅이다. 금강산도 지척일 것이다. 건봉사는 한 때 대단히 큰 절(본사)이었는데, 남북분단이 되고 휴전선이 생기면서 설악산 신흥사의 말사로 그 위상이 격하되었다. 분단과 전쟁의 후유증을 이곳 건봉사에서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아프다. 통일의 그날의 기원하는 만일염불회라도 열어야겠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능파교 이쪽 대웅전 권역

 대웅전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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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공대를 내려와 건봉사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서니 염불선원답게 염불소리가 요란하다. 대웅전에서 법회가 있는 것 같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기는 민망해 문으로 안을 살펴본다. 세 분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최근에 다시 조성된 것으로 인자한 모습이다. 나는 대웅전을 지나 명부전으로 간다. 법당 안에는 스님 한 분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과 기도를 하고 있다. 지장보살님과 스님의 민머리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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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옆에는 만일염불원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이것이 건봉사 종무소다. 이곳에 바로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가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종무소를 거쳐 친견하도록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운 가운데 한 곳에 불빛이 비친다. 그곳에 진신치아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원래는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12과가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에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약탈해 갔고, 전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 8과를 이곳 건봉사에 안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 진신치아사리가 너무 완벽하고 깨끗하다. 2,5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이렇게 귀한 성보를 보게 되다니, 다 부처님의 가피인 것 같다. 이곳 건봉사에는 1920년대까지만 해도 극락전과 낙서암 등 20여 채의 전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사변 때 완전히 폐허화되었고, 그나마 2,000년 전후 중창불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최근에 다시 지어진 2층의 만세루에 오르니 앞으로 대웅전 권역과 뒤로 극락전 권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웅전은 새로 지어 전각이 우아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극락전 영역은 축대 위 잡풀만이 무성하고, 조금은 황량하다. 언젠가는 저곳에도 전각이 들어서 건봉사가 옛 모습을 갖추길 기대해 본다. 염불선과 아미타 도량으로 번창했던 건봉사에 발징화상, 나옹화상, 사명대사 같은 큰스님이 또 다시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능파교 저쪽 옛 절터 권역

 능파교
 능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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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루를 내려오면 절 앞으로 시내가 하나 흐른다. 이곳에는 돌로 만든 무지개다리가 놓여있는데, 이 다리 이름이 능파교(凌波橋: 보물 1336호)다. 능파는 아름다운 여인이 물결 위를 가볍고 우아하게 걸어감을 말한다. 그러므로 능파교란 우아한 걸음으로 극락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다리다. 1708년(숙종 34년) 불이문 옆에 건립된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에 의하면, 이 다리는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사이에 건봉사 승려 신계(信戒)에 의해 세워졌다.

다리의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가 5.4m나 된다. 다리 한 가운데를 지탱하는 원의 지름은 7.8m고 높이는 4.5m이다. 30여개의 돌이 반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직육면체의 돌이 그 위에 수평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다리로 조선시대 홍예교를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유물이다.

그런데 이 다리도 홍수로 세 번 정도 수난을 당했다. 1745년(영조)과 1880년(고종) 홍수로 무너졌고, 가장 최근에는 2004년 6월 역시 홍수로 무너졌다. 무너진 능파교는 2005년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능파교를 건너면 폐허가 된 극락전 영역에 새가 앉아있는 석주가 보인다. 우선 이곳에 새겨진 불기(佛紀) 2955년이 눈길을 끈다. 부처님이 기원전 55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2955년이라니?

 솟대형 석주
 솟대형 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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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도는 북방불기식 표현이다. 여기에서 1027년을 빼면 우리가 사용하는 불기가 된다고 한다. 그럼 우리식 불기로 1928년이 된다. 불기 아래 무진하(戊辰夏)라고 새겨져 있는데, 1928년과 맞아 떨어진다. 석주의 나머지 3면에는 나무아미타불과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나무아미타불은 한글과 한자로 쓰여 있고, 대방광불화엄경은 한자로 쓰여 있다. 석주 위에 새가 한 마리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늘과 통하려는 솟대의 개념으로 보인다.

이 석주를 보고 적멸보궁 쪽으로 오르다 보니 이상한 석주가 또 나타난다. 문처럼 두 개의 석주가 양쪽으로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독성각이 보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범종각이 보인다. 하나의 석주에는 용사활지(龍蛇活地)라는 글자가, 다른 석주에는 방생장계(放生場界)라는 글자가 보인다. 용과 뱀이 활동하는 땅, 방생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석주 위에 두 개의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현재 이곳에는 연꽃이 피어 있다.

 문기둥형 석주
 문기둥형 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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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에는 꽃무늬, 기하학적 무늬, 범자문이 새겨져 있는데 정확한 의미는 알 수가 없다. 옴마니팟메훔이라고도 하고, 십바라밀과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이 석주를 지나 위로 올라가면 독성각과 산신각이 있다. 이들을 지나 더 위로 올라가면 가장 끝에 적멸보궁이 나타난다. 적멸보궁은 1724년(경종 14) 처음 건립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94년 5월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부도전에서 만난 스님들의 자취

 간성건봉사사적비
 간성건봉사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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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 경내를 보고 나서 우리는 차를 타고 부도전으로 간다. 부도전은 건봉사로 들어가는 초입 길옆에 있다. 이곳 경사면에는 40여기의 부도가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만들어져서인지 옥개석이 얹힌 비석형이 많고, 일부 종형도 보인다. 그중 비문이 확실한 것으로는 홍제존자 사명대사 기적비명, 송암대사지비, 운파대사비명, 벽오대종사비, 간성건봉사사적비, 만화당대선사비명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이 홍제존자 사명대사 기적비명이고 가장 최근에 세워진 것이 간성건봉사사적비(杆城乾鳳寺事蹟碑)와 만화당대선사비명(萬化堂大禪師碑銘)이다. 간성건봉사사적비는 궁내부 지진관 이근명이 짓고, 만화당 보운(1850-1919) 스님이 1906년 세웠다. 비문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한황국의 동쪽에 산이 있는데 이름하여 금강산이라 하였다. 수려한 명승지여서 천하에 소문이 났다. 부처님의 적멸보궁과 스님들의 요사채가 있으며, 금강산 주변에서 거처하는 사람들이 무려 천여 명이나 되었는데, 간성의 건봉사가 제일이라 하였다."

 만화당대선사비명
 만화당대선사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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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당 보운은 간성 용포리 출신으로 건봉사로 출가하여 건봉사를 중창하고 화엄법회를 열어 건봉사를 크게 일으킨 스님이다. 1901년에는 조정에서 부종수교 전불심인 대각등계존자(扶宗樹敎傳佛心印大覺登階尊者)라는 호를 받았다. 그리고 팔도승풍규정원장(八道僧風糾正院長)과 관동도교정(關東道敎正)이라는 직책도 받았다.

만화대선사는 1919년 '진(眞)으로 돌아가리라'는 말과 함께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이에 정호가 행장을 짓고, 가선대부 윤희구가 이를 토대로 만화당대선사비문을 찬하였다. 비석은 1924년 4월에 세워졌다. 비문에 따르면 만화당 스님이 남긴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극락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니                  極樂自心地
삼세의 부처를 무엇에 쓸 것인가?            何用三世佛
삼세가 비록 장엄하다고 하나                  三世雖莊嚴
부처마다 모두 마음에서 오는 것이니라.    佛佛自心佛
끝없이 넓은 우주 허공 가운데                 十方虛空中
나의 부처는 본래 그러한 것을.                我佛本如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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