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원에서 부채 상한선 인상안이 통과됐다고 전하는 <뉴욕타임즈> 인터넷판.
 하원에서 부채 상한선 인상안이 통과됐다고 전하는 <뉴욕타임즈> 인터넷판.
ⓒ <뉴욕타임즈>

관련사진보기


1일 월요일 저녁(미국 현지 시각), 드디어 미국 하원이 재무부의 부채 상한선 인상을 승인했다. 미국 재무부가 상한선 인상 만료 시한으로 정한 2일을 하루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2일이 지나서도 부채 상한선이 인상되지 않으면, 미국 정부는 노인과 저소득층, 장애인을 위한 각종 사회보장연금 및 의료비, 그리고 미군을 위한 급료 등을 지급할 수 없을 뻔했다. 또한 14조 달러에 달하는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조차 갚을 수 없는 아찔한 상황을 맞을 뻔했다.

"지출 삭감 없이는 정부 부채를 단 한 푼도 늘릴 수 없다"

174명의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95명의 민주당 하원의원들의 찬성으로 통과된 이번 안의 골자는 미국 재무부에 차용능력을 확대하는 대신, 향후 10년간 정부 지출을 2조4000억 달러 삭감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출을 삭감하지 않으면 정부 부채를 단 한 푼도 늘릴 수 없다던 공화당 하원, 그중에서도 특히 티파티 의원들의 원칙을 대폭 수용해 2조1000억 달러까지만 부채 상한선을 올릴 수 있게 했다.

부채 상한선 인상 및 정부 지출 삭감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은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화요일 정오(미국 현지 시각)에 있을 상원 표결에서 부채 상한선 인상안 통과가 거의 확실시된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을 하면 바로 4000억 달러의 부채 상한선 인상이 이뤄진다. 또한 내년 2월까지 5000억 달러의 추가 인상이 있을 예정이다. 이에 대응해서 향후 10년간 9107억 달러의 지출을 삭감하는 프로그램이 올 10월 1일부터 가동된다.

추가로 최대 1조 5000억 달러까지 지출이 삭감될지 여부는 "슈퍼 의회"에 의해 올해 추수감사절까지 결정된다. 추가 부채 상한선 인상은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에 이뤄질 수 있다.

이번 법안에 따라 양당의 양원 의원 12명으로 구성될 특별 합동 위원회, 일명 "슈퍼 의회(Super Congress)"는 복지 프로그램 및 방위비에서 정부 지출을 삭감하는 것과 세수 확대 및 세제 개혁 등을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곳의 권고안이 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방위비 지출과 메디케어 등에서 자동적인 지출 삭감이 이뤄지도록 법으로 정했다.

7월 31일 밤, 백악관에서 부채 상한선 인상안 합의가 이뤄졌다는 속보를 전하는 <허핑턴포스트>.
 7월 31일 밤, 백악관에서 부채 상한선 인상안 합의가 이뤄졌다는 속보를 전하는 <허핑턴포스트>.
ⓒ <허핑턴포스트>

관련사진보기


재선을 위한 오바마의 정치적 계산?

지난 7월 말,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백악관에서 '그랜드 플랜'이라는 내용의 합의를 거의 이뤄낼 뻔했다. 여기에서 이 두 사람은 정부 적자 해소를 위해 정부 지출 삭감은 물론 세수의 확대에 동의한 바 있다. 즉, 미국 중산층에게는 부시 감세안을 유지하되 부자들에게는 증세(실제로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로 세율을 회복하는 것)를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단 한 푼이라도 세수가 확대되는 것=연방 정부 확대"라 생각하는 티파티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이 안은 백악관을 벗어나서는 논의조차 될 수 없었다. 

그 후 민주당의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가 나서 베이너 하원의장과 논의를 시작했다. 여기서 리드 대표는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대신, 세제 정책의 '함정'을 메워 세수를 확대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나 이 역시 공화당의 강한 저항을 받아 포기해야만 했다.

후퇴가 거듭되자 진보 진영은 협상 과정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예를 들면, 오바마가 처음부터 양당의 타협만을 강조한 나머지, 수정헌법 제14조가 지정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발휘할 능력조차 처음부터 포기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신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 권한을 발동할 것이라고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한 오바마는 미국 국민을 향해 직접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지 않았고(지난 주 목요일이 되어서야 지역구 의원들에게 전화와 이메일, 트위터를 하라고 국민들을 처음으로 독려했다) 처음부터 공화당 내 티파티의 프레임에 갇혀 진보 진영의 주장을 변변히 펼치지도 못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미국 언론은 2012년 재선을 위해 무당파와 중도파의 표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석했다.

7월 31일 <워싱턴포스트>는 "합의안의 내용들이 나오면서 리버럴은 분노했고. 오바마가 또다시 경제정책에서 항복을 한 탓에 내년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오바마에게 꼭 필요한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의 열의를 더욱 꺾을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그러나 오바마로부터 등을 돌려온 중도 성향의 무당파를 끌어안으려 애쓰는 백악관으로서는 설령 '지는(항복하는) 거래'라고 해도 결국 이기는 전략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날 <뉴욕타임즈>도 "아마도 이번 결과는 대통령으로서보다는 대통령 후보자로서 오바마에게 더 호의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분석에 대해 백악관은 향후 지출 삭감 논의에 따라 국방비를 더 줄일 수 있고, "국내의 (복지) 프로그램을 보호하는 한편 부자들을 위한 부시 감세안을 끝낼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반박했다고 <더 힐(The Hill)>은 전했다.

이번 부채 상한선 인상안 협상에서 가장 많은 '조명'을 받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지친 모습이다.
 이번 부채 상한선 인상안 협상에서 가장 많은 '조명'을 받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지친 모습이다.
ⓒ NBC News

관련사진보기


크루그먼 "미국 경제에 재앙"

현재 미국은 고실업률이 장기화되고(미국의 실업률은 6월 현재 9.2%) 경제성장은 더디기 짝이 없으며 경기를 부양할 만한 정부의 선택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이번 예산안은 경기를 더욱 후퇴시켜 경기 침체가 다시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반면에, 정부 지출을 줄임으로써 무섭게 불어나는 정부 부채에 제동을 걸어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가 체질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 교수는 1일 블로그에서 "이번 법안은 실업과 경제 위기에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잠식해버렸다"며, "주정부 및 지방정부에서 이미 진행 중인 예산 삭감에 덧붙여, 이번 안의 지출 삭감은 제2의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으며 극우의 정치적 파워를 더욱 키워주었다"고 비판했다.

프린스턴대학의 폴 크루그먼 교수도 <뉴욕타임즈> 사설에서 이번 안이 "오바마와 민주당뿐만 아니라 이미 침체된 미국 경제에도 재앙"이라며, 미국을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만들 것이라 예상했다.

<허핑턴포스트> 발행인인 아리아나 허핑턴은 1일 CNN의 '피어스 모건 투나잇'에서 "지금 이 나라의 위기는 경제성장, 일자리, 그리고 부채의 위기 등이다. 우리에게는 부채 상한선 문제가 없다. 이 문제는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위기로, 여기에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됐다"고 한탄했다.

허핑턴은 또한 "이 나라의 정말 많은 사람들, 민주당 및 공화당 지지자들을 모두 포함한 사람들이 이번 법안으로 경제가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다며, 일반 미국인들의 삶에서 완전히 유리된 워싱턴의 정치문화를 비판했다.

한편 미국의 유명 보수 논객인 조지 윌은 일요일 ABC의 'This Week'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10년으로 가는 길의 3분의 1 지점에 와 있다. TARP(월가 금융 기관에 대한 정부의 구제프로그램), 경기 부양책, 캐쉬 퍼 클렁커스(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에 대한 정부의 구제 프로그램), 케인즈 방법론 등 온갖 부양책을 다 써봤지만, 그것들은 다 효과가 없었다"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콩가루 집안' 같은 워싱턴, 어느 쪽도 만족하지 않는 법안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1일 하원 표결 직전 공화당 하원의원들을 독려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지출을 삭감하고 있다. 내년 재량 지출(discretionary spending) 부분에서는 작년보다 돈이 덜 나갈 것이다. 여러분 중 이곳(워싱턴)에서 어디 이런 얘기를 전에 들어본 적이나 있는가?"라며 이 법안의 지출 삭감액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일부 의원들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릭 캔터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 법안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워싱턴의 정치문화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우리와 미국인들이 거둔 승리는 이 법안에 어떠한 세금 인상안도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캔터는 "세금 인상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불필요한 것"이라는 말로 공화당 내 티파티 의원들의 심경을 대변했다.

역시 표결을 앞두고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대표는 이 법안에 "오른쪽 사람들(우파)이 화가 났다. 왼쪽 사람들(좌파)도 화가 났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중도파)도 화가 났다"며, 그러나 "우리 경제의 장기적 체질을 보호할 놀랄 만한 합의"라고 평가했다.

해리 리드는 또한 "어느 쪽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타협의 본질이다"라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 법안이 "악마의 감자튀김을 곁들인 악마의 샌드위치와 같은 것"이라 비난하면서도,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일을 환기시키며 이에 대한 지지를 강조했다. 펠로시는 "이 법안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 어떤 성과가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 법안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번 법안에 가장 반발하고 있는 건 민주당 내 리버럴이다. 그중 한 명인 노스캐롤라이나의 버터필드 하원의원은 "분노라고까지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우린 이런 법안이 나왔다는 것에 매우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버터필드는 이번 법안이 저소득층과 노동계층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USA투데이>는 "워싱턴(정계)은 그 자체로 많은 미국의 유권자들과 전 세계의 투자자들에게 서로 헐뜯는 콩가루 집안처럼 보였으며, 국가의 중대하고도 점점 심각해지는 문제를 적기에 다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지적했다.

1일 저녁, 미국 하원에서 부채 상한선 인상안을 통과시키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다.
 1일 저녁, 미국 하원에서 부채 상한선 인상안을 통과시키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다.
ⓒ MSNBC.com

관련사진보기


최대 피해자는 미국 서민

미국은 막대한 정부 부채로 국가적 위기를 부르고 있지만, 부채 상한선을 올리는 일 때문에 이번처럼 곤란을 겪은 일은 없었다. 세계에서 미국의 신용 상한선(=부채 상한선)을 결정하는 나라는 아무도 없으며, 유례없이 낮은 이자율로 돈을 꿀 수 있는 미국은 언제든 원할 때마다 자국의 부채 상한선을 올려왔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이 있기 전까지 미국은 1960년 이래 70번 이상 부채 상한선을 인상했다. 레이건 대통령 때만 18번, 부시 대통령(W. 부시) 때는 7번 부채 상한선을 인상했다.

사실 미국 의회, 구체적으로는 공화당이 이번 부채 상한선 인상을 거부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부채 상한선 인상은 의회가 전년도에 이미 승인한 정책을 집행하거나 이미 집행된 돈의 지출을 결정하는 문제이고, 따라서 미국 의회는 지금까지 항상 자동적으로 상한선을 올려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화당이 부채 상한선 인상을 부르는 정부 지출 인상을 반대한다면, 애초에 예산 승인을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이었다.  

게다가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은 퇴임 당시 1370억 달러의 흑자를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에게 물려줬지만, 부시는 그와 달리 퇴임 때 1조2000억 달러의 빚을 오바마에게 남겨줬다.

허핑턴의 지적처럼 부채 상한선 인상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 정치인들이 불러온 재앙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백악관 중 어디에도 승자는 없다. 미국 서민들만 최대 피해자일 뿐이다.

CNN의 'iReport'를 통해 루스코라는 한 시청자는 "내 사견은 오바마 대통령이 비합리적인 사람들과 함께 합리적인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일을 관두라는 것이다…(중략) 우리는 전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바보들의 온상처럼 안 보이려고 어설픈 변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탄하며, 공화당 특히 티파티 의원들의 무리한 요구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들기보다는 헌법이 부여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라고 오바마에게 주문했다.

'myj'라는 또 다른 시청자는 "진짜 문제는 실업"이라고 일갈했다.

<뉴욕타임즈>에서 마크 M이라는 한 독자는 "완전히 미쳤다. 내가 워싱턴에서 본 것 중 가장 추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을 찍었고 여전히 지지하지만, 오바마는 공화당 내 악당 분자들이 경제를 망칠 수도 있게 일을 왜곡하도록 허용해버렸다"며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독자는 티파티에 대해 "무지하고 외고집의 선동자 집단으로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이라 비난했다.

같은 신문에서 알랜드라는 독자는 "나라의 경제가 피를 흘리고 있다. (이번 안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에게서 더 피를 빼는 꼴이다. 이것이 이번 예산 법안의 핵심이다. 필요한 것은 수혈, 즉 세수를 늘리는 일이다. 이번 일은 우리나라의 비극이다"라고 말했다.

CNN의 iReport에서 부채 상한선 인상안에 대한 소감을 전하는 루스코라는 시청자의 비디오 사연.
 CNN의 iReport에서 부채 상한선 인상안에 대한 소감을 전하는 루스코라는 시청자의 비디오 사연.
ⓒ CNN

관련사진보기



태그:#부채, #미국, #오바마, #공화당, #사회 보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